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4년 3월 26일 화요일
아침에 일어나니 온몸이 뻑적지근하지만 바로 집으로 가기에는 근처에 가볼 곳이 너무 많아 아쉽다. 그래서 검색을 통해 금호 화순 리조트에서 1박을 추가 예약하고 좀 느긋하게 움직이기로 했다. 우선 숙소에서 아침을 해결하고 해남 땅끝마을 전망대를 향해 가기로 했다. 섬이 아닌 육지의 끝이라는 의미인데 생각하기 나름이라고 본다. 전망대에서 보는 완도와 남해의 섬들 바다가 한 번쯤은 와서 볼 만하다는 느낌을 준다. 아, 그리고 여기가 남해를 걷는 남파랑길의 시작점인가 종점이고 서해랑길의 기점인 것 같다. 여기를 걸을 결심은 너무 엄두가 나지 않아 아직은 못하겠고 올해에는 지리산 둘레길, 해파랑길 정도만 걷기로 스스로에게 다짐을 한 바 있다. 앞서 말한 대로 제주 올레길은 3년에 걸쳐 할부로 걷겠고 남파랑 서해랑길은 여건이 되고 몸이 허락하면 추가적으로 생각해 보기로 한다.
가끔 여행 프로그램에 소개되는 해남 도솔암을 가보기로 한다. 경사진 강원도의 길을 연상시키는 경사로를 올라 도솔암 근처 주차장에 차를 대고 몇백 미터 거리의 도솔암으로 걸어가는데 역시 안개가 자욱하고 빗기운이 가득하여 시야가 트이지를 않아 마음이 개운하지는 않다. 도솔암은 새로 건물을 해체하고 지은 모양인지 아직 단청도 없이 목재 빛깔 그대로 서 있고 잠겨 있다. 고개 넘어 바로 관리를 위한 건물이 있는 듯한데 인적은 느껴지지 않는다. 안개가 자욱하여 경관을 전체적으로 보기는 어려웠으나 축대에 해당하는 담벼락 아래가 절벽이라 아찔한 느낌을 준다. 최근에 내가 다소 고소공포증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고가도로 연결 구간을 길게 갈 때 손에 땀이 나고 무섬증이 솟는 느낌을 반복적으로 겪다 보니 말이다. 나의 심장이 약해진 것과도 관련이 있으려나. 도솔암의 본사에 해당하는 미황사에 가서 돌아보고 다시 두륜산 대흥사를 향해 가본다. 대흥사는 과연 대찰이다. 터가 어마어마하게 넓고 대웅전이 특이하게 좌측에 있다. 마치 두 개 이상의 절이 합체한 것 같은 느낌을 주는 규모다. 호국 불사로 짓는 본전이 거의 완성 단계를 보이고 서 있다. 정말 큰 절이다. 그리고 분위기도 좋고 그렇다. 오늘은 불교 사찰 순례라도 나선 느낌이다. 가톨릭 신자로서 좀 죄송스러운 느낌이 든다.
대흥사를 떠나 윤선도의 사적을 찾아 녹우당을 향해 가다가 팥칼국수로 유명해서 문전성시를 보여주는 식당에서 바지락 칼국수로 점심을 해결했다. 녹우당은 예전에 교과 선생님들과 왔던 기억이 나는데 지자체에서 기념관 건물을 잘 지어 놓았다. 전에 보길도에도 간 적이 있었고 세연정과 그 근처에서 ‘어부사시사’의 작가가 살았던 삶의 흔적을 느껴본 적도 있지만 한 사람의 삶은 이렇게 다른 사람의 발걸음을 끌어당기지 않는가? 그러니 삶을 살되 함부로 욕되게 살지는 말아야지.
녹우당을 떠나 멀지 않은 다산초당을 향해 간다. 다산의 묘와 본가 등은 팔당 근처에 있고 운치도 있으나 여기 강진의 유배지는 멀고 멀다. 사람의 삶은 참으로 다채롭다. 그런데 묘한 것은 당대에 부귀영화를 누리고 잘 산 사람보다는 당대의 불우함을 견디고 의미 있는 삶의 결과물을 산출한 사람들을 우리는 기억한다. 기록하는 자의 승리, 혹은 자신에게 충실한 삶의 향기를 남긴 사람들이 결국은 평가를 받는 것이다. 그것이 옳든 그르든 자신의 양심에 거리낌이 없는 사람은 복된 자이다. 나 역시 그렇게 삶을 마무리할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람을 가져 본다. 아내의 사진이 이번에 많아졌다. 앞으로 남은 아내의 삶이 행복하고 풍요로웠으면 한다. 나 같은 사람을 만나 고생하고 살아온 세월에 대해 나도 우리 아이들도 감사하는 마음을 가졌으면 한다. 아내와 어머니의 자리에서 자신의 삶을 희생한 부분들에 대해 기억할 필요가 있다.
화순의 금호 리조트는 온천으로 유명하다. 상당히 외진 곳에 있는 편이지만 근처 마을과 함께 숙소의 위용이 우람하다. 단장을 새로 해서인지 안의 내부가 깔끔하다. 예전의 느낌이 아니다. 대학생 팀이 와서 젊음의 활기가 숙소 내에 가득하다. 꼬치구이 냄새와 술 한잔한 젊은이들의 발그레한 얼굴이 예전 86년 초 대학 새내기 시절 내 모습을 떠올리게 한다. 그게 벌써 삼십팔 년을 넘긴 일이라는 사실이 믿기지 않는다. 그래서 내 몸이 이렇게 삐걱거리는 것일까. 숙소에서 저녁을 먹고 이 여행의 마지막 밤을 보낸다. 내일은 집으로 가야지. 서른이 다 된 딸내미와 아들내미지만 어찌 마음이 쓰이지 않을 수 있겠는가. 그리고 성주간 목요일, 금요일, 전야 미사에 참석해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