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6년 3월 16일 월요일
오늘은 소위 업계 전문용어(?)로 예스진지 즉, ‘예류지질공원-스펀폭포-진과스-지우펀’을 당일로 돌아보고 복귀하는 버스 투어가 예정되어 있는 날이다. 아침에 일어나서 아침을 간단하게 먹고 충효부흥역에서 타이베이 역을 한 정거장 지나 서문역 5번 출구에서 출발하는 버스를 타러 갔다. 하늘은 참 맑고 기온은 서울에 비해 훨씬 높아서 23도를 넘는다. 한낮에는 거의 6월 말 초여름 날씨로 느껴질 정도다. 한국인 가이드가 배정되어 있고 버스 한 대를 가득 태워서 9시를 넘겨 출발했다. 타이베이 시내를 벗어나기 전에 타이베이 철도역에서 사람을 셋 정도 더 태워 만차로 이동하는데 서울에서 양평 정도를 가는 거리가 아닐까 싶다. 이런 규모의 버스로 오늘만 스무 대가 넘는 버스가 동일한 일정으로 운행한다고 한다. 정말 대단한 일이다. 일상에서 벗어나 여행을 떠나는 사람의 규모가 가히 상상을 불허할 지경이다.
우리 가족은 오늘 이 일정을 마치면 내일 다시 인천공항을 거쳐 자신의 자리로 돌아가야 한다. 오는 날은 어둠 속에 잠긴 고궁박물원을 보고 어제는 고궁박물원, 마오콩 곤돌라, 101 타워 이렇게 세 곳 정도를 대중교통으로 돌아보니 하루가 저물어버렸다. 만일 차로 이동했다면 훨씬 효율적으로 다닐 수 있었겠으나 그렇게 대중교통을 이용한 덕분에 타이베이의 지하철과 버스 체계에 대해서 어느 정도 감을 잡을 수가 있게 된 것 같다. 사람은 적응이 참 빠른 존재다. 다음에 다시 오게 된다면 이번 일정에서의 경험이 큰 도움이 되지 않을까 한다. 지난 세월 동안 좀 더 많이 이런 경험을 했더라면 좋았겠다는 아쉬움이 들기도 한다. 선배 영어 교사 한 분이 그토록 방학 때마다 혼자 여행을 다니더니 이제는 시골에 내려가서 이장을 하면서 농사를 짓고 있다고 한다. 이런 경험은 젊은 시절이 많이 하는 것이 여러모로 좋을 것이다. 소위 그 말하는 바처럼 ‘다리가 떨릴 때 말고 가슴이 떨릴 때 길을 떠나’라는 말이다.
처음 들린 곳은 예류 지질공원인데 ‘여왕머리’의 사진으로 너무나 잘 알려진 곳이다. 바다 쪽으로 돌출한 지형인데 파도에 바위가 깎여 기묘한 형상으로 남아 있다. 우리나라 제주의 주상절리와는 또 다른 분위기다. 사람들이 가득한데 하늘이 너무나 파랗게 빛나고 바닷물의 빛깔 역시 투명하고 초록빛으로 물들어 있다. 햇살은 더위를 느낄 만큼 따갑게 느껴져 이른 여름의 분위기를 풍긴다. 위도 차이가 상당히 나는 것을 실감할 수가 있었다. 여기도 날씨가 궂을 때가 많다는데 우리가 떠날 때까지는 맑음으로 예보되어 있어 감사할 따름이다. 가족 모두가 이 장소에 대해 만족스러운 빛이 가득해서 내 마음이 편안해졌다. 오늘 하루의 일정 모두가 전반적으로 그렇다. 그렇다면 우리는 패키지여행으로 왔어야 하지 않았을까 싶다. 오징어 다리 눌린 것이랑 주전부리를 사서 먹으면서 예류 지질공원을 뒤로하고 버스로 이동했다.
그리 오래 이동하지 않아서 스펀에 도착해서 천등을 날리고 철길을 걸으면서 음료수랑 간식을 먹으면서 잠시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이렇게 사람이 사는 집들 사이로 철길이 가로질러 가는 곳들이 의외로 많이 있다. 군산의 옛 거리가 그러하고 동남아의 몇 곳도 그렇다. 사람의 이동은 상권의 형성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으니 그건 자연스러운 일이겠다. 사람이 일상적으로 살아가는 풍경이 누군가에게는 여행의 내용을 채우는 요소가 된다. 나는 너에게 풍경이 되고 너도 나에게 하나의 풍경이 되는 셈이다. 천등을 신청하지 않아 다른 사람들이 소원을 가득 적어 하늘로 날리는 모습을 보다가 하늘로 올라가는 천등의 불타는 심장을 사진으로 찍기도 했다. 절에 가면 기왓장에 여러 가지 소망을 적어서 시주를 하거나 연인들이 자물쇠를 다리 난간에 걸어둔다든가 하는 행위들의 밑바탕에는 동일한 원리가 작용하고 있다. 그 마음이 절실하든 그렇지 않든 간에 사람에게는 늘 어떤 결핍과 욕구가 채워지지 않고 있는 셈이어서 무의식적으로 그것을 충족하고자 하는 바람을 갖고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이해할 수 있다. 이는 동서양의 문화적 차이에도 불구하고 근본적으로 다름이 없다.
잠시 차를 타고 스펀 폭포에 가서 시원한 물줄기를 보고 대만 과일 석가를 사서 먹었는데 이건 정말 꿀처럼 단맛이 가득하다. 당뇨니 뭐니 해서 단것에 질색하는 요즘 분위기에 이렇게 달다는 것이 오히려 단점이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한다. 소시지 구운 것이 의외로 내게는 입맛에 맞다. 아이 입맛이니까.
다음으로 간 곳이 진과스인데 지우펀 조금 위쪽에 있는 금광 유적이랑 박물관 등이 있는 곳이다. 여기가 유명한 것은 박물관 안에 있는 거대한 금괴 한 덩어리 때문인데 무게가 무려 220kg이라고 하니 요즘처럼 금값이 금값이 된 시기에 그 가격을 상상해 보면 내 것이 아니라 할지라도 배가 부르지 않은가 말이다. 그냥 들고 가라고 줘도 갖고 갈 수도 없으니 손으로 한 번 쓰다듬으면서 어쩌다 손톱 밑에 긁혀서 묻어 나오는 금가루나 갖고 가는 것으로 만족해야 한다. 우리나라 함평의 황금박쥐는 그래도 어떤 조형적인 아름다움이랑 연결되어 있지만 이 금괴는 말 그대로 금덩어리 그 자체의 본질에 충실하게 그 자리를 지키고 있다. 그렇지만 부유함이란 것이 과연 내가 원한다고 나를 찾아오겠는가. 내가 찾아 나선다고 얻을 수 있겠는가. 그러니 인간의 수요장단처럼 부귀빈천 역시 하늘의 뜻에 일임하며 살아가야 하리라.
지우펀 골목길까지 함께 내려와서 그 비좁은 골목을 헤치고 전망대가 있는 곳까지 오고 가는 과정이 음식 냄새와 상품들과 사람들의 발길이 뒤섞여 혼잡하기 이루 말할 수가 없었다. 형님은 가게에서 풍겨나오는 향신료 냄새에 아주 진저리를 내는 것 같았고 사람들의 밀집도는 앞에서 얘기한 것처럼 세계 어떤 관광지의 그것에도 손색이 없을 정도로 높은 것 같다. 날이 아직 어두워지지 않은 터라 홍등이 내걸린 사진과 같은 풍경은 볼 수가 없었지만 대략 어떤 구도와 분위기인지 미루어 짐작할 수 있을 듯하다. 다시 밖으로 나와 2층 전망대에서 바람이 점점 세게 부는 것과 일교차가 커서 선선해지는 변화를 온몸으로 느꼈다. 가이드가 안내한 찻집에 가서 시음을 하고 차를 구입한 후에 잠시 혼란을 일으켜 진과스 입구 가까이 주차장에 가야 하는 것을 착각하고 있다가 부랴부랴 올라갔더니 몇 분 정도 늦어버렸다. 미안한 마음이 들었고 한편으로 명민하지 못한 나의 모습을 반성하게 된다. 그러니 더 늦기 전에 부지런히 할 일을 하고 하고 싶은 일을 하도록 해야겠다.
지우펀 상가 골목 앞 도로에서 혼잡한 인파로 인해 교통사고가 나서 도로가 막혀 한참 기다리다가 타이베이 시내로 이동했다. 몇 군데에서 하차할 수 있는 선택지가 있는데 우리는 야시장을 경험하기 위해 랴오허지에 야시장 입구에서 내렸다. 야시장을 한 바퀴 둘러보는데 역시 사람이 바글바글 모여 있어 발 디딜 틈이 없을 지경이다. 땅콩 덩어리를 대패로 긁어낸 것과 아이스크림을 밀가루 전병 같은 피에 싸서 먹는 것을 하나씩 사서 경험 삼아 손에 잡고 먹었는데 눈이 동그래질 만큼 새로운 맛이 있다. 서둘러 숙소로 귀환하기 위해 근처의 송산역에서 지하철을 타고서 남경부흥역에서 다시 갈아타고 충효부흥역에 도착해서 숙소로 귀환했다. 다들 오늘 하루 일정에 대해서 만족하는 듯하여 마음이 놓였다. 이 상품은 1인당 2만 원이 조금 넘는 상품인데 50% 할인해서 아주 저렴하게 잘 다녀왔다. 이렇게 교통편이 있다면 짧은 시간에 효율적으로 여러 군데를 돌아볼 수도 있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있다. 첫술에 배부를 수는 없는 일이니 이 정도로 만족하기로 하자. 아쉬움이 있어야 다음에 다시 올 생각도 들지 않겠는가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