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레선생, 남유럽 3개국 여행일기

- 2025년 10월 28일 화요일(로마에서 바르셀로나 이동 1일 차)

by 차거운

이탈리아와 로마를 떠나야 하는 날이 밝았다. 그리고 우리가 14박 15일간 묵었던 성 바오로 딸 수도회 총본부의 숙소를 떠나야 하는 날이기도 하다. 아침을 먹고 우리는 성 베드로 대성전을 향해 버스를 타고 갔다. 베드로 대성전은 언제나 사람으로 넘치고 있었지만 조금 이른 시간이어서인지 그래도 좀 나은 편이었다. 성전 출입을 위해 줄을 서서 조금 기다리니 검색대를 통과해서 입장할 수 있었다. 드디어 대성전 내부로 들어가게 된 것이다. 성전 희년 문에 손을 대고 기도하면서 들어서니 피에타 상이 하얀 대리석의 특유한 정갈함 위에 예수 그리스도의 수난과 성모 마리아의 슬픔을 포개어 조용히 우리를 맞이해 주었다. 그리고 성전 내부를 둘러보는데 제단을 감싸고 있는 청동 기둥과 광대한 내부 공간이 경건함을 자아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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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가 세계 가톨릭의 심장이다. 옛날 유다인들이 예루살렘의 성전에 대해서 갖고 있던 애정과 자부심이 이러할까. 예루살렘의 성지들이 주님의 발자취를 상기시키는 곳이지만 거기에서 출발한 초기 교회가 로마에 이르러 성 베드로와 바오로의 순교로 상징되는 수난을 극복하고 정신적 구심점을 형성한 것이 오늘에까지 이르고 있는 것이다. 세상 끝날까지 교회는 살아남아서 구원에 대한 복음을 증언하는 몫을 다하리라는 예감과 확신을 갖게 된다.

지금의 교회는 그 어느 때보다 성덕에 뛰어나고 자기희생적인 목소리로 사회를 향해 예언자적 목소리를 내고 있다고 본다. 교회는 우리가 의지할 수 있는 거대한 윤리적 정신적 구원의 언덕이다. 사도신경의 그 고백을 우리는 매 미사에서 되풀이하고 있다. 하늘과 지상과 연옥의 모든 영혼이 그 길 위에서 연대하고 있음을 나는 안다. 죽음은 두려운 시련이지만 그 너머에까지 희망이 이어질 것임을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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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란치스코 교종은 늘 이민자와 사회적 약자를 너그럽게 포용할 것을 강조하곤 했다. 낯선 이국땅에 여행이라는 기회로 나와보니 여기서 나는 타국인이고 언어적 소통도 제대로 되지 않는 약자라는 사실을 절감하게 된다. 만약 난민의 신세로 여기에 지금 내가 있는 처지라면 나는 얼마나 위축되고 이 사회는 나에게 어떤 모습으로 다가올까. 역지사지란 말을 생각하게 된다. 우리 역시 고국에서 다른 곳에서 온 예멘 난민들에게 어떻게 대응했던가를 생각하면 지금 세계는 돈과 기술과 관광객은 환영하되 이민자와 난민에 대해서 점점 배타적이고 차별적인 장벽을 쌓고 있음을 목도하게 된다. 다리를 건설하는 사람이 되라는 교회의 가르침을 우리가 얼마나 실천하며 살고 있는지 생각해 본다. 그동안 나 역시 우물 안 개구리처럼 좁은 시야를 갖고 살았음을 뼈저리게 깨닫게 된다. 이번 여정이 순례와 여행이 반반씩 섞인 성격을 지니지만 나의 시야를 넓게 하는데 큰 도움이 되리라는 생각을 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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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친구들이 여행을 많이 해야 한다는 말은 정말 진리인 것 같다. 백문이 불여일견이라는 말도 여기에 보탤 수 있겠다. 많이 경험하고 낯설고 이질적인 문화에 부대껴본 경험이야말로 세계인으로서 함께 살아가는 감각을 기르는데 정말 필수적인 밑거름이 되리라는 것도. 베드로 성전 광장에 설치된 조형물로 난민에 대해서 형상화한 작품을 보고 들어왔다. 성가정의 모습도 거기에 녹여내었다고 한다. 이집트로 헤로데의 위협을 피해 난민이 되었던 것을 상기시키는 것에 대해서도 들었다.

우리는 어떤 점에서 서로에게 손님으로 오가며 살아야 한다는 것. 여행은 바로 그런 경험을 하기에 가장 좋은 계기라고 볼 수도 있겠다. 그리고 이번에 가는 성당마다 하나의 전례와 믿음으로 연결되어 있음을 체감한 것도 큰 기쁨이 아닐 수 없다. 분열을 거듭하는 현대의 흐름 속에서 변하지 않는 진리를 믿고 공통의 신조를 지니고 살아가는 초월적인 연대의 따뜻함을 발견한다는 것은 참으로 큰 위로가 된다. 거대담론이 모두 산산이 해체되고 파편화된 이 시대에도 여전히 자잘한 국경과 경계와 구분을 뛰어넘는 보편적인 믿음이 존재함을 발견한다.

성전을 나오다가 별도로 입장료를 지불해야 하는 구역의 초입까지 가서 김대건 신부님의 성상이 자리한 곳에서 사진을 찍고 인사를 하고 되돌아 나왔다. 이번에 처형의 안내로 요모조모로 알뜰하게 짧은 시간 동안 최대한 방문하고 싶고 확인하고 싶었던 곳들을 모두 알차게 다녀올 수 있었다. 이 모든 것에 대해서 하느님 자비로운 손길의 도구가 되어주신 모든 분들에게 감사의 마음을 간직하고 있다. 성전 안에 역대 교황님의 명단이 새겨져 있는 명판을 보았다. 아직 빈자리가 있다. 앞으로도 이어져 갈 교회의 역사를 잠시 생각해 본다. 성 바오로 대성전의 역대 교황 초상화의 경우와 마찬가지의 의미를 가진 장소라는 생각을 한다. 그렇게 우리는 희망을 안고 이 지상에서 마지막 날까지 살아가야 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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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먹지 않고 나왔기 때문에 이날 아침은 둘째 형님이 내신다고 해서 근처 식당에 가서 마지막 만찬(?)을 나누었다. 이제 우리는 서로의 길을 가야 한다. 아침 식사를 마치고 숙소로 돌아와서 숙소 입구에서 마지막 기념사진을 찍고 우리 내외는 꾸려 둔 짐을 끌고 처형과 운전 봉사를 해주신 파울라 수녀님과 함께 차를 타고 피우미치노 공항으로 향했다. 가는 길에 도저히 그냥 떠날 수가 없어서 짧은 영어로 우리 가족을 위해서 또 지금 우리를 위해 이렇게 차량으로 여든넷의 노구에 매번 사랑의 수고를 아끼지 않으시는 파울라 수녀님께 잊지 않고 기억하며 기도 중에 기억하겠다고 말씀드렸다. 수녀님이 알아들으셨을 거라고 처형이 말씀하셨고 처형이 짐 부치는 곳까지만 동행해서 보고 바로 다음에 공항에 또 와야 해서 돌아가야 한다고 인사하시고 한국에 돌아가서 보자고 서로 인사하고 헤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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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처형이 떠나고 우리끼리만 남게 되자 갑자기 낯선 이국땅에서 난민 신세가 된 것처럼 아득한 심정이 되었다. 이제 마음을 단단히 먹고 우리 마나님을 잘 모시고 무사히 여정을 마친 뒤에 아이들 곁으로 돌아가야 한다. 마음에 부담감이 솟아오른다. 마음속으로 기도했다. 이 여정이 끝나고 아니 이 삶이 끝날 때까지 임마누엘 주님이시여, 함께하소서. 그리고 어릴 때부터 의지해 온 성모님께도 간절하게 우리의 길을 이끌어 도움을 주시도록 기도했다.

이탈리아 항공편으로 바르셀로나 엘프라트 공항에 도착한 시간은 현지 시간으로 3시 5분쯤이다. 비행시간이 2시간이 좀 넘지만 시차로 인해 1시간만 차이가 난 것이다. 공항에서는 예매해 둔 공항버스 승차권으로 승차한 뒤에 우니베르시타트 정류장에 내렸는데 낯선 곳에 떨어지고 이탈리아어에서 스페인어로 바뀌어서 영어조차 버벅거리는 신세가 더욱 따분해졌고 긴장감은 치솟는다. 아드레날린이 과도 분비되는지 온몸이 뻣뻣하게 굳는다. 공항버스에서 같이 내린 여성분이 친절하게 짐이 있으니 지하철보다는 버스가 나을 거라고 알려주고 몇 번 버스를 타라고 안내까지 하고 돌아간다. 참으로 친절한 분이다. 하느님의 손길을 느낀다. 여행 중 그런 느낌을 여러 번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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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글 지도앱을 켜고 내리니 낯선 곳이라 감이 잘 오지는 않았지만 곧 사태 파악이 웬만큼 되었다. 바르셀로나는 대중교통이 잘 되어 있어서 정거장 안내도 화면에 뜨고 캐리어를 들고 타기에도 버스가 정말 더 나았다. 시내버스는 두 개의 몸체가 굴절되는 장축 버스들이 대부분이다. 캐리어를 끌고 몇백 미터를 가서 우리가 예약한 산트 안토니 호텔에 들어가서 방을 배정받고 3박 4일 묵을 준비를 했다. 이탈리아에서는 수동적으로 이끌려 다닌 측면이 강했다면 이제부터는 모든 것을 자력으로 알아서 해결해야 한다는 각오를 다질 수밖에 없는 순간이 되었다. 짐을 풀고 호텔 금고에 여권과 현금 등을 넣어두고 조금의 현금과 여행용 신용카드를 갖고 지하철 역으로 우선 가서 바르셀로나 패스 3일권을 수령했다. 수령은 ATM처럼 생긴 발권기에서 했는데 그리 어렵지는 않았다. 이제부터는 대중교통을 3일간 무제한으로 이용할 수 있게 되었다.

역에서 나온 후에 우선 저녁을 먹기로 했다. 스페인에서 곤혹스러웠던 것은 우리처럼 식당이 웬만하면 상시적으로 여는 것이 아니라 점심 장사를 하고 저녁 7시, 7시 30분, 8시에 열어서 11시 정도까지만 장사를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 시간 이외에 배가 고픈 우리들은 개점 10분 전에 가면 받아주겠지 하고 갔다가 매번 쫓겨나듯 나와야 했다는 것이 서러웠다. 이것도 이번 여행에서 문화적 차이에 대한 인식과 함께 새롭게 경험한 요소이기도 했다. 뭐가 좋은 것인지 정답은 없을 것이다. 그저 문화적 차이일 뿐이니 로마에 가면 로마법을 따르는 수밖에 없다. 그래도 여행 내내 적응이 되지 않아 힘들었던 점 중에 하나였다.

아무튼 근처 레스토랑에 가서 빠에야를 2인분 시켜서 먹었는데 양이 많아서 혼났다. 여기는 밥만 시키면 되는 것이 아니라 음료를 반드시 시켜야 한다. 하다못해 포도주나 맥주를 먹지 않으면 생수라도 시켜야 한다. 그냥 물을 주는 일은 절대로 없으니 말이다. 물 먹는데 돈을 이렇게 많이 써보기는 머리에 털 나고 처음이었다. 숙소에서 그 유명한 가우디의 유산인 성 가족 성당(일명 사그라다 파밀리아)까지 도보로 10분이 되지 않는다고 나온다. 그렇지만 오늘 현지 적응이 매우 힘들고 긴장되었으니 숙소에 들어와서 씻고 잠을 자기로 한다. 내일은 가우디 투어를 하는 날이다. 성 가족 성당이 9시, 수난 파사드 탑이 9시 15분, 구엘 공원이 10시 30분, 카사 바트요가 오후 2시 5분에 각각 입장 예약되어 있다. 바르셀로나의 밤이다. 무섭다. 영어 공부 더 열심히 할 것을 그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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