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5년 3월 21일 금요일
오늘도 우리는 걷는다. 이번에 걷는 길은 올레길 16코스로 고내포구에서 광령1리 사무소까지다. 작년에 17코스를 걸은 적이 있기에 오늘 걷고 나면 조천 쪽으로 건너뛰게 된다. 사실 제주 시내로 가까이 오게 되면 올레길의 한적한 맛은 좀 줄어들고 사람살이의 번잡함이 길에 스며들기는 하지만 이 또한 필요한 일이고 맛보아야 할 과정일 터이다. 다만 오늘은 역방향으로 진행하기로 한다. 이유는 광령1리 사무소는 작년에도 보았듯이 주차를 하기에 적절한 환경이 아니다. 따라서 고내포구에 주차를 하고 종점인 광령1리 사무소로 넘어와서 역방향으로 짚어가면서 되돌아가기로 한 것이다. 고내리에서 얼추 시간이 맞을 것 같아 793-1번 버스를 타고 광령1리 사무소로 이동하는데 거의 마을버스 수준이라서 정신없이 이리저리 돌아다니다가 목적지에 닿는다.
청화마을을 지나고 이 구간의 볼거리에 해당하는 항파두리 항몽유적지로 향해 걷는다. 전에 수학여행 인솔을 오면 항몽유적지인 이곳에 들르기도 했는데 최근에는 거의 들르지 않는 추세가 아닌가 한다. 체험학습의 내용이 많이 달라져서 그런 걸까. 제주의 수난은 고려시대 원나라의 영향과도 연관되어 있다. 세상에 고립된 지역은 없다. 세계사적 흐름으로부터 고립된 지역이 존재할 수 없는 이치와도 같다. 지금 트럼프의 재집권 이후 요동치고 있는 세상의 변화는 우리 평범한 민초들의 삶에도 막대한 영향을 미칠 것 같다. 그래서 영화 ‘퍼펙트 데이즈’를 보면서 전에 적었던 내용을 수정해야 할 필요가 생긴다. 트럼프의 집권은 나의 삶에도 영향을 주고 있기 때문이다. 은퇴한 나의 삶은 그래서 조금은 고단해질 것 같다.
항파두리 중간 스탬프 지점을 지나 장수물을 잠깐 확인하고 6차선 대로를 가로질러 바닷가를 향해 내려간다. 구엄리 가기 전에 공사로 인해 올레길이 살짝 변경된 지점이 있다. 걷기 편안한 구간은 아니다. 구엄리 돌염전을 지나면서 확연히 지친 발걸음으로 인해 편의점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한잔 사서 같이 먹는다. 집사람도 나도 발이 화끈한 것이 계속되는 강행군에 몸 상태가 좋지만은 않다. 그래도 가야 할 길이 있고 도전해야 할 과제가 있다는 것이 마음을 다잡게 한다. 그래 계속 가 보자.
수산리를 지나면서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곰솔 아래에서 점심을 먹었다. 소나무가 아주 아름답다. 오래 이 지상에 머문 것들에 대해서 경외 어린 마음을 품고 고개를 숙인다. 우리는 아침에 피었다가 저녁이면 시드는 지나가는 존재이기에. 바닷가로 내려가면 구엄리 돌염전이라고 된 곳을 바닷가에서 확인할 수 있다. 제주 남녘을 향해 내려가는 길이 꽤나 팍팍하게 느껴진다.
중간에 남방돌고래 출몰지라고 하는 안내 간판이 있어 혹여나 하고 바다 쪽을 유심히 보다가 파도 끝자락에서 부서지는 물결 포말을 두고 저것이 바로 돌고래가 내뿜는 숨이 아닐까 했지만 아닌 것 같다. 남두연대를 지나 고내포구까지 가는 길이 조금 힘들었다. 역시 고내포구의 화장실은 좀 아쉽다. 주변 상가를 이용하게 하려는 것이라면 조금 달리 생각하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