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5년 10월 27일 월요일(아씨시 방문일)
오늘 일정은 다시 로마를 벗어나서 성 프란치스코의 고장인 아시시를 다녀오기로 한 날이다. 올해 9월 7일에 시성된 젊은 성자 아쿠티스의 무덤이 있는 곳이기도 해서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고 이어지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다. 이탈리아에서 꼭 방문하고 싶었던 곳이고 순례자로서 거닐고 싶었던 장소이기에 내일까지로 마감되는 이탈리아 순례 여행의 중요한 의미를 지닌 곳이기도 하다.
아침 일찍 수녀원 숙소를 떠나 역시 파올라 수녀님의 배웅을 받으며 테르미니역에서 오전 6시 55분에 출발하는 지역 열차를 타고 아시시로 향했다. 수녀님 처형 덕분에 이탈리아의 대중교통을 골고루 경험하게 되었는데 버스, 지하철, 고속열차, 지역 열차 등을 모두 경험하게 되었고 버스 여행도 남부 투어에서 경험한 바 있다. 이번의 첫 경험은 국가별 차이는 있겠지만 비슷한 문화적 배경과 사회 시스템으로 연결되어 있는 유럽 국가들을 이해하고 여행하는 데 있어서 앞으로 큰 경험적 자산이 되어줄 것으로 믿는다. 이는 실제로 며칠 뒤의 스페인과 포르투갈 여행에서 현실이 되었다. 그래서 초기 경험이 중요한 것이라고 하는 것이다. 일종의 백신이라고 할 수 있겠다. 테르미니역의 지역 열차를 타는 것은 일단 승강장 구역으로 들어가서 진행 방향으로 가장 좌측으로 깊숙이 걸어 들어가면 거기에 기차가 대기하고 있다. 늦을까 봐 조바심을 내며 뛰는 우리 일행에게 역 관계자가 천천히 가라고 안심 겸 당부를 한다. 아무튼 무사히 기차에 올랐고 9시 15분경에 작은 소도시의 관문인 아시시 역에 도착했다.
아시시 역에서 내린 후에 버스를 타고 성 프란치스코 광장과 대성당 입구에 도착했고 내부에서는 사진을 찍지 말라고 되어 있었다. 여기가 중세와 근현대 가톨릭의 역사에서 가장 유명한 성자인 오상의 프란치스코 성인이 잠든 곳이며 살아서 활동한 근거지이다. 성녀 클라라와의 유대, 멀리 이슬람의 살라딘과의 만남, 태양의 찬가와 같은 노래, 늑대를 순한 양이 되게 하고 새들과 대화를 하던 평화와 자연보호의 수호자이며 가장 동양적인 정신의 소유자라고도 일컬어지는 프란치스코 성인의 체취를 느낄 수 있는 곳이다. 언덕에 높이 올라 있는 성당 주변은 농경지가 펼쳐져 있고 특히 올리브 농장이 많이 있어서 사방이 올리브 나무로 가득하다.
성당을 둘러보고 거리를 천천히 걸어 성인이 ‘무너진 나의 집을 고쳐라’는 주님의 말씀을 들었던 다미아노 성당으로 가던 중에 15세에 백혈병으로 세상을 떠난 미디어를 통한 선교의 상징이 된 청년 성자 아쿠티스의 유해가 있는 산타 마리아 마조레 성당에 들렀더니 사람들이 세계 각지에서 찾아와 길게 줄을 서서 이동하면서 까를로 아쿠티스 성인의 무덤에서 간절하게 저마다의 기도를 올리는 것을 보았고 나 역시 그런 과정을 거치면서 그 자리를 통과했다. 이로써 내가 이번 여행에서 이루고자 했던 목표가 성취된 셈이다. 감사로운 일이다. 사람이 마음먹은 일이 이렇게 이루어질 수 있다는 것은 의지만으로 될 일이 아님을 잘 알기에 이 모든 것이 주님이 허락하신 일임을 의심할 수가 없다. 모든 일에 감사하는 것이 믿는 이의 본분임을 알기에 나는 그렇게 이 여정을 이해하고 받아들였다.
산타 키아라 성당을 지나 일단 성 다미아노 성당으로 내리막길을 내려가면서 올리브 과수원의 아름다운 풍광과 드넓게 펼쳐진 아시시의 대지를 푸른빛으로 맑게 빛나는 대기 속에서 굽어보면서 천천히 걸어갔다. 고등학생과 초등학생들로 보이는 각각의 단체가 인솔자로 보이는 선생님들과 함께 우리와 뒤섞여 앞서거니 뒤서거니 그렇게 함께 걸어가고 걸어왔다. 수녀님 처형이 이탈리아어로 말을 걸자 아이들의 눈이 대화 당사자인 두 사람에게 집중된다. 아이들은 어느 사회에서나 보석 같은 존재다. 아이들의 눈이 맑고 눈동자는 검게 빛이 난다. 수도원과 함께 구성된 다미아노 성당을 둘러보고 다시 이번에는 언덕길을 걸어 올라오면서 무료 화장실에 들렀다. 여기는 역시 인심이 다르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화장실 문화와 관련해서는 역시 우리의 그것이 더 낫다는 생각을 한다.
산타 키아라 성당의 내부에는 들어가지 못하고 그 앞 광장과 같은 공간에서 주변을 보면서 우리 일행은 바올렛따 수녀님이 싸주신 김밥을 먹었는데 재료를 구하기 어려우셨을 텐데 이렇게 맛있는 김밥이 두 번 다시 없을 것 같이 맛있고 촉촉했다. 김밥을 먹는 우리 일행을 이국의 어린 여자아이가 한참을 쳐다본다. 혹시 케데헌을 보고 김밥에 대해서 알고 있어서 그런 걸까. 하나 줄 걸 그랬나.
앞에서 만났던 학생들이 가득 찬 버스에 어찌어찌 함께 타고 아침에 우리가 내렸던 아시시 역에 내린 후 지하보도를 통해 아시시 아랫동네에 해당하는 지역에 있는 산타 마리아 델리 안젤라 성당에 도착했다. 잠시 기다렸다가 성당 내부를 돌아보고 지금도 비둘기 두 마리가 프란치스코 성인상 주변에서 살고 있는 곳을 지나 양처럼 순한 늑대와 함께 있는 동상도 보고 성물방에 들러 귀국해서 가족이나 친지에게 선물할 용도로 묵주를 몇 개 구입했다. 여행 와서 물건을 구매한 것은 이번이 처음인 것 같다. 조카 00이는 젊은 친구답게 소소하게 마그넷 기념물이나 작은 물건들을 수시로 구매해서 짐을 늘려가는데 우리는 아직 여정도 멀고 그런 것과는 거리가 있는 성격이라 그런 것 같다. 나중에 처형 수녀님이 묵주를 더 사서 갖고 귀국하시겠다고 해서 6개에서 10개 정도 부탁을 드리고 이번에는 네다섯 개만 구입했다. 나중에 바르셀로나 몬세라트에서 기적의 메달 두 개와 파티마에서 묵주를 하나 더 구매한 것이 내가 이번 여행에서 구매한 것 전부다.
성당 마당에 다시 모인 후 기차 시간이 될 때까지 조금 여유가 있어서 근처 바에 들어가서 음료와 젤라토 등을 먹으면서 쉬다가 오후 4시 27분 출발하는 기차를 타고 로마 테르미니 역으로 귀환했다. 역시 바울라 수녀님이 마중을 나와 주셨고 우리는 숙소에 돌아와 마지막 날의 여운을 즐기면서 바울렛따 수녀님이 사랑으로 준비해 주신 한식을 저녁으로 먹었다.
내일 우리 내외는 2시 5분에 파우미치노 공항에서 스페인의 바르셀로나 엘프라트 공항으로 떠날 것이고 다른 가족들은 저녁에 인천으로 가는 비행기를 타게 될 것이다. 그리고 다른 수녀님이 또 계셔서 파올라 수녀님은 세 번이나 공항까지 왕복을 하신다고 하니 정말 몸 둘 바를 모를 일이다. 그리고 내일 오전 시간을 이용해서 성 베드로 대성전의 내부를 들어가기로 했다. 외관만 보고 내부를 보지 못했기 때문인데 성전 입구에 그 유명한 피에타 상이 있는 곳이다. 그리고 전 세계에 방송되는 부활, 성탄 미사가 집전되는 곳이기도 하니 이번에 보지 않고 떠난다면 성지 순례의 의미가 퇴색될 것이라고 믿는다. 주님께서 이 모든 경험에 대한 나의 욕구를 이해하시고 도와주신다는 느낌을 이번에 강하게 받았다. 내일도 잘 진행될 것이라고 믿는다.
성 바오로 딸 수녀회에 몸담고 계신 처형 덕분에 본원과 총본부의 모든 수녀님들이 주일마다 한 번씩 두 번이나 식사에 초대해 주시고 차량으로 봉사해 주시고 숙소와 식사를 지원해 주시는 등 금전적으로 계산이 불가한 사랑과 돌봄을 베풀어 주신 것에 대해서 감동하지 않을 수가 없다. 사랑으로 움직이는 세상의 문법은 이런 것이 아닐까. 세상에 이미 하늘나라의 섭리가 작용하는 영역이 굳게 자리하고 있음을 깨닫게 된다. 우리가 보고 듣지 못할 뿐이지 세상은 하느님의 능력이 움직이는 창조의 자리임을 짐작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