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레선생, 제주 보름살이

- 2024년 3월 15일 금요일

by 차거운

갑자기 이틀 꼬박 걸었더니 심장이 벌렁거리는 심부전 현상이 나타나 약간 불안하다. 사회적으로 이렇게 뒤숭숭한 상황에서 응급실에 갈 일이 없어야 할 텐데. 그런 생각이 든다. 뺑뺑이를 돌다가 제대로 된 치료를 받지 못하고 죽을 수도 있는 상황. 의사들이 가진 힘은 여기에서 비롯하지 싶다. 모든 의사가 의업을 포기하면 세상은 어떻게 될까. 군인이 파업하거나 경찰력이 진공이 되거나 행정력이 사라지면. 세상은 어떤 모습이 될까. 홉스가 이야기한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의 사회일까. 재난 영화나 디스토피아 영화에서의 무정부 상황처럼. 인간 사회는 어쨌든 현실적인 상황과 논리를 뛰어넘기 어렵다. 사분오열된 사회, 갈등 지수가 높은 사회는 사람이 살 만한 곳은 아니다. 지구적 차원에서 삶은 우리에게 묻고 있다. 언제까지 세상은 버틸 수 있을 것인가. 삶이 끝나는 곳에 새로운 출구가 열리는 것일까. 길은 있을까? 이런 의문이 우리의 걸음을 내딛게 하기를 새로운 방향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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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 선생님에게 SNS로 제주에서의 일정을 사진과 함께 보내고 있다. 나중에 내가 참고하기 위함도 되고 나의 근황도 알릴 겸 해서이지 학교 일로 바쁜 사람에게 약을 올리려는(?) 것은 아니다. 사람은 자신이 선택한 길에서 시간을 소중하게 잘 활용해야 한다. 하느님께는 천 년도 어제와 같겠지만 하루살이 같은 우리들에겐 이 순간이 다시 오지 않을 구원의 때이자 절정이기 때문이다. 파우스트가 자신도 모르게 내뱉는 ‘오 아름답구나. 너 그대로 멈추어라.’라는 말이 메피스토펠레스의 덫이 아니라 하느님의 창조에 대한 찬사가 되기를. 그렇게 될 때 이 삶이 구원의 가능성을 갖게 되리라.

오늘은 올레길이 아닌 사려니숲길을 걷기로 한다. 우리 숙소에서 조금만 좌회전을 하면 사려니숲길 대형 주차장이 있다. 거기서 사려니숲길 입구까지 가는 길이 또 30분 이상 걸린다. 도로를 하나 건너 길과 나란히 숲을 걷다 보면 삼나무 구간과 다른 나무들이 교차하면서 이어진다. 개울도 있고 오르막도 내리막도 이어진다. 도종환 시인의 ‘사려니숲길’이라는 시를 새긴 시비가 여전히 그 자리를 지키고 있다. 정치인으로 입지를 굳힌 도종환 시인의 현재의 모습도 나쁘지는 않다. 세상을 위해 조금이라도 보탬이 되는 삶을 우리 모두는 살아야겠지.

예전에 수학여행 답사를 위해 빌린 경차를 타고 오 소피아 수녀님과 여기 왔다가 자동차 키를 잃어버려 못 찾고 2박 3일 차량 대여비보다 비싼 돈을 물어주고 시무룩해서 돌아갔던 악몽(?)이 떠오르지만 오늘 다시 걷는 이 길은 사람도 없이 한적하니 좋다. 시골길 넓게 뚫린 포장되지 않은 신작로를 연상시키는 이 길은 길게 붉은오름까지 이어지지만 오늘은 물찻오름까지만 가고 돌아서기로 한다. 제주가 가장 한가한 때가 바로 3월이고 기후 변화로 활동하기 좋은 시기도 이때가 아닐까 한다. 다음에 또 제주 일정을 계획한다면 3월을 먼저 고려할 필요가 있으리라. 곳곳에 무더기로 피어 있는 초록 잎에 노란 꽃의 화사함이 비록 꽃 이름을 알지 못해도 생명 가진 존재에게서 전염되는 그 싱싱한 활력이 사방으로 환희롭게 흐르고 있다. 아름답고 감사로운 이 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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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낭뜰에 쉼팡’이라는 특이한 이름의 식당에 가서 점심을 먹었다. 지난해 10월에 수학여행을 인솔하고 왔을 때 학생들과 단체로 식사를 한 식당이고 벌써 여러 번 들르는 익숙한 음식점이 되었다. 가격도 적절하고 백반 정식이 맛있다. 사실 고등어구이를 좋아라 하지는 않는 편이지만 지난번에 보니 아이들도 정말 맛있게 먹던 기억이 새삼스레 난다. 두루치기 고기와 쌈채도 곁들여주기 때문에 쌈밥을 좋아하는 나의 기호에 잘 맞는 집이다. 집사람이 음식에 대한 열정이 있어서인지 식당에서 만족하는 모습을 보기가 쉽지 않은데 여기는 그런 점에서 합격이다. 오늘은 살살 몸을 추스르는 차원에서 일찍 숙소에 들어가서 쉬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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