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왕과 사는 남자'를 보고

- 영월 장릉과 청령포 그리고 태백의 기억

by 차거운

유발 하라리의 언급을 떠올리지 않더라도 이야기의 힘은 대단한 것이다. 인류 문명의 역사적인 발전에 있어서 언어와 사고 능력의 발전은 동전의 양면과 같은 것이겠고 도구와 불의 발견과 이용도 그 과정에서 따라오는 것이겠다. 그리고 씨족과 부족 단위의 인간 집단이 지역과 국가 단위의 규모로 뭉쳐서 유기적인 사회 조직을 형성하고 역사를 발전시키는 과정에는 이야기(서사)가 그 중심에 있다고 하라리를 비롯한 많은 논자들이 지적하고 있다. 왜 안 그렇겠는가. 이야기는 너무 작거나 광대해서 인간의 감각적인 영역을 초월하는 세상의 통합성에 대한 인식을 단편적이든 종합적이든 제공해 준다. 국가의 기원과 가족의 기원 등에 대한 이야기들이 이어지고 인류와 모든 생명의 연결고리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지배질서와 갈등의 원인과 인간의 심리적 구조는 물론이고 자연 현상에 대한 나름대로의 설명도 제시한다. 인간의 지식이 발전하고 축적됨에 따라 그 모든 이야기와 설명들은 과학적이고 사실적인 차원에서의 오류로 판명되어 버려지거나 역사적이고 문학적 담론을 위한 서사의 영역으로 이전되거나 폐기된다. 인류의 모든 문명적 무의식 속에는 여전히 이렇게 침전된 과거의 이야기들도 개체 발생의 과정에서 잠시 나타났다가 사라지는 퇴화된 꼬리뼈처럼 아련하게 보전되고 있다.

콩트는 인류의 정신적 발전의 과정을 종교의 시대에서 철학의 시대를 거쳐 과학의 시대로 전개된다고 한 바가 있다. 그런데 실제로는 프로이트의 무의식에 대한 인식에서 보듯 직선적으로 전개되는 것이 아니라 병렬적으로 공존하고 있는 것으로 보는 것이 옳을 것이다. 여전히 샤머니즘적 사고에 휘둘리며 살아가는 사람들이 존재하고 제주의 신구간과 같이 현실을 규정하기도 한다. 어떤 이야기들은 종교적인 신조로서의 지위를 상실하고 전설 혹은 문화적 서사로서의 차원으로 전환되기도 했다. 그리스-로마의 신화들을 진지하게 종교적인 차원에서 수용하는 사람들을 만날 것으로 기대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북유럽의 켈트 신화나 중국의 창조설화, 단군신화, 제주의 무가 등도 그렇다고 하겠다. 물론 여전히 용왕님의 신력에 바다 농사가 좌우된다고 믿는 사람도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이젠 무속도 하나의 인류학적 관점에서 접근하는 입장이 더 많다고 본다.

한편으로 여전히 인간의 근본적인 한계상황들에 대한 전방위적 답변으로서의 이야기들이 존재하고 있다. 유발 하라리나 리처드 도킨스와 같은 사람들은 종교적 담론과 체계 모두를 포이어바흐가 이야기한 것과 같은 인간의 의도적 창작이거나 적어도 심리적 무의식의 외적 투사의 결과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아브라함 종교라고 일컬어지는 유대교와 그리스도교(로마 가톨릭, 동방 정교 가톨릭, 프로테스탄트), 이슬람교의 신자가 80억 지구상의 인류 중에 차지하는 몫이라든가 그들의 믿음이라는 측면에서 보이는 성실함과 진실성의 측면들을 동일한 잣대로 재단하고 넘길 수만은 없을 것으로 본다. 따라서 어떤 이야기들은 아직도 인류의 희망과 관련하여 그 유효성을 잃지 않고 있다고 할 것이다. 유발 하라리의 기준대로 수백만 명의 사람들은 수백 년 동안 성실하게 움직일 수 있는 것이 종교라면 앞으로 더 두고 보아야 할 것이다. 누군가의 말처럼 그 이야기가 사람의 머리에서 나온 것이라면 하라리의 말대로 될 것이고 사람이 아닌 신에게서 비롯된 것이라면 우리는 언젠가 그 이야기가 어떻게 인간을 구원할지 보게 될 것이다. 살아서든 죽어서든 언젠가는 말이다.

영화 '왕과 사는 남자'를 집사람과 같이 영화관에 가서 보았다. 천만이 넘는 사람이 본 영화다. 논리의 차원에서 이야기할 때 다수에 해당하는 숫자를 들어 그 대상에 대한 평가의 근거로 삼는 것은 '다수에 호소하는 오류'라고 한다. 논리적으로는 그렇지만 우리가 살아가는 이 대중문화의 시대는 숫자가 곧 권력이고 강력한 논거가 되고 담론을 장악한다. 인플루언서의 존재나 다양한 매체에서 백만, 천만, 몇 억 뷰는 곧 권력이고 돈이고 상징적 자본이 된다. 영화나 도서에 대한 평가도 그렇다. 어떤 사람에 대한 평가도 그렇지 않은가 싶다. 이는 마치 로마 콜로세오에서 로마 시민들이 엄지를 올리고 내리는 집단적 움직임이 검투사의 목숨을 좌우하는 상황과도 비슷하다. 아래 사진은 작년에 서울 시내 고궁과 능원 등을 마음먹고 방문해서 돌아보던 과정에서 찍은 사진이다. 아마 창경궁의 정전일 것이다. 조선왕조에 대한 이야기는 참으로 사골 곰탕 우려내는 것처럼 끊임없이 반복적으로 이야기로 드라마로 영화로 뮤지컬로 되풀이되고 있다. 우리의 역사이고 우리의 문화적 무의식을 형성하고 있는 이야기이기 때문일 것이다.

작년에 생전 처음으로 유럽여행을 가서 피렌체의 우피치 미술관과 로마의 도리아 팜필리아 미술관, 마드리드의 프라도 미술관에 갔을 때 거기 소장된 그림들을 번갯불에 콩 볶듯 지나치면서 언뜻 든 생각도 앞에서 이야기한 것과 비슷하다. 여러 성당의 종교화는 물론이고 미술관의 그림들의 모티프가 성서의 한 대목이 아니면 그리스 로마 신화의 그것을 끊임없이 변주하고 반복하는 것들이 참 많았다. '홀로페르네스와 유딧', '로물루스 레물루스', '다윗과 골리앗' 등등. 이 모든 범주를 구성하는 요소들은 신과 인간, 인간과 인간, 자연과 인간의 어느 하나에 속할 것이다. 역사의 오랜 진행 과정을 통해 인간의 삶에는 권력에 대한 집요한 욕망이 자리하고 있다. 이는 과거에도 그랬고 지금도 그렇다. 그 권력을 추구하는 방식이나 성격은 조금씩 달라져 왔지만 마키아벨리적 관점에서 권력에는 늘 윤리적인 차원과의 어긋남이 자리하고 있다.

조선왕조에서 벌어진 비극적인 사건들 중에서 인간의 본질적인 상황에 대한 성찰적 자료로 삼을 만한 것이 많이 있을 것이다. 그중에 하나가 바로 세조의 왕위 찬탈과 단종의 죽음 문제다. 역사는 사실과 다소 상상적인 윤색이 가미된 기억이 결합된 것이다. 온전하게 객관적인 기억과 역사적 평가는 존재하기 어렵다. 어느 정도의 윤곽과 합의된 다수의 기억이 있을 뿐이다. 문학적인 영역에서 김동인은 수양대군의 행위를 영웅적인 서사화를 통해서 '대수양'이라는 작품으로 제시했고 이광수는 '단종애사'라는 작품을 통해 이와는 대척적인 관점으로 형상화 작업을 했다. 조선의 성리학적 사고와 윤리에서는 사육신과 생육신 등에 대한 단죄와 복권의 과정을 떠올려 보아도 좋을 것이다. 단종의 시신을 묻어준 '엄홍도'의 존재와 그의 행위에 대한 평가도 그렇다.

영월의 장릉은 단종의 능이고 김포의 장릉은 인조의 생부인 추존 원종의 능이다. 태백의 초등학교에 다니던 시절 수학여행을 영월의 장릉으로 간 적이 있다. 철암역에서 출발하는 태백선을 타고 말이다. 어머니가 김밥 마는 발을 쓰지 않고 손으로 대강 만 김밥 두 줄을 통으로 비닐에 담고 사이다 한 병을 갖고 떠난 여행이었다. 장릉의 입구와 소나무 우거진 아래쪽을 지나 언덕 위에 자리한 능에 올라가서 보았던 그 비운의 어린 왕의 무덤이 떠오른다. 당시에는 역사적 사실에 대한 이해가 깊지 않아서 왕릉으로서의 그 역사적 내막에 대해서 잘 몰랐을 것이다. 그리고 여기저기 앉아서 어머니께서 싸 주신 배흘림 기둥을 닮은 긴 통김밥을 두 손으로 양 끝을 잡고 볼이 터지게 먹고 돌아온 기억이 생생하다. 그 뒤 태백을 떠나 제천을 징검다리 삼아 서울로 스며들어 지금까지 몸을 붙이고 살아왔다. 그 후 여러 번 장릉과 그 앞의 '장릉 보리밥집'을 찾아갔었다. 영월은 내게 그런 곳이다. 청령포도 그렇고. 그곳에서 멀지 않은 곳에 김삿갓면이 있고 김삿갓의 묘가 있고 고씨동굴, 어라연 계곡 등이 있다. 영월은 단종에게 유배지였지만 내게는 아름다운 풍광이 기억으로 남아 있는 고장이다. 아, 그리고 영화 '라디오 스타'가 영월을 무대로 하고 있다. 얼마 전에 세상을 떠난 안성기 씨의 풍부한 표정이 하나의 풍경이 되는 그런 영화 말이다.

권력이란 양날의 칼과도 같은 것이다. 타인을 베거나 자신을 베거나 둘 다 베거나 그렇다. 단종은 문종의 아들이고 문종은 수양의 형이니 숙질간이다. 금성대군은 수양의 동생이니 세조는 카인의 계보를 따른 행위를 한 골육상쟁의 주인공이기도 하다. 일찍이 그의 할아버지 태종은 두 차례 왕자의 난을 거쳐 정도전과 같은 신권주의자와 이복형제들을 제거하고 권력에 올랐으니 그가 처음은 아닌 것이다. 유교적인 관점에서 보면 주공과 같은 역할을 할 수도 있었겠으나 그는 스스로 김종서와 같은 인물을 죽이고 왕권을 차지하였다. 단종은 상왕에서 노산군으로 강봉 되고 영월에서 죽음을 맞이한다. 영화 속의 금성대군도 형에게 죽음을 당한다. 세조 이후의 왕들은 이러한 세조의 후예들인 셈이다. 중종반정과 인조반정은 성공한 쿠데타(?)로 조선왕조의 역사에 남아 있다. 영조가 자신의 아들 사도를 뒤주에 가둬 굶어 죽인 사태 역시 조선왕조의 비극 중의 하나다. 혜경궁 홍씨의 '한중록'과 영화 '사도' 등이 그런 역사와 관련되어 있다.

조선왕조실록은 공식적인 역사다. 그렇지만 그렇기에 승리한 자의 역사이기도 하다. 세조의 행위는 현실적 힘이지만 단종은 복위되고 종묘에 배향되어 그 정통성을 인정받게 된다. 사육신도 역적에서 충신으로 재평가되게 된다. 엄흥도의 행위도 역시 그렇게 상찬 되게 된다. 여기서 우리는 산다는 일의 역설을 생각하게 된다. 어떤 길을 선택한다는 것은 다층적인 의미를 갖는다. 1784년 천진암을 중심으로 서학이 하나의 종교적 실천으로 도약하는 그 과정을 생각해 본다. 상제라는 개념이 동양에서 늘 존재했지만 안회의 죽음을 알고 '하늘이 나를 버리는구나'라는 공자의 탄식이나 오자서나 사육신의 죽음에서 보듯 폭압적인 권력에 맞서 자신의 신념을 의리를 지킨다는 것에는 늘 이런 역설적 차원과 함께 더 상위의 관점이 필요하게 된다. 안티오쿠스 왕의 종교적 훼절 요구를 거부하고 죽는 유대 형제들의 저항도 그런 차원에서 이해할 수 있다. 임금보다 더 큰 하늘의 임금이 있어 그에게 우선적으로 복종함이 옳다고 자신의 선택을 설명하던 그 단순한 논리에는 바로 이런 차원이 개재되어 있는 것이다.

세상의 많은 이야기에는 이런 역설이 존재한다. 현실적 권력에 패배한 것처럼 보이는 자들이 이야기를 통해서 살아나고 부활한다. 생물학적 죽음 너머에 또 다른 차원의 삶이 존재할 수 있음을 믿는 사람들이 세상에는 많다. 우리가 보는 이 세상의 전쟁에서도 패배시키기 어려운 적은 바로 이런 신념을 가진 사람들일 가능성이 크다. 물리적인 폭탄이나 무력으로 이들을 모두 지워버릴 수는 없다. 남을 전면적으로 지우려고 하면 자신 역시 부서지고 파괴될 위험이 있는 것이다. 물리적으로가 아니라면 적어도 도덕적이고 윤리적인 차원에서 말이다. 그런 지점이 바로 초등학교 학생들이 무더기로 폭사한 자리가 아닐까 한다. 서로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는 곳에서 진정한 평화는 없다. 단종의 슬픈 이야기에 사람들이 발길을 옮기는 것은 바로 이런 지점과 무관하지 않다고 본다. 인간에게는 인간으로서 꿈꿔야 할 인간다움이 있는 법이다. 우리가 그것을 잃지 않기를 기원한다. 우리가 죽음을 마주할 때 우리를 끝까지 동행할 것이 무엇인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권력일까 아니면 돈일까 아니면 명예나 지위일까. 아마도 아닐 것이다. 우리가 어떤 사람이었는지 신은 속속들이 알고 계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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