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레선생, 제주 한달살이(2025)

- 2025년 3월 22일 토요일

by 차거운

오늘은 제주 오일장도 보고 비양도도 방문하면서 몸을 추스르기로 한 날이다. 우선 9시에 출발하는 새천년호에 탑승해서 12시 15분에 비양도에서 나오는 배편을 구입했다. 출항해서 비양도에 도착하기까지 한 15분 남짓 걸리는데 성산항에서 우도에 가는 정도의 거리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비양도 선착장에 도착하면 아담한 규모의 비양리사무소 건물이 반겨준다. 협재나 한림 쪽에서 보면 이 건물이 멀리 보인다. 이곳에서 예전에 드라마를 촬영했었나 보다. ‘봄날’이라고 하는데 나는 본 적이 없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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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에 대한 인상은 아담하고 한눈에 쏙 들어오는 규모이지만 본섬이 빤히 보여서 고립된 것 같은 느낌은 별로 갖지 않을 수 있을 것도 같다. 그러나 섬 주민이신 분의 말씀을 들어보면 예전에는 물이 없어서 본섬에서 배로 날라다 먹어야 했다니 그 삶이 어땠을까 바로 연상이 되지 않는가. 사람의 삶에서 물이 없다면 생존이 불가하기에 물 없는 섬은 거주지로서 결격사유가 된다. 따라서 비양도는 어업을 위한 교두보 정도에 해당할 그런 장소일 것 같다. 지금은 바다 밑으로 수도관이 연결되어 본섬에서 물이 공급되고 있다고 하니 참으로 다행이지만 젊은이들은 섬에 거의 남아 있지 않다고 하니 어디나 다 비슷한 현상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삶은 이렇게 보다 나은 조건을 찾아 끊임없이 유동하며 흘러가게 마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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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섬을 한 바퀴 둘러보기로 한다. 설명에 따르면 수직으로 등대를 향해 올라가는데 40여 분 소요된다고 하고 섬을 환상으로 걸어서 일주하는 데는 한 시간 정도가 걸린다고 한다. 우선 계단을 따라 등대를 향해 올라가 본다. 저쪽 편에 협재 해변을 비롯하여 한림항의 방파제 끝자락이 게의 앞발이 그리는 형상으로 뻗어 나와 있다. 바로 지척으로 보인다. 계단길을 더듬어 한 계단씩 올라가면 소나무 사이를 관통하고 다시 조릿대 터널을 통과해서 비양도 표시가 있는 조형물에서 사진을 찍을 수 있게 조성되어 있다. 그리고 조금 더 올라가면 저 멀리로 하얀 등대가 모습을 드러낸다. 아기자기한 그런 공간이다. 섬이라는 공간이 우리에게 주는 느낌은 바로 우리의 감각적 직접성을 크게 초과하지 않는 규모에서 오는 편안함이 아닐까 한다. 등대 주변에서 그야말로 사방이 탁 트여 조망할 수 있어서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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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대에서 내려오다가 비양도 일주도로 쪽으로 내려서서 본섬 반대 방향으로 돌아 걸어본다. 새들의 배설물이 쌓여 하얗게 변한 바위가 멀리 보이고 느긋하게 걷는 발걸음 또한 한가롭다. 이번에 비양도를 방문함으로써 제주도 주변의 가볼 만한 섬은 모두 방문을 하게 된 셈이다. 가파도, 마라도, 우도, 추자도, 비양도 등이 그 대상이다. 울릉도에도 코끼리 바위가 있지만 여기 비양도에도 코끼리 바위 형상이라고 하는 바위가 새들의 배설물로 뒤덮여 하얗게 눈이 내린 것처럼 그렇게 파란 바닷물과 대비를 이루며 묵묵히 서 있다.

비양도의 호니토에 대한 설명을 읽어보아도 지질학적 개념이 머릿속에 잘 정리되지는 않는다. 다만 굴뚝처럼 화산 분출구가 부분적으로 생기면서 만들어져 기묘한 형상으로 서 있는 것이 특이하고 볼만하다. 펄렁못 습지는 바닷가에서 바닷물이 땅 밑으로 스며들어와 솟구쳐 못을 이루었기에 염분이 많은 습지인 것으로 보인다. 비양도에서 보는 바다 물빛은 환상적으로 맑다. 미역을 채취하는 해녀 두 분의 모습을 보았는데 문득 처음 제주 오일장에서 구입한 생미역의 출처가 비양도 미역이라고 쓰여 있던 생각이 났다. 제주에 와서 두 차례 미역을 구입해서 먹었는데 데치지 않고 생미역으로 먹으니 더 맛이 있다. 이제 미역철이 점점 지나고 있다. 그러니 기회가 있을 때 많이 먹어두도록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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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바퀴 돌고도 시간적 여유가 있어 준비해 온 도시락을 먹기로 하는데 여전히 바람이 불고 편안하게 먹는 식사는 아니지만 그래도 먹을 수 있는 것만으로도 행복하게 생각해야 하지 않겠는가. 이 어려운 시대에. 나오는 배는 12시 15분에 거의 맞추어 왔고 바로 비양도를 뒤로 하고 한림항으로 향했다. 이런 정도의 거리라면 다소 고립감을 느끼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 섬 속의 섬이라. 그러나 실제 현실적인 삶은 그렇게 낭만적인 사치를 허용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니 지나친 감정의 드러냄은 삼가도록 하자.

제주 오일장을 보러 갔다. 팔삭이라는 품종의 귤을 한 상자 사서 집으로 보내고 가족들에게 인사를 하는 차원에서 어머니 댁으로 10kg 한라봉 한 박스를 보냈다. 살 만한 것이 있을까 장을 천천히 돌아보다가 병어 반건조한 생선과 몇 가지를 구입했다. 그리고 조금 시간이 지났기에 아직 점심을 먹은 지 오래 되지는 않았지만 왔으니 보말 칼국수 한 그릇을 먹고 싶어서 선미네 식당으로 갔다. 들리는 대화를 보니 손님을 치르느라 식사도 제대로들 못하고 장사를 하신 것 같다. 쉬운 일은 없다는 생각이 새삼 드는 순간이다. 삶의 표면만이 아닌 이면을 읽고 공감할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당위성을 생각하는 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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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에는 00이를 조금 일찍 나오게 해서 바닷가에 가서 저녁으로 치킨을 시켜서 함께 먹었다. 그리고 차 한잔. 저물어 가는 협재 바닷가의 풍경이 아름답다. 오래 기억할 만한 순간이 되리라. 삶의 황혼이 다가올 때면 말이다. 숙소에 돌아왔다가 바로 한림성당으로 가서 미사에 참석했다. 사순 제3주 차다. 제주에서 세 번째 보는 미사다. 주님 이 땅과 우리 모두에게 자비를 베푸소서. 세상의 평화를 허락하소서. 우리가 이루지 못하는 평화를 당신께서는 자비로이 허락하소서. 성서를 읽으면서 종종 ‘두려워 마라. 나다. 용기를 내어라. 너희에게 평화가 있기를!’이라고 말씀을 건네는 예수님의 목소리를 떠올리면 이 세상의 황폐함 앞에서 느끼는 절망과 좌절감이 위로를 받곤 한다. 샬롬! 샬롬! 샬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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