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레선생, 제주 보름살이

- 2024년 3월 23일 토요일

by 차거운

계획대로 하면 오늘은 조용히 쉬면서 보내려고 했으나 올레길의 가시적인 성과에 눈이 멀어 올레 10-1구간에 해당하는 가파도를 가기로 마음을 고쳐 먹었다. 마라도는 전에 갔던 적이 있으나 가파도 청보리밭은 말로만 들었기에 겸사겸사해서 오늘 가보기로 한다. 집사람은 처형들과 작년엔가 갔었다고 하지만 올레길로 다시 가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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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슬포의 운진항에서 두 번째 배를 타고 건너갔다. 가파도는 구간이 길지 않아 섬을 S자로 휘어지게 돌도록 올레길을 구상한 것 같다. 우도처럼 바다가 사방에서 망막으로 육박한다. 평생 맞을 바람을 몽땅 가불해서 맞아야 하는 것은 나쁘지 않은 덤이고.

올레길을 걸으면서 집사람이 준비하는 간식이 수시로 바뀌는데 샌드위치식 빵이나 단호박, 과일 등이 모두 지칠 때쯤 등장하여 진가를 발휘한다. 그렇지 않았다면 먹는 데만 엄청난 경비가 들었을 것이라는 아찔한 확신이 든다. 넉넉지 않은 살림살이에서도 요모조모 살림의 지혜를 발휘해 준 아내의 노력이 우리 가정의 가계를 떠받쳐 온 것이라고 아니할 수 없다. 아내에게 고생한 보람이 있었다는 보답을 할 수 있게 되기를 바란다. 남은 생애 동안이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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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파도에서 정해진 복행 편 배를 타고 점심은 지난 1월에 지00 선생님, 최00 선생님, 유00 선생. 김00 선생이랑 갔던 모슬포 예전 선착장 앞 동성수산에서 소라 물회와 회덮밥으로 먹었다. 기본으로 곁들여 나오는 밑반찬에 아내가 감동을 한 느낌이다. 사실 이 집은 밑반찬이 좋은 편이다. 어떤 메뉴를 시켜도 기본적으로 제공되는 반찬은 차이가 별로 없다. 남도의 풍성한 손맛을 느끼게 하는 점에서 미덕이 아닐 수 없다.

저녁에는 지난주와 마찬가지로 조천 성당의 7시 30분 특전 미사에 참례하였다. 조용하고 내실 있는 분위기와 주임 신부님의 차분하고 은근한 강론이 좋았다. 믿음은 반짝이는 것이라기보다는 은은하고 묵묵하게 자신의 빛깔을 유지하는 저 제주 현무암의 빛깔과 같은 것이리라. 희로애락의 변화 속에서도 조금씩 자라는 바다 밑 산호처럼 아름답고 단단한 결정을 이루는 것은 오랜 시간이 지나야 가능한 것일 테지. 이제 이 여행도 마지막 정리를 해야 할 시간이 다가오고 있다. 평가하기에는 아직 이르지만 평생 살아오면서 드물게 경험하는 좋은 시간이요 복된 시간이다. 일상의 고단함에서 쉽게 벗어나지 못하는 살아가는 대부분의 이웃들에게 미안할 정도로 과분한 시간이었다.

아, 모슬포에서 숙소로 귀환하기 전에 백00 선생이 아내에게 추천해 준 ‘미쁜 제과’라는 곳을 가야 한다고 해서 그러기로 했다. 기껏 추천해 줬더니 가지도 않았다는 말을 듣지 않기 위해서라도 알리바이를 만들어야 한다. 길은 올레길과 겹쳐 있는 듯했고 한옥 분위기를 풍기게 생긴 가게와 조경 등이 사람들을 불러 모으는 것 같다. 요즘은 아무리 외진 곳에 있어도 인터넷에 소개가 되면 사람들이 기를 쓰고 찾아오니 그래서인지 다들 영향력이 대단한 유튜버나 온라인에서의 인플루언서가 되고 싶어 다들 난리인 것도 이해가 된다. 경제적 수입의 창출이 이런 방식으로 이루어질 수 있다는 것에 적응하지 못하면 앞으로 살아가는 삶이 고단할 것이라는 느낌을 지우기 어렵다. 그것이 나 자신에 해당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의구심은 물론 정당한 근거가 있겠지만 어쩌랴 생긴 대로 살 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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