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5년 11월 9일 일요일(마드리드 이동일)
어제 미리 확인한 바에 따라 9시 주일미사를 산티아고 대성당에서 드리기 위해 조식을 먹고 부지런히 걸어서 성당에 도착하니 사람들이 그래도 꽤 있다. 성당 입구에서 미사가 있어서 입장을 통제한다고 하는 관계자에게 미사를 드리러 왔다고 하니 호의적으로 들어가라고 한다. 성당 안에서도 미사 때문에 일반 관람객은 자리를 비켜 달라고 안내하는 방송이 나왔다. 사람들은 제대 뒤편에 계단으로 접근해서 성 야고보의 성상 어깨를 짚고 기도를 하는 것이 일반적인데 이는 바르셀로나 몬세라트의 검은 성모상의 경우와도 비슷하다. 줄을 길게 서서 사람들은 야고보 성인의 성상 어깨에 손을 얹고 무슨 기원과 기도를 드릴까 궁금하다.
산티아고 대성당에서의 미사는 여행기간 동안 참석했던 네 번의 주일미사 중에서 가장 기억에 남았고 마음 깊은 감동을 느끼게 했다. 로마 예수회 성당에서의 미사, 로마 숙소 근처의 작은 동네 본당에서의 미사, 세비야 대성당에서의 미사도 좋았지만 아침 시간이라 사람이 그리 많지 않은 시간에 시간에 쫓기지 않고 차분하게 마음의 준비를 하고 드린 미사여서 그럴 수도 있겠고 아름다운 대성당이 바로 순례길의 종착지로 유명한 곳이어서 일 수도 있겠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우리 여행 겸 순례 여정의 마지막 미사를 여기서 드릴 수 있어서 감사했던 것은 그 차분하고 은혜로운 분위기 때문이었다. 백발이 성성한 신부님이 집전하시고 수녀님이 중간중간 독송으로 미사에 따른 찬송을 하시는 그 목소리가 넓은 공간을 울리면서 나의 마음을 세차게 때로는 차분하게 파고들며 딱딱한 심장을 녹여내는 것만 같았다.
비록 충분히 알아듣지도 못하는 강론일망정 조용히 앉아서 듣는 가운데 저절로 흘러내리는 두 줄기 눈물을 참을 수가 없었다. 나이가 들면서 자꾸 눈물을 흘리는 일이 많아진다. 아쿠티스 성인의 그 맑고 깨끗한 영혼과 비교하면 참 많이도 탁한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는 처지이면서도 그걸 깨끗하게 정화하지 못하고 살아가는 신세가 스스로 부끄럽지만 평소에는 잘 모르고 그냥 관성에 따라 살아갔던 것이다. 그러나 여기 이 자리에 조용히 앉아 지난 4주 가까이 이탈리아와 스페인과 포르투갈의 낯선 거리를 헤매면서 위험한 일을 겪지 않고 곤란한 궁지에 몰리지도 않고 사람들의 호의와 따듯한 마음을 느끼면서 여정을 지나올 수 있었던 것에 대해서 감사하는 마음을 금할 수가 없었다.
또 처형이 소속된 그 수녀회의 전임 총장님을 비롯해서 파올라 수녀님 파올렛따 수녀님 그리고 식사 자리에서 우리를 따뜻하게 환대해 주시던 수십 명의 노수녀님들. 처형과 처가 식구들의 모습. 그리고 집에 남아 있을 딸내미와 아들내미의 모습. 학교에서 만났던 아이들의 모습. 샬트르 수녀님들. 태어나서 지금까지 알게 모르게 나의 힘겨운 삶의 길에서 위로와 힘이 되어 주었던 많은 은인들. 나는 홀로 여기까지 온 것이 아니지 않은가 그런 생각에 하염없이 눈물이 흘러내린다. 어머니와 형제들에 대한 생각에까지 미치면서 여기 이 산티아고 대성당에 도달하기까지 나의 전 생애가 파노라마처럼 흘러가는 것이다.
파티마 대성전의 입구에 새겨진 한국어 성구가 다시 떠오른다. ‘인간이 무엇이기에 이토록 돌보시나이까.’ 그렇다. 이 세상 80억 명이 넘는 그 많은 사람 속에서 당신은 나를 기억하시고 돌보셨기에 지금 여기까지 무사히 올 수가 있었지 않은가 말이다. 나만이 아니라 나에게까지 미친 이 사랑을 지금 나는 뼈저리게 생각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조용히 손수건을 꺼내 흐르는 눈물을 닦으며 이 무딘 마음이 온전히 갈아엎어질 수 있도록 기도한다. 미사가 끝나고 제대 뒤로 가서 야고보 성인의 성상 어깨에 손을 얹고 기도했다. 다음에 여기 올 때는 걸어서 올 수 있도록 성인께서 나를 이끌어 주십사고 말이다. 허락된다면 천천히 천천히 두 발로 걸어서 조금씩 당신이 계신 이곳으로 와서 다시 한번 여기서 순례를 마치고 미사를 드릴 수 있는 은총을 얻어 주시길 기도했다.
성당을 나와서 성당 근처에 있는 공원을 한 바퀴 산책하면 걸었다. 집사람은 처제와 통화를 길게 하고 있다. 낙엽이 물들고 떨어지고 바람이 산산한 것이 이제 북반구에 가을이 오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한국에도 날씨가 많이 추워졌다는 것을 기사를 통해서 보았다. 숙소로 돌아오는 길에 공항에서 비행기를 기다리면서 점심으로 먹을 과일과 음식을 좀 샀다. 그리고 숙소를 퇴실하고 택시를 타고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 공항으로 이동했다.
그동안은 비행기가 크게 연착된 적이 없었는데 여기서는 거의 한 시간 정도가 늦어지긴 했으나 그 정도면 양호한 편이라고 생각하고 마드리드에 도착했다. 마드리드 공항에서는 우버를 통해 숙소로 이동했고 입실 절차를 할 때 한국어를 유창하게 구사하는 직원이 있어 나중에 알고 보니 세계 여행 중에 머물러서 2개월째 인턴으로 근무하고 있는 한국인 대학생이었다. 처음에는 그것도 모르고 ‘한국어를 참 잘하시네요’하고 말을 건넸다가 집사람한테 놀림을 당했다. 코에도 피어싱을 하고 스페인어를 유창하게 구사하는 모습이 놀랍다. 나중에 대화를 나눠보니 대학 3학년 휴학을 하고 여행을 하다가 경험 삼아 일하고 있는 모양인데 내 직업을 묻기에 퇴직한 교사라고 했더니 그럴 줄 알았다고 한다. 이건 무슨 의미일까? 선생일을 오래 하면 뭔가 특유의 분위기가 생긴다고들 하는데 그걸 말하는 걸까? 아니면 일종의 꼰대스럽다는 말일까? 에라 모르겠다. 아무튼 이 마지막 숙소는 호스텔이라는 명칭처럼 아주 고급스러운 숙소는 아닌데 관광지 접근성은 역시 시내 중심부에 있어서 뛰어나다. 다만 조식의 내용이나 객실 내 금고가 무용지물인 것으로 보아 비교적 저렴하게 묵고 가는 숙소로 보인다. 아내는 그럭저럭 만족스럽다고 하니 다행이다.
숙소를 나와서 저녁이라 멀리 갈 수는 없고 산 미구엘 시장이 유명하다고 해서 그리로 가 보았다. 타파스와 술, 과일, 음식 등을 파는 관광객에게 인기가 있는 장소인데 소매치기를 조심하라고 하는 경고를 많이 들었다. 우리는 눈으로만 살펴보고 다시 숙소로 돌아와서 하루를 마무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