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레선생, 제주 보름살이

- 2024년 3월 24일 일요일

by 차거운

이제 내일이면 이 제주를 떠나 완도로 넘어가야 한다. 벌써 아쉬움이 밀려온다. 천상병 시인의 ‘귀천(歸天)’에서처럼 우리의 삶 그 자체가 하나의 아름다운 소풍이었기를 바랄 수만 있다면 좋겠다. 그런 마음에 이백도 ‘춘야연도리원서(春夜宴桃李園序)’라는 글에서 ‘天地는 萬物之逆旅요 人生(光陰者)은 百代之過客’이라 하지 않았겠는가. 모든 것이 ‘야훼 이레’이니 감사하게 받아 누릴 줄도 알아야 한다. 집착하지 않는 것이 필요한 나이니까. 모든 여행과 관련하여 삶에 대한 성찰과 사회에 대한 인식을 빼놓아서는 안 된다. 여행의 끝자락에서 자주 방문한 곳이기는 하지만 마지막으로 간단한 장을 봉개마트라는 곳에서 보고 올라오는 길에 숙소 가까운 곳에 노루생태원에 들러 노루와 눈맞춤을 해 본다. 노루가 황구 정도의 아담한 크기라는 사실이 새삼스럽다. 그랬구나.

그 근처에 오르내리며 보았던 세월호 제주 추모기념관이 있어 들렀다. 세월호. 2014년 4월 16일. 그날을 기억한다. 엎어진 배의 영상은 9.11 직후 반복적으로 보였던 영상, 삼풍백화점의 붕괴, 성수대교의 날카롭게 절단된 상판의 영상만큼이나 선명하게 뇌리에 남아 있다. 연평도 포격으로 불타던 민가와 포상의 불길도 그렇고 천안함의 동강난 선체와 어둠 속에서 희생된 장병들의 모습도 함께 기억된다.

모든 때 이른 죽음은 우리에게 가장 먼저 한 음절의 의문을 던진다. 왜? 그리고 이어지는 세부적인 질문들. 누가? 무엇 때문에? 어떻게? 등등. 안산 화랑유원지의 합동추모관에서 보았던 그 가슴을 후비는 영정들 속의 눈길들. 내가 수없이 함께했던 고등학교 2학년 또래 아이들의 채 영글지 못하고 피지 못한 생을 담은 그 눈길들. 잊지 못한다. 어찌 잊을 수 있겠는가. 내 자식이 아니더라도 우리가 이 땅에서 함께 숨 쉬고 살았다는 이유만으로 내 아이들이 그 아이들과 거의 비슷한 연령대라는 점에서도 그렇다. 이태원에서의 참혹하고 어이없는 죽음들도 그렇고. 숨이 막혀 죽다니. 질식이라니. 바다에서의 죽음도 결국은 숨이 막히는 것 아닌가. 4.19 국립묘지의 영정들 속의 눈빛들도 잊을 수 없다. 1960년의 그 봄. 왜 이 땅의 4월과 5월을 관통하는 봄은 이렇게 아픈 것일까. 4.3의 봄도 그렇고. 양희은의 목소리로 들려오는 ‘하얀 목련’ 노래 가사가 가슴을 후벼 파다 못해 패대기친다.

조만간 진도에 가면 팽목항에도 들러 보아야겠다. 목포의 인양된 세월호도 보고 싶다. 우리가 타고 다니는 비행기와 배편이 엎어지고 사고가 나면 우리는 또 죽을 수도 있겠으나 보다 안전한 세상을 만들려는 노력은 자연재해나 운명적인 사고와는 다른 차원에서의 함의를 갖는다. 유족들이 우리 사회 시민들에게 요구하는 것은 국가와 사회공동체의 겸허한 자기 성찰과 재발 방지를 위한 노력이지 인간의 능력을 초월한 불가항력적인 재난을 없애라고 하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신의 영역이니까.

그러나 인간 스스로 노력하지 않고 ‘놀러 가다가 사고가 난 것이다’라는가 정신대로 끌려간 여성의 삶을 ‘돈을 벌기 위해 자발적으로 한 일’이라고 말하는 것은 인간에 대한 예의를 가진 자가 할 말은 아닐 것이다. 차라리 입을 다물고 침묵을 지키는 것이 나을 것이다. 최소한 그렇다면 비트겐슈타인이 보인 것처럼 ‘말할 수 없는 것에 대해서는 침묵해야 한다’는 성실성에라도 가까워질 수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언행을 함부로 하지 말자. 우리 사회는 지금 막말에 취한 자들이 너무 많다. 자신이 한 말들이 언젠가 자신을 고발하고 단죄할 것이다. 모든 것이 자신에게 업보로 응보로 돌아갈 것이다. 두려워할지어다.

세월호 추모관을 조금 올라오면 4.3. 평화공원이 있다. 그러고 보니 숙소인 00리조트는 제주 봉개동 중산간에 있으면서 사통팔달의 입지를 갖고 있다. 절물자연휴양림이 지척이고 사려니숲길이 그렇고 4.3. 평화공원이 그렇다. 좋은 곳이다. 아이들과 제주도에 온다면 많은 사람들이 제주의 역사와 아픔을 함께 기억하는 장소를 빼놓지 않고 알려주었으면 싶다. 아내는 조천 쪽 4.3 기념관을 갔었고 여기는 처음이라고 한다. 전시된 내용을 보면서 눈이 벌게진 그 모습에서 마음이 어떠한지 금방 표가 난다. 나는 학생들을 인솔하고 왔던 경험이 여러 번이지만 올 때마다 역사의 거대한 수레바퀴가 사정없이 짓밟고 지나간 작은 존재들에 대해서, 우리 아픈 현대사에 대해서 생각하지 않을 수가 없다.

화진포에서 본 이승만, 이기붕 별장의 전시물이 제시하는 내용과 여기에서 보여준 미군정과 이승만 정권의 모습, 서북청년단의 만행 등. 모든 것은 복잡하고 카오스적으로 엮여 있어 쉽게 말하기 어렵다. 그래서 4.3. 기념식에 참석하는 것도 정권에 따라서 엎치락뒤치락하는 양상을 보인다. 그러나 잊지 말아야 한다. 이 모두가 우리의 유산이기에 냉정하게 공과를 평가하는 안목을 갖지 않고서는 착종된 자기 인식 때문에 스스로 역사에 발목을 잡힐 것이라는 점을. 남아공이 아파르헤이트 정책의 후유증으로부터 새로운 미래를 향해 나아갈 수 있었던 것은 만델라가 제시한 ‘기억하되 용서하는’ 방식의 해원과 용서 때문이었다는 것을 우리는 기억해야 한다. 신앙인으로서도 잊지 말아야 한다. 언제나 올바로 거짓 없이 살려고 노력해야 한다는 것이다. 하느님의 천사가 우리의 발걸음 수를 세고 있다는 것은 믿어서 해로울 것이 없을 것이다. 맹목적으로 살지 말라. 삶 너머까지 사람의 자취는 남는 법이다. 역사 앞에서 두려움을 갖고 살라.

다소 무거운 분위기에서 숙소에 귀환해서 서서히 짐을 정리하기 시작한다. 가져온 식재료와 음식들을 알뜰하게 다 먹었고 빨래도 시설을 이용해서 하고 짐을 꾸렸다. 역시 인생은 여행이라는 원초적 비유는 설득력이 있다.

이전 12화수레선생, 제주 보름살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