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4년 5월 28일 화요일
오늘은 9시 10분에 사동항에서 독도행 쾌속선을 타야 한다. 아침을 챙겨 먹고 파도가 아주 잔잔하지만은 않을 것이라는 예감 속에서 사동항에 도착하니 사람들이 대합실 매점에서 앞앞이 태극기와 간식과 기념 손수건 멀미약 등을 사는 등 왁자하니 북새통을 이루고 있다. 집사람이 멀미를 할 것 같아 멀미약 하나만 구입하고 시간이 되어 승선하니 씨클라우드 호인데 예전에 묵호에서 다니던 정도의 배가 아닐까 생각했다. 이 배는 속도가 빠르기 때문에 90여 km에 이르는 거리를 1시간 30분 남짓한 시간에 가게 되는데 항해 시 객실 외부 출입은 엄격하게 금지되어 있고 빠른 운항 속도로 인해 바닷물이 선창에 튀어 부딪친 후 빗물처럼 흘러내려 마치 비가 내리는 모습처럼 보인다. 게다가 오늘 바다가 그렇게 잔잔한 편이 아니라서 물 위를 튀어가는 느낌이 더 든다.
대한민국 사람들은 요즘 울릉도와 독도를 묶어서 여행하는 것이 하나의 유행처럼 되어 있는 듯하다. 심지어 하루에 울릉도 입도와 독도 방문을 동시에 하거나 독도 방문 후 육지로 출도하는 일정을 같이 묶어서 진행하는 경우도 많다고 한다. 독도에 가까이 가니 망망대해에 뾰족하게 솟은 바위섬 동도와 서도를 중심으로 작은 바위들이 물결 위에 서서 버티고 있다. 바위들의 군도인 셈이다. 배가 파도에 상당히 흔들림에도 불구하고 독도 접안이 무사히 이루어져 조심조심하면서 콘크리트로 사각의 선착장 구조물을 만들어 공간이 꽤 넓게 보이는 평지에 발을 내디뎠다. 이번 울릉도 여행의 중요한 목표와 소망이 이루어진 순간이다. 기상 변화로 독도를 밟아보지 못하고 돌아가게 되는 것은 아닌가 며칠간 마음을 졸였고 그래서 마음속으로 독도를 눈으로 보고 울릉도 여행을 마칠 수 있도록 간절하게 기도를 하기도 했다. 내일은 울릉도를 떠나 후포로 돌아가야 하니 오늘 이렇게 무사히 독도를 볼 수 있어서 진심으로 감사하다.
퇴직을 하면서 결심한 한 가지는 내가 살아가는 이 땅의 물리적 공간의 지리적 특성과 역사적 배경을 함께 고려하는 인문학적인 성찰을 바탕으로 우리나라의 구석구석을 가능한 한 많이 돌아보겠다는 것이었다. 단순한 관광이나 유흥적이고 도락적인 여행이 아닌 일종의 국토 순례, 성지 순례, 자연 순례, 삶의 현장 순례에 대한 희망이었다. 살면서 언론 보도를 통해 간접적으로만 접한 사건들이 일어난 현장을 역사학도들이 답사하는 마음으로 돌아보겠다는 다짐이기도 했다. 그래서 천안의 독립기념관, 광주의 5.18 국립묘지, 수유리의 4.19 국립묘지, 간성의 김일성 별장, 이승만, 이기붕 별장 등도 관심 있게 다시 방문했었고 한열이가 묻혀 있는 광주 망월동 공원묘지에도 갔었다. 제주에서는 세월호 제주 추모관에 들렀었고 앞으로 진도의 팽목항, 목포의 인양된 세월호 거치 장소에도 방문할 생각이다. 이 땅 곳곳에 역사의 시기 시기마다 무명의 민초들이 삶의 무게를 견뎌냈던 그 굴욕과 영광의 순간들을 기억하는 행위를 차분하게 진행하고 싶다. 그것이 오늘을 살아가는 나의 삶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김해 노 전 대통령이 잠든 곳에도 가겠다. 가톨릭 신자이니 아직 방문하지 못한 성지가 있다면 기회가 되는 대로 찾아 자신의 신앙을 위해 모든 것을 던진 순교자의 철저한 헌신을 기억하겠다. 어떻게 사느냐의 문제는 어떻게 죽는가의 문제와 겹쳐 있을 수밖에 없기에 삶과 죽음은 동전의 양면을 이루는 법이다.
서도의 주민 숙소를 바라보면서 또 독도 등대와 독도경비대가 있는 동도의 계단길을 바라보면서 고독을 생각한다. 세상과 연결된다는 것의 의미. 내가 만약 군생활을 이곳에서 했다면 어떤 생각을 하면서 지냈을까. 하루에도 몇 번씩 도착하는 태극기를 든 다양한 연령대의 국민들을 바라보면서 국가란 무엇이며 영토란 또 무엇인가를 생각하겠지. 세상에서 지켜야 할 가치가 있는 것들은 참으로 다양하며 사람마다 그 가치의 근거가 다를 것이다. 그러나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자신의 목숨을 바쳐서라도 지켜야 할 그 무엇을 지니고 있는 사람의 경우에는 그런 것 없이 살아가는 사람에 비해 삶의 의미를 더 강렬하게 자각하며 살게 될 것이라는 점이다. 지켜야 할 것이 많을수록 어쩌면 우리는 풍요로운 삶을 살고 있는 셈일 텐데 그것이 꼭 물질적인 재화일 필요는 없을 것이다. 사랑이나 추상적인 그 무엇. 아니면 예술, 신앙 등등. 가끔 생각해 볼 일이다. 우리는 무엇을 지향하며 인생길을 가고 있는 것인지 그리하여 우리는, 아니 나는 어디에서 와서 무엇을 추구하다가 어디로 갈 것인지를 늘 고민하면서 살아야 한다. 생각 없이 사는 것은 잘못이기 때문이다. 사람에게는 누구에게나 저마다 한 번의 만남으로 마음에 화인처럼 새겨지는 강렬하고도 원초적인 기억이 있게 마련이다. 독도를 방문한 이번 여정을 나는 잊지 않고 살아가리라.
독도에서 사동항으로 귀환하는 항해에서 집사람이 멀미를 하는지 상체를 숙이고 있기에 흔들리는 배의 통로에서 몸을 겨우 가누면서 매점에서 구토용 봉투를 두 개 얻어다가 하나를 주니 아내는 황급히 거기에 참고 있던 멀미의 결과물을 남긴다. 멀미약을 먹었어도 소용이 없는 모양이다. 나 역시 속이 부글거리면서 구토가 나서 봉투를 사용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바다가 이렇게 잔잔하지 않은 편인데도 무사히 독도에 접안을 하고 돌아가는 뿌듯함 뒤에 멀미의 씁쓸한 맛이 입안에 여운으로 남는다.
사동항에서 부글거리는 속을 달래며 숙소로 귀환해서 쉬었다. 집사람은 식사도 못하고 방에서 쉬고 나는 공용부엌에서 남은 밥과 음식으로 허기진 배를 채웠다. 영성센터의 관리장님은 혼자서 열일을 하고 있다. 보통의 마음가짐으로는 하기 힘든 일일 텐데. 믿는 이들의 마음은 단순한 경제성의 논리나 일반인의 기준으로 이해하기 어려운 경지에 자리하고 있는 것 같다. 주류 경제학이 의도적으로 눈을 감고 있는 영역이기도 하지만 화폐로 환산되지 않는 인간의 자기희생적 행위와 봉사의 영역은 경제라는 빙산의 물에 잠긴 아랫부분에 해당될 수 있을 것이고 이는 세상을 지탱하는 거대한 뿌리에 해당한다. 그런 의미에서 보면 화폐 교환을 통해 경제적으로 측정되는 경제적 영역은 극히 일부에 불과한 셈이다. 마이클 샌델이 언급한 ‘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에 인간의 윤리가 있다. 러스킨이 지적한 ‘포도밭 주인의 경제학’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는 일이다. 그러니 세상에 자신을 기꺼이 내어주고 있는 많은 뜻있는 사람들의 삶을 이해하고 배우고 본받을 일이다. 이제 내일이면 8박 9일의 여정이 마무리된다. 내일 하루를 후포 근처에서 머문다면 9박 10일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