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는 마음의 양식, 음악은 영혼의 양식
올해 두 번째 경주 출장이었다.
현장관리자들과 석식 후, 헤어짐이 아쉬운 일행들이
간단히 맥주 한잔을 더하자며 나를 앞장 세워 '핑크마티니'라는 생긴 지 얼마 되지 않은 BAR를
찾아갔다.
분위기도 너무 좋고, 가게 사장님과도 친해졌다며
영남지역을 담당하는 매니저가 침을 튀겨가며 칭찬을 한다.
가게를 들어서자마자 시선이 한 곳으로 쏠렸다.
중앙에 진열된 엄청난 양의 LP판이 벽면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매니저 소개로 인상 좋으신 사장님과 인사를 나누었다.
부부가 함께 가게를 운영하신단다.
나 : "사장님, LP판이 어마어마한데요?
사장 : "35년간 모은 거예요"
나 : "영혼의 양식을 많이 쌓으셨네요."
사장 : "네?..."
나 : "아.. 예전에 제 아버지가 해주셨던 이야기가 생각이 나서요.."
'영혼의 양식'
학창 시절 음악 듣는 것을 참 좋아했었다.
주머니 속에 용돈이라도 생기면 버스를 타고 종로 상가의 중고카세트와 LP를 팔던 가게를 돌아다니며
유명한 뮤지션들의 음악들을 모았었다.
학생이라는 놈이 공부는 안 하고 음악만 듣는다며
아버지께 참 많이도 혼이 났었다. 술에 취해 들어오신
어떤 날에는 아버지는 어렵게 모은 카세트 테이프들을
집어던져 부시기도 했었고, 쓰레기통에 버려져 나도 모르는 사이 사라지기도 했다.
그런 아버지와 친해질 수 없었고 항상 난 아버지와는 가깝게 지낼 수 없는 그저 애증의 존재로 살아야 했다.
그런 아버지에게 군입대 후,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손글씨로
정성스럽게 쓴 편지를 받아본 적이 있었다.
'독서는 마음의 양식이고, 음악은 영혼의 양식이라는데
비어있는 너의 방 책상서재와 서랍 속에 무수히 쌓여있는
카세트며 LP판을 보다 보니 그동안 너는 누구보다 깊게
영혼의 양식을 쌓았었구나.'
사람의 기억은 시간이 지나면 형편없이 왜곡되고 잊힌다지만 진심을 담은 말과 행동은
어떤 형태로든 머릿속에 각인이 되었다.
그리고, 아버지로부터 전해 들었던 나를 '인정' 해주신
그 글귀 하나가 몇 안 되는 아버지에 대한 좋은 기억으로
오랫동안 남아있다.
한쪽 벽면을 가득 채워진 LP판들을
바라보고 있으니 그 예전 학창 시절의 내가 생각이 났다.
그땐 그랬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