- 2025년 10월 23일 목요일(로마 시내 탐방 1일 차)
드디어 오늘부터는 로마 외부로 나가지 않고 시내 관광을 하는 일정을 시작하게 되었다. 그동안 폼페이, 소렌토, 포지타노, 살레르노, 나폴리, 카프리 섬 등을 남부 1박 2일 투어로 소략하게나마 둘러보았고 피렌체를 1박 2일에 걸쳐 방문했었고 베로나, 돌로미티, 베네치아 본섬을 2박 3일에 걸쳐 다녀왔다. 이제는 로마에 흩어져 있는 유적과 성지 순례의 의미를 담은 곳들을 방문하는 일만 남았다.
지난 19일에 방문하려다가 마라톤 행사로 인한 예상치 못한 교통 통제로 방문하지 못했던 산타 마리아 마조레 성당에 방문하기 위해 아침에 숙소를 나섰다. 바티칸시국은 국제법상으로 독립된 국가로 인정받고 있으며 그 영역 외에도 로마 시내에 있는 라테라노 성당, 성 바오로 대성당, 산타 마리아 마조레 성당 역시 성 베드로 대성전과 함께 바티칸 영토로 관할권을 인정받고 있다고 한다. 산타 마리아 마조레 성당은 프란치스코 교종이 해외 사목 방문을 전후하여 꼭 들러서 기도한 곳이고 자신 사후에 무덤으로 미리 준비를 마친 곳으로 알려져 있으며 지난 4월 부활 시기에 선종한 이후 실제로 무덤이 자리한 곳이다. 그래서 희년에 따라 순례자들의 방문지임과 동시에 그를 기리는 이들이 끊임없이 찾아오고 있다. 우리가 도착했을 때에도 개인적으로 방문한 가톨릭 순례자와 단체로 방문한 사람들이 모두 함께 긴 줄을 형성하며 성전 입장을 위해 기다리고 있었다. 모두에게 개방되어 있으며 입장료가 없다. 사실 신자들에게 입장료를 받는다는 것은 그리 바람직한 얘기는 아니고 원칙적으로 하느님의 집은 누구에게나 열려 있어야 한다.
이탈리아의 웬만한 관광지에서는 검색이 필수적으로 이루어진다. 내용물과 소지품에 대한 엑스선 검사는 물론 가방을 열어 위험물에 대한 탐지도 선제적으로 이루어진다. 피렌체의 우피치 미술관 앞에는 군인들이 상시적으로 배치되어 있으며 그들은 권총으로 무장을 한 채 유사시를 대비하고 있었다. 특히 이탈리아가 삼엄한 편이었고 나중에 갔던 스페인은 경찰이 일반적인 치안 유지 임무를 수행하고 있었다. 이는 전 세계에서 불특정한 군중이 모여들기 때문에 테러나 극단적인 폭력사태가 발생할 것에 대비함이라는 것은 충분히 납득할 만한 일로 보인다. 세상이 점점 안전한 곳이 아니라는 사실에 대해서 슬픔을 느낀다. 여행을 하면서 낯선 곳에서 집에서 누리는 것과 같은 안전감을 기대할 수 없으리라는 불안감은 늘 긴장을 유발하는 요인이었다. 집사람은 내가 여행 와서 과민하게 자신을 통제하거나 간섭한다고 가끔 폭발하곤 했지만 나로서는 아내의 안전이 중요하고 무사히 아이들 곁으로 함께 돌아갈 수 있기 위해 신경이 곤두선 결과임을 납득시키기가 어려웠다. 그래서 여행이 끝나고 한 주일이 지난 지금까지 몸과 신경이 아직 온전히 원래의 상태로 돌아오지 못한 것만 같은 느낌을 가지게 되는 것이다. 눈에 보이는 피로와 눈에 드러나지 않는 긴장과 불안을 여행 중에는 제대로 분석하기 어려운 법이다.
검색대를 통과하고 성년의 문을 지나 성당 안으로 들어서자 사람들이 긴 대열을 이루고 조금씩 앞으로 나아가다가 한동안 쉽게 움직이지 않고 머무는 느낌을 받았다. 성당 관계자가 멈추지 말고 지나가라고 독려하는 이유가 바로 프란치스코 교종의 무덤 앞임을 알게 되었다. 이렇게 우리들은 잠시 스쳐 지나가면서 당신을 추모하지만 지난 4월 선종 소식을 듣고 마음속으로 당신의 무덤에 찾아갈 수 있게 해달라고 기도한 그 결과가 이렇게 현실이 되었다는 사실에 감사를 드리는 마음으로 기도했다. 내 생애에서 몇 번 안에 꼽을 수 있을 만큼 행복한 순간이 아닐 수 없다. 하느님은 참으로 자비로우시고 사랑이 많으신 분이다. 그런데 그분 앞에서의 내 삶은 그에 맞갖은 내실을 갖지 못하고 있음을 자책할 수밖에 없다. 이런저런 생각들이 짧은 순간 머리를 스치며 지나간다.
언론에서 보았던 것처럼 흰 대리석에 성체등과 같은 불이 켜져 있는 소박한 모습의 무덤이 바로 세상을 위해서 자신의 삶을 온전히 봉헌했던 우리의 교종 프란치스코의 안식처다. 부활의 날이 와서 다시 일으켜 세워질 그의 몸이 잠들어 있는 곳이다. 그는 ‘희망’이라는 자서전에서 자신을 그저 지나가는 작은 발걸음에 불과하다고 했지만 그의 삶의 궤적은 거대한 인력을 형성해서 사람들을 그의 무덤으로 끌어당기고 있다. 부활의 그날까지 평안히 쉬시기를 기도하며 그 자리를 떠나 우리는 또 우리의 길을 계속 가야만 한다. 이제부터는 살아 있는 사람들의 시간이다. 여기 모인 모든 사람들은 이제부터 저마다 자신의 삶을 성화시키기 위해 노력하며 하루하루를 살아가야 하리라.
산타 마리아 마조레 성당을 떠나서 녹색 시티투어버스를 타고 콜로세움을 지나 과거 로마의 전차 경기장이었던 키르쿠스 막시무스 정거장에서 내려 원형의 옛 경기장 유적을 바라보면서 걸어서 산타 마리아 코스메딘 성당으로 갔다. 이 성당은 500년 경에 건립된 오래된 성당이다. 이 성당이 유명한 것은 로마시대 하수도관 뚜껑이라는 설도 있는 진실의 입이 성당 입구에 있기 때문에 사람들이 필수적으로 들르는 장소가 되었다. 우리는 줄을 서서 기다리다가 진실의 입에 손을 넣고 돌아가면서 사진을 찍었다. 거짓을 품은 사람의 손이 잘린다는 속설이 있는 곳이라 사람들이 다양한 표정으로 사진을 찍는다. 성당 안으로 들어가서 정말 오래된 성당의 모습과 그 세월 동안 쌓인 믿음의 흔적과 나름의 아름다움을 느껴보며 살펴보았다. 지하까지 모두 돌아보고 나와서 다시 버스를 타고 베네치아 광장으로 갔다. 점심을 먹고 다시 투어버스를 기다렸지만 매번 승객이 가득 차 있어서 탑승에 실패를 하고 기다리다 못해 결국 포기하고 걸어서 트레비 분수로 이동했다. 이로써 이 분수는 두 번째가 되었다. 근처에서 집사람과 조카는 젤라토를 사서 맛있게 먹고 형님들 내외분은 베네통 매장에서 손주들 옷과 당신들 옷을 고르고 사느라고 시간을 한참 보냈다. 버스를 갈아타고 다시 숙소로 돌아오니 하루의 일과가 얼추 마무리가 되었다. 드디어 로마에서 하고 싶었던 버킷리스트 하나를 수행할 수 있었던 하루였다. 프란치스코 교종과의 약속을 지킨 듯해서 뿌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