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4년 3월 14일 목요일
숙소인 제주 00 리조트가 너무 편안하다. 하루에 한 번 수건 교체를 요청하고 3-4일에 1회 청소를 요청하면 되고 나머지는 우리가 알아서 식사를 해 먹고 쉬고 할 수 있으니 아이들 뒤치다꺼리를 할 걱정도 내려놓고. 자유롭다. 특히 아내의 입장에서 그러할 것이다. 나와는 또 다른 차원에서 홀가분한 느낌을 가질 수 있을 것 같다.
어제 올레길 1구간을 걸어보니 제주의 골골샅샅을 찬찬히 발로 디뎌 가며 느끼는 가장 좋은 방법 중에 하나가 올레길 걷기가 아닐까 한다. 지금까지 제주에 여러 번 왔다 갔지만 언제나 아쉬웠던 건 시간을 갖고 찬찬히 오래 머물면서 외부인의 시선이 닿는 표층만 건드리고 가는 것이 아니라 제주의 삶과 환경을 주민의 관점에 어느 정도 눈높이를 맞추고 바라보는 경험이었다. 이번에 그런 점에서는 매우 좋은 기회가 아닐까 한다. 그래서 오늘부터는 관광지나 유원지, 관광을 위해 구성된 테마 공원 등이 아니라 오름과 골목과 동네를 따라 자연스럽게 걸으면서 오는 봄의 햇살을 맞이하는 의식이라고 생각하고 올레길을 걷고자 한다. 적어도 한 번 정도는 그럴 가치가 있다.
오늘은 그래서 성산항 주차장에 차를 대고 올레 1-1구간에 해당하는 우도를 걷기로 했다. 예전에 학생들을 인솔하고 혹은 가족과 여행차 들렀던 적이 몇 번 있지만 뚜벅이로 우도를 이리저리 걷는 것은 처음이다. 걷는 데 익숙하지 않아서 사실 다리가 오래 걸으면 뻐근하고 그렇지만 나 같은 사람에게는 걷기는 무조건 좋은 것이다. 단 너무 무리해서 역효과를 가져오지 않는 정도에서 적절하게 강도를 유지하는 것이 필요하지만.
성산항에서 수시로 건너가는 배를 타고 우도 천진항에 내려 우측으로 일주하는 방향을 잡아 우도 등대를 거쳐 식수원인 저수지를 에둘러 올레 표지를 따라 걷는다. 참 좋다. 푸르면서도 구별되는 하늘과 바다 사이를 불어 가는 바람도 봄기운이 가득하다. 마님도 생각 외로 잘 걷는다. 우도의 유채가 현무암 밭담과 집담과 묫담을 가득 채우고 간혹 보리싹도 파랗게 솟아 마치 잔디가 길게 자란 듯 초록을 뽐내고 있다. 모든 것이 그림의 배경이 되고 평소 사진 찍기에 열정이 없는 사람들마저 연신 똑딱이 사진기 대신 휴대전화로 사진을 찍는데 찍는 족족 소위 인생 사진이다. 최민순 작가의 ‘인곡(人曲)’은 사람을 주로 찍어 사람의 얼굴과 표정에서 여운이 남지만 제주도에서 찍는 사진은 자연과 인간의 조화를 보여준다. 자연 없이 인간 없고 인간의 존재가 자연의 한없이 아름다운 장면에 구체성을 부여한다.
하고수동 쪽에서 점심을 먹는다. 해물짬뽕과 짜장면 그리고 만두. 마을을 가로질러 길은 이어지고 하우목동항을 거쳐 수학여행 인솔 시 단골로 가는 우도등대와 함께 서빈백사 해수욕장을 지나서 올레길은 원지점으로 간다. 올레길을 걸을 때는 한 구간에 하루를 배정하는 것이 가장 좋을 것 같고 차를 가지고 이동하는 것도 크게 불편하지 않다. 왜냐하면 올레길은 사람이 사는 해변가를 따라 이어지는데 제주의 교통망은 제주를 에돌아 환상으로 이어지는 것이 기본이기에 원점회귀에 대중교통을 활용하는 것이 매우 쉽고 접근성이 높기 때문이다.
내 차를 갖고 제주를 구석구석 운전하고 다니면서 구간별 걷기를 같이 하면 제주의 전체적인 지리와 꼴을 체화하게 된다. 그래서 이번 여행을 통해 제주를 바라보는 눈이 조금은 예전과 달라진 느낌을 갖게 된다. 어느 곳이나 사람 사는 곳이지만 그동안 제주에 대해 다소 편안한 느낌보다는 낯을 가리는 관계에서 오는 그런 느낌이 강했던 것도 사실이기 때문이다. 오늘도 이런저런 깨달음과 만족감을 가득 안고 숙소로 돌아간다. 아, 가는 길에 마님의 요청으로 섭지코지를 들러서 가기로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