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5년 10월 26일 일요일(로마 시내 탐방 4일 차)
두 번째 주일이 밝았다. 새벽에 일찍 일어나 아침을 먹고 집사람과 나는 숙소 앞 정류장에서 881번 버스를 타고 종점인 성 파울라 정류장에서 내려 다리를 건너 성 베드로 대성전 쪽으로 걸어갔더니 사람들이 줄을 이미 한참 서 있었다. 같이 줄을 서 있다가 뭔가 이상해서 짧은 영어로 물어봤더니 이 줄은 성전에 입장하는 줄이지 바티칸 박물관 줄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래서 냅다 빠져나와서 소방관 옷을 입은 사람에게 다시 한번 물어보니 손가락으로 한 방향을 가리키길래 옳다 그렇구나 하고 그리로 냅다 달리듯이 달음박질을 쳐서 가니 높다란 성벽이 아득한 그 아래로 사람들이 줄을 서 있어서 물어보니 맞다고 한다. 박물관 입구는 꼬부라져 있어서 아예 보이지도 않는다. 그래도 구글 지도 앱으로 보니 백여 미터 정도 떨어진 것으로 나와서 그때부터 버티기로 들어갔다. 입장 시간이 되어도 줄이 줄어들지 않더니 한 시간이 더 지나자 그제야 조금씩 줄이 이동하기 시작한다. 새치기를 하는 몇 사람을 같이 줄을 서 있던 다른 나라 아주머니가 용감하게 지적하니 그들은 슬그머니 뒤로 빠져나간다. 드디어 무료입장이라는 기분 좋은 목표를 달성하게 되었다.
집사람과 바티칸 박물관에 들어가서 입구부터 동선을 따라 천천히 관람하면서 역대 로마 교황들이 수집하고 보존해 온 미술품들을 살펴보았다. 소장된 작품들도 방대하고 현대 작가의 작품도 많았다. 이집트 유물이 초입에 배치되어 있고 쐐기문자로 보이는 점토판도 있었다. 고대 로마의 조각들은 더 많았다. 조각들은 생생하고 역동적인 움직임을 보여주었고 마치 살아 있는 것 같은 느낌을 준다. 오리가 개구리를 입으로 낚아채어 먹으려는 동작을 돌로 이렇게 생생하게 표현할 수 있다는 점이 참으로 놀랍기만 하다. 진흙으로 빚듯이 대리석을 자유자재로 다듬어내는 그 솜씨는 혀를 내두를 정도다. 늑대가 사슴 등에 올라타서 물어뜯는 그 모습은 현대의 생태 다큐멘터리 영상을 보는 것과 같은 현장감을 부여한다. 몸통과 다리 윗부분만 남은 토르소는 그 자체로 완벽해서 보완할 필요가 없다고 했다는 말이 허언이 아닐 수 있음을 실감케 했다.
회랑을 지나는 내내 다양한 조각품들이 눈을 가득 채운다. 먹지 않아도 배가 부를 정도의 문화적 포만감을 느끼게 하는 향연이 아닐 수 없다. 회랑 천장에도 그림이 가득하게 채워져 있어 빈틈이 없을 지경이다. 이것은 하루아침에 이루어질 수 없는 것이다. 그렇다. 문화적 역량이나 산물은 속성으로 이루어질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김구 선생의 문화가 아름다운 나라의 포부는 진정 오랜 시간을 필요로 하는 일이기에 백년 천년 대계를 세워 긴 안목으로 접근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한다. 우리나라에도 이런 긴 역사를 품고 있는 박물관과 미술관을 계속 만들어가야 한다. 옛것을 보존하고 지금 이루어지는 작품들을 품어 안아 미래에는 문화의 저장고가 될 수 있도록 긴 안목으로 운영해야 한다. 국가만의 일이 아니라 모든 개인과 사회 전제의 마음이 그런 마음으로 하나가 될 필요가 있다.
드디어 시스티나 대성당 구역으로 들어서니 우리에게 너무나 익숙한 아테네 학당의 그림이 눈에 들어온다. 고호의 그림도 있었고 샤갈의 작품도 있다. 의외다 이런 작가의 작품도 여기에 소장하고 있었다니. 심지어 달리의 그림도 발견할 수 있었다. 바티칸의 사진 명소인 나선형 계단을 한 장 사진으로 남겼다.
정말 눈이 호사를 누린 시간을 뒤로하고 박물관을 나서다가 점심을 먹기 위해 버거킹으로 갔는데 다른 가족들이 줄이 너무 길어서 포기를 하고 우리가 있는 곳으로 합류했다. 우리가 바티칸 박물관을 보기 위해 아침 일찍 출발한 것은 신의 한 수가 된 셈이다. 빠듯한 형편에 우리 내외가 다시 로마에 올 수 있을지는 기약할 수 없는 일이기에 아쉬움을 남기지 않을 수 있게 되어 참으로 다행스럽다.
그런데 이제는 주일미사를 보는 문제가 떠올랐다. 그래서 처형과 상의한 결과 숙소 근처에 있는 지역 본당에서 7시에 미사가 있다고 하니 거기에서 보기로 결정하고 오후에는 성 바오로 대성전에 가기로 했다. 둘째 형님과 셋째 형님 우리 내외 그리고 수녀님 처형 이렇게 다섯 명이 그렇게 하기로 했고 나머지는 시내에서 쇼핑을 하고 나서 숙소로 바로 가기로 결정이 되었다. 지하철을 이용해서 성 바오로 대성전으로 이동하였는데 오타비아노 역에서 산 파울로 역까지 테르미니 역에서 환승하면서 이동했고 덕분에 로마의 지하철에 대한 경험도 이때 할 수가 있었다. 만약 다음에 온다면 많은 도움이 될 경험을 한 셈이다.
성 바오로 대성전은 사진으로 보는 그대로였다. 검색을 통과해서 성당 구내로 들어가자 가장 먼저 반기는 것은 칼을 들고 있는 성 바오로의 성상과 그 뒤를 채우고 있는 성당의 웅장한 모습이었다. 전에는 막연히 바티칸 근처 어딘가에 이 성전이 있을 거라고 생각했었는데 상당히 멀리 외곽에 있는 것을 확인하게 되었다. 이 성전 역시 희년 순례지로 지정되어 있고 4대 성전에 포함되어 있다. 성전 안에는 역대 교종들의 초상이 1대부터 빠짐없이 채워져 있고 프란치스코 교종까지 있는데 현재의 교종인 레오 14세는 아직 그려지지 않았다. 그리고 아직 비어 있는 몇 군데의 초상화 자리는 앞으로 채워질 것이라고 한다. 교회의 그 유구하고 끊어지지 않는 역사의 흐름을 체감하게 하는 경험이다. ‘내가 세상을 이겼다. 죽음의 세력도 교회를 흔들지 못하리라.’는 주님 말씀을 떠올리게 된다. 세상 끝날까지 교회는 그렇게 살아남아서 증언하고 희망으로 살아갈 것임을 생각하면서 성전을 뒤로하고 숙소를 향해 버스를 타고 귀환했다.
참으로 보람 있는 하루가 아닐 수 없다. 이제 주일미사만 참석하면 더 바랄 것 없다는 생각을 하면서 숙소에 도착했다. 숙소에 도착해서 조금 쉬다가 바로 근처 성당을 향해 걸어서 갔다. 버스로 서너 정거장 거리여서 늦지 않게 도착해서 필리핀 출신의 신부님이 집전하는 미사를 보았고 저녁 미사에는 나이 드신 형제자매님들이 많았고 필리핀 공동체로 보이는 그룹이 눈의 띄었다. 조촐하지만 강론은 알아들을 수가 없었고 조용히 성체를 모시고 미사가 끝날 때까지 오늘 하루 그리고 지금까지 우리를 보호해 주시고 이끌어주시는 당신의 자비로운 손길에 감사의 마음을 고백하면서 묵상을 했다. 참으로 은혜로운 하루였다.
미사를 마치고 가족들은 모두 본부의 수녀님들이 초대한 만찬에 저녁식사를 하러 올라가 있었기에 우리도 조금 늦었지만 올라가서 식사에 합류했다. 전임 총장 수녀님이 나폴리 출신이신데 우리를 위해 직접 나폴리식 스파게티를 만들어주셨고 집행부에서 처형과 같이 6년을 일하신 수녀님들과 인사를 나누고 포도주와 세 차례 코스로 진행되는 조촐하고도 풍성한 식사를 감사히 하게 되었으며 서로의 이야기를 수녀님의 통역으로 나눌 수 있었다. 총장 수녀님은 한국에도 몇 차례 다녀가신 경험이 있고 이태리를 뿌리로 두신 미국 수녀님 등의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우리 가족을 위해 이렇게 환대를 베풀어 주신 수녀님들 모두에게 지금도 진심으로 감사의 마음을 간직하고 있다. 세상의 논리와는 전혀 다른 차원의 관계 맺음과 친교를 경험한 소중한 시간이었다. 참으로 주님은 우리를 위해 그리고 나를 위해 이렇게 아낌없이 당신의 사람들을 통해 베풀어 주신다는 점을 뼛속 깊이 느끼는 시간들이었다. 우리 주위에 있는 사람들을 통해 하느님을 만나야 한다는 사실을 이 경험이 깨닫게 해 주었다. 나도 그런 의미에서 하나의 은혜로운 도구가 되어야 함을 알게 되었다. 우리는 서로에게 하느님의 손길이 되어야 한다. 그럴 때 세상은 구원을 향해 힘차게 나아갈 수 있으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