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4년 5월 29일 수요일
오늘은 우리가 묵었던 이 천부 성당 영성센터를 떠나야 한다. 아침에 일찍 식사를 하고 짐을 정리해서 차에 실은 후에 101호 방과 욕실을 청소하고 공용부엌의 냉장고까지 마무리를 한 뒤에 숙소를 7시가 지나서 나왔다. 추산 쪽에 있는 성불사 근처 카페 주차장에서 송곳봉을 조망하면서 바다를 보고 사진을 찍고 한참을 머물다가 영성센터의 관리장님께 문자로 작별인사와 감사의 마음을 전달했다. 평리마을에서는 전에 걸어서 방문한 울릉천국 아트센터까지 차로 올라가서 다시 한번 살펴보고 현포를 지나 사동항 방향으로 이동한다.
첫날 우리가 묵었던 국민 여가 캠핑장에서 화장실을 좀 이용하고 우산국박물관을 돌아보았다. 울릉의 우해왕이 벗어던져서 투구봉이 되었다는 설화를 흥미롭게 확인하고 국수바위 남양캠핑장 등도 일람하고 통구미로 갔다. 여기는 유튜버들이 자주 소개하는 곳이기도 하고 낙석 붕괴 사고로 사망자가 발생하기도 한 곳이다. 그래서인지 바위 가까이에는 통제선이 설치되어 일정한 거리를 두도록 하고 있다. 드디어 여기에서 집사람이 더덕을 구입했다. 양도 많고 실한 더덕이라 매우 마음에 들어 한다. 더덕 구입 후 바닷물을 한참 들여다보는데 물이 그렇게 맑을 수가 없다. 피라미 같이 작은 복어 치어가 하늘거리며 헤엄을 친다. 바닷물에 들어가고 싶은 생각은 별로 들지 않는다. 다만 맑은 바닷물을 바라보며 하염없이 읊조리고 싶은 마음뿐이다. 무엇을 읊고 싶은가. '적벽부!'와 같은 심정으로 즉흥적인 그 무엇이기 때문에 구체적으로는 말할 수는 없다.
사동항을 일단 지나쳐서 마지막 일정으로 봉래폭포에 가기로 한다. 저동 쪽에 있다. 주차장이 계단식으로 되어 있지만 차를 댈 수 있는 곳이 있다는 것이 감사하다. 예전에 울릉도에 왔을 때 이곳에 있는 천연 냉장고(풍혈)를 방문했던 기억이 남아 있다. 풍혈을 지나 잘 정비된 삼나무 길을 따라 올라가니 봉래폭포가 자태를 드러내며 반긴다. 사람이 같은 장소에 일생 동안 몇 번이나 방문할 수 있을까. 일상의 공간이 아닌 특별한 장소들은 손으로 꼽을 수가 있을 터이다. 울릉도에 또 오게 될까. 모르겠다. 시절 인연이 시키는 대로 따라야 하겠지. 다시 차로 돌아와서 사동항을 향해 가는 중에 저동에서 집사람이 보아두었던 이레라는 식당과 카페를 겸한 곳에서 비빔밥을 주문해서 먹었다. 현지 주민들이 주로 이용하는 식당이라서인지 가격이 울릉도에서 지출한 식사 비용 중에서 가장 저렴했다. 둘이 15,000원. 이 또한 흐뭇한 일이로다. 맛도 있다. 혼자 하는 이런 작은 규모의 식당이 실속이 있다. 자, 이제 사동항으로 가야지.
사동항에 도착해서 차량 선적 대기 장소를 잘못 알고 엉뚱한 곳에 있다가 잘못을 깨닫고 제 길을 찾았다. 처음 경험하는 일의 시행착오는 다음을 위해 자산이 되는 법이다. 그러니 헤매는 것에 대해 지나치게 민감하게 대응하지 않기로 한다. 배 탑승 시간이 많이 남아서 다소 지루한데 그래도 미리 움직이는 것이 내 성미에는 맞다. 아까 먹은 점심에도 불구하고 3시 30분에 배가 출항하면 후포에 8시 넘어 도착하게 되니 저녁 식사가 애매해진다. 그래서 좀 거리가 떨어져 있는 편의점을 향해 뙤약볕에도 불구하고 걸어서 이동하여 시원한 테라스에서 더위도 식히면서 아이스커피를 탁자에 올려놓고 마시는 한편 훈제 닭다리를 구입해서 가게에 있는 전자레인지에 데워서 곁들여 먹으니 이야말로 손색없는 한 끼의 만찬이다. 요즘은 편의점이 서민들의 간단한 식사까지 책임지고 있다니 시대적 풍속의 관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자, 이제 탑승할 시간이 되어가니 대합실로 이동하도록 하자.
배에 올라 깔판 있는 곳에 가보니 이미 사람들이 깔개를 차지하고 드러누웠다. 역시 노련한 이들의 발 빠른 움직임을 따라갈 우리가 못 됨을 느낀다. 할 수 없이 불편해도 3등 선실에서 버티기로 하고 있다 보니 울릉도에 입도할 때 캠핑카를 몰고 왔던 어르신 내외가 같은 공간에 계셔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고 울릉도에 보낸 경험을 나누다 보니 지루함이 많이 가신다. 5년째 이렇게 자유롭게 다니시고 창동에 거주하신다고 하니 더 반갑다. 또 여행사 상품으로 2박 3일 일정을 마치고 돌아가는 분들은 후포에서 서울행 버스를 타고 올라간다고 한다. 날씨 탓으로 제대로 본 것이 별로 없어 만족스럽지 않은 편이라고 솔직하게 말씀하신다. 1인당 40만 원 가까운 비용을 들인 것에 비하며 시간의 측면에서 아쉬움이 있지 않겠나 생각한다. 그렇게 본다면 우리가 이번에 알뜰하게 잘 지내다가 돌아가는 것이라는 안도감과 만족감이 든다.
후포에서는 하선할 때 자신의 차를 본인이 직접 운전하도록 한다. 즉 후포에서는 본인이 차를 선적하고 하적하는데 비해 울릉도에서는 선사에서 선적과 하적을 모두 선사 측에서 대행하는 것이다. 울릉도를 떠나오면서 배에서 잠시 선상으로 나가서 거센 바람 속에서 멀어지는 울릉도의 아련한 모습을 찍었던 사진의 여운을 떠올리며 후포항을 나서니 어찌해야 할지 고민이 된다. 이대로 서울로 올라갈 것인가. 아니면 근처 혹은 고래불해수욕장에라도 가볼까 등등.
일단 저녁으로 문을 닫은 가게가 대부분인 상태에서 여기저기 수소문하다가 저녁으로 칼국수를 한 그릇 먹고 나니 집사람이 나만 괜찮으면 바로 집으로 갔으면 하는 뜻을 비쳐 일단 그러자고 하고 운전을 하는데 차량 전방이 유난히 캄캄한 것이 눈이 나빠진 것인지 도대체 알 수가 없었다. 그 상태로는 집까지 운전할 자신이 없어 고래불해수욕장에 들어갔더니 휑한 것이 지난번과 다르지 않고 경찰 순찰차까지 돌면서 차박 등을 단속하는 것 같아 여기도 안 될 것 같아 다시 귀가하는 방향으로 결정했다. 그렇게 헤매다가 보니 차를 선적하면서 해운사 직원이 전조등을 자동에서 꺼짐으로 바꿔 놓은 것을 알게 되었다. 전조등을 켜니 비로소 운전을 할 만해서 일단 고속도로에 들어와서 졸음과 싸우면서 괴산 휴게소에서 적당히 기름을 넣고 내쳐 달려 집에 도착하니 1시에서 2시 사이다. 그 밤에 짐을 일단 거실에 들여놓고 몸이 워낙 피곤하여 그대로 쓰러져 잠을 청한다. 내일 걱정은 내일로 미루기로 한다. 내일은 내일의 해가 다시 떠오를 테니까. 꿈에 울릉도와 독도가 보이지 않을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