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5년 10월 25일 토요일(로마 시내 탐방 3일 차)
오늘은 콜로세오와 팔라티노 언덕, 티투스 개선문, 포로 로마노, 카스토르와 플룩스 신전 등이 한데 묶여 있는 지구를 둘러보기로 한 날이다. 아침 8시 15분경 숙소를 출발해서 버스를 갈아타고 콜로세오에 도착했다. 역시 줄 서기는 로마 관광의 기본이다. 처형이 입장권을 미리 예매해 놓았기 때문에 입구를 찾아 공항 검색대를 무색하게 하는 검색 과정을 거쳐 입장을 했는데 역시 로마 시민들이 채석장으로 사용해서 무지막지하게 돌을 떼어갔음에도 남아 있는 그 규모와 시설이 감탄을 금할 수 없을 지경이다. 정말 로마는 건축과 법률로 세계사에 기여한 나라임을 알 수 있었다. 그리스가 철학과 예술의 나라라면 로마는 실용과 효율성의 나라가 아닐까 한다. 수전을 연출하기도 했고 지하에서 승강기로 검투사들이 등장하고 이곳에서 기독교인을 맹수가 물어뜯도록 해서 무수히 순교하게 되었다는 그 역사적인 장소를 동선을 따라 한 바퀴 둘러보니 말로만 듣고 상상으로만 짐작하던 서양 역사의 고대가 한눈에 들어온다. 로마 이후 서양 역사의 대체적 흐름은 기독교에 의해 통합된 중세이고 그리고 르네상스와 근현대로 이어지는 것이다.
콜로세오에서 내려와 개선문이 하나 좌측에 있고 포로 로마노와 팔라티노 쪽으로 이동하면서 검색대를 한 번 더 거치게 된다. 티투스 개선문에는 예루살렘을 함락해서 파괴한 후에 성전의 7가지 촛대를 전리품으로 개선하는 로마군의 부조가 새겨져 있다. 먼저 좌측으로 이동하여 팔라티노 언덕을 우선 보기로 했다. 로마 왕정기부터 사람들이 살았던 구역이고 추후 황제들의 궁전이 속속 들어선 곳이어서 그 흔적들과 그 규모를 짐작하게 하는 터전들이 남아 있다. 그 안에는 대경기장까지 있어서 화려했던 그들의 삶을 상상하게 한다. 이렇게 많은 관광객이 몰려드는 곳에 생리적 현상을 해결할 수 있는 화장실이 달랑 남녀 한 칸씩 있어서 줄이 길게 늘어서 있다. 참 이런 측면은 우리 입장에서는 잘 이해가 되지 않는 면이 있다. 생리적 배설의 문제를 공공의 권리로 볼 것인지 사적인 비용을 치러야 하는 개인의 문제인지 한 번 세계적인 석학들이 모여서 문화적인 관점에서 토의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
포로 로마노는 여러 공공 기관들이 밀집해 있고 신전들이 있고 하던 공적 생활의 중심지였다. 로마는 다신교적 신관을 지닌 국가였다. 기독교의 유일신적 믿음은 그들에게는 납득하기 어려운 고집이거나 편집적인 배타성으로 보였을지 모른다. 그래서 그토록 지독하게 반체제적인 집단으로 몰아서 박해한 것이겠지. 권력자의 눈에는 자신 외에 절대적인 존재를 비타협적으로 믿는 집단이 불온하고 불안한 대상으로 보일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결국 로마는 무너지고 기독교는 국가적인 공인을 얻게 되었다. 313년의 콘스탄티누스 칙령에 의해서.
포로 로마노의 우측으로 나오면 조국의 제단 건물의 뒷면을 바라보게 된다. 시간이 된다면 트라야누스 원주를 보고 싶었다. 거기 부조에 휘감아 올라가는 방식으로 기록된 개선의 의미가 담긴 내용들을 떠올리며 다키아 전쟁의 승리를 기념하는 그 일종의 개선 기념물을 확인하고 싶었으나 이번 기회에는 어려울 것 같다. 성 베드로 대성당을 보고자 했으나 성당 행사 관계로 너무나 붐벼 포기하고 수도원 숙소로 복귀한 시간은 대략 오후 4시경이었다. 저녁을 먹고 하루를 정리하는 시간을 가졌다. 이렇게 또 하루가 지났고 내일은 다시 주일이다. 매월 마지막 주일에는 바티칸 박물관이 무료 개방된다고 한다. 무료인 만큼 사람들이 몰릴 수가 있기 때문에 그 기회를 살리려면 아침에 일찍 쫓아가서 줄을 서야 할 것이다. 그렇다면 주일미사를 어떻게 할 것인가의 문제가 발생한다. 28일에는 바르셀로나로 우리는 떠나고 다른 가족들은 조금 더 늦게 인천으로 귀국할 예정이라 어떻게 해야 할지 잠시 고민을 했다. 집사람과 나는 다른 가족들과 따로 바티칸 박물관에 새벽 일찍 줄을 서서 입장을 시도하기로 했고 다른 사람들은 수녀원에서 미사를 먼저 보고 바티칸 박물관으로 오기로 했다. 우리는 바티칸 박물관을 보고 나서 그 근처의 성당을 알아보고 미사를 보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