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레선생, 제주 한달살이(2025)

- 2025년 3월 9일 일요일

by 차거운

오늘은 둘째 처형, 셋째 처형 내외, 넷째 처형 이렇게 네 분이 3박 4일간 우리와 함께하기 위해서 제주에 오는 날이다. 그래서 우리의 올레길 걷기 일정을 중단하고 오늘은 둘째, 넷째 처형을 먼저 마중하러 제주공항으로 이동했다. 두 분의 비행기 도착 시간이 얼추 비슷해서 함께 모시고 오기로 했다. 넷째 처형 내외는 공항에서 빌린 차를 타고 저녁에 도착하기로 했기 때문에 오늘은 두 분 처형과 함께 하루를 보내기로 한다. 대구에서 오는 넷째 처형이 먼저 도착해서 함께 커피 한잔하면서 기다리다 보니 둘째 처형도 도착을 하셨다. 큰언니인 첫째 처형이 지난 2014년 겨울에 암으로 세상을 떠나고 벌써 11년이 되었기에 이제 처가의 맏이 역할을 하는 처형이다. 항공사에 근무하는 딸과 사위 덕분에 해외여행을 자주 다니는 분이라 노매드적 분위기를 풍기면서 나타나신다. 네 사람이 탄 차를 몰고 표선 근처에 있는 ‘광어다’ 식당으로 가서 광어 탕수와 회덮밥, 초밥 등을 시켜서 함께 먹었다. 모두들 아주 만족스러운 반응이어서 기대한 바와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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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사를 한 후에 작년에 집사람이 잊지 못할 정도로 기억에 남는다고 하는 물영아리 오름으로 갔다. 삼나무가 우거진 사이로 정상부를 향해 올라가는 길이 공사로 인해 접근할 수 없었기에 오름을 둥글게 도는 둘레길을 따라 천천히 이야기를 나누면서 한 바퀴 걸었다. 길은 산책길처럼 편안하고 숲 사이로 나 있어 고즈넉하고 좋았다. 누군가와 함께하는 그런 시간들은 혼자 보내는 시간과 달리 공동적인 기억과 유대를 쌓을 수 있기 때문에 삶을 풍요롭게 만들기에 좋은 기회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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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영아리 오름을 뒤로 하고 우리가 이동한 곳은 이시돌 목장 부근이다. 여기는 제주교구의 중요한 자산이 되는 곳이다. 새미 은총의 동산에는 복음서의 내용을 압축하여 조각상과 십자가의 길로 꾸며 놓은 은총의 샘 동산이 있고 곳곳에 동백꽃이 피어 사순절인 이 시기와 맞물려 이 지상에서 살아가는 우리의 삶을 생각해 보게 한다. 산다는 것은 무엇인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무엇을 궁극적으로 추구하고 무엇을 덜어내야 하는 것인가? 이런 질문들이 마음속에서 솟구쳐 오른다. 연못이라고 하기에는 다소 규모가 큰 저수지 주변을 묵주알에 해당하는 관목을 동그랗게 잘 다듬어 놓았다. 이곳은 꽤 오랜만에 오는 곳으로 예전에 살레지오 수녀님들이 운영하던 이시돌 젊음의 집에 00여고 학생들을 인솔하여 묵었던 기억이 난다. 그때 바로 뒤에 있던 정물 오름에 올라갔던 기억이며 억새들이 바람에 흔들리던 모습, 고사리를 한 주먹쯤 끊었던 기억 등이 새롭다. 이시돌 요양원, 금악성당, 목장 등이 있고 제주교구에서 야외미사를 할 때 이용하는 야외 미사 터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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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간이라는 것은 사람의 삶을 시간적인 기억과 버무려 간직하고 있다. 그곳을 바라보는 사람의 시각에 따라 읽어낼 수 있는 이야기는 천차만별인 것이다. 깊이 보는 사람과 표면만을 보는 사람은 세상이라는 텍스트를 통해 얻어내는 경험 자체의 폭이 다르다. 임피제 신부님의 삶을 제시하고 있는 쉼터에서 선교사들이 제주에서 이룬 것들을 보게 된다. 안성의 포도와 선교사의 역할, 임실 치즈와 선교사의 삶은 모두 하느님의 선물이 아닐까 한다. 프랑스 외방선교회 사제들이 이 땅에서 한국교회와 함께 흘린 피와 노고와 땀이 오늘날의 한국 가톨릭의 밑거름이 되었듯이 나는 이 세상에 이런 국경을 초월한 형제됨의 통교와 보편된 교회의 모습에서 큰 위로를 받는다.

바벨탑의 교훈처럼 세상이 이해관계와 작은 차이들을 내세워 갈라지고 대립하고 갈등하는 오늘날의 세상에서 하느님이라는 공통된 창조주의 피조물로서 모두가 형제요 자매라는 그 가르침은 우리의 시야를 넓게 하고 열리게 한다. 국적에 따라 인종에 따라 이념에 따라 빈부의 격차와 학벌의 차이와 젠더의 차이를 넘어 모두가 하나 될 수 있는 그 초월에의 가능성이 가슴을 뛰게 한다. 알파요 오메가이신 분 앞에서 우리가 녹아들어 하나가 될 수 있다면 이 세상의 온갖 갈등은 사라질 수 있을 것이다. 언젠가 그런 순간이 오리라는 종말론적 기대를 갖고 살아 있는 이 순간을 충실하게 살 수 있기를 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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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소에 돌아와서 저녁을 먹으면서 기다리니 셋째 처형 내외분이 도착했다. 이야기를 조금 나누다가 숙소로 안내를 한다. 차로 2∼3분 거리에 있는 000 콘도다. 3박 4일을 예약해 두었다. 같이 숙소에 체크인을 하고 들어가 보니 널찍한 공간에 다들 마음에 들어 하신다. 건물은 조금 낡고 시설도 아주 좋아 보이지는 않아도 주방은 새로 수선을 한 것인지 전기 레인지로 깔끔하게 바뀌었다. 한달살이 비용을 물어보니 여름에는 130만 원 정도 하고 겨울에는 150만 원 정도 한단다. 물론 우리가 묵고 있는 숙소와 비교하면 조금 더 불편할 수도 있겠지만 저렴한 편이다. 식사는 우리와 함께 하기로 하고 잠만 자는 것으로 하고 돌아왔다. 내일은 추자도로 가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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