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와 모기와 사슴과 캠핑

자스퍼 국립공원 - 위슬러 캠핑장 (2011년 6월 27일)

by 그래도 캠핑

이튿날 아침에 일어나니 베란다에 주변 땅다람쥐 (Ground Squirrel)들이 마중을 나와 있었다. 밴프에서도 느꼈던 건데 이 동네 다람쥐들은 그동안 사람 손을 너무 많이 탔는지, 사람이 오면 으레 자기들에게 먹을 걸 줄지 아는 것 같다. 야생 동물에게 먹이를 주는 게 법으로 금지되어 있지만, 막상 저렇게 가지런히 손을 모으고 기다리고 있는 걸 보면 마음이 흔들리는 것도 사실이었다. “그럼 주는 척만 하고 실제로는 안 주면 되는 거 아닌가?” 했다가 아내에게 구박을 듣고 길을 나섰다.



먹을 걸 기다리는 땅다람쥐



캔모어에서 자스퍼로 가기 위해선 93번 고속도로를 타고 3시간이 넘게 계속 올라가야 했는데, 이번 여행 자체가 여행사 일정을 보고 그대로 따라 만든 거라, 자스퍼로 가는 길에 유명 관광지 몇 군데를 똑같이 들러 보았다. 공룡 발바닥 모양에 파스텔톤 녹색 물이 가득 차 있는 '페이토 호수 (Peyto lake)'는 주차장에서 호수 전망대를 거친 후 숲을 따라 크게 돌아오는 트레일이 있었는데, 트레일 군데군데 눈이 아직 녹지 않은 채 쌓여 있음에도 불구하고 모기들이 극성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그 외에 '아사바사카 폭포 (Athabasca fall)'나, 지구온난화로 발가락 한쪽이 사라지고 있는 '까마귀 발 빙하 (Crowfoot Glacier)', 몇천 년 된 빙하 물을 마실 수 있다는 '컬럼비아 대빙원 (Columbia Icefield)' 등을, 정말이지 투어버스를 탄 것마냥 순식간에 점을 찍고 난 다음에야, 자스퍼 국립공원의 위슬러 캠핑장 (Whistler Campground)에 느지막이 도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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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이토 호수 (좌, Peyto Lake), 까마귀 발 빙하 (우, Crowfoot Glaci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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_DSC7324.JPG 컬럼비아 대빙원과 그곳까지 관광객을 나르는 설산차


이때가 오후 7시 정도. 텐트를 치려고 했는데 비는 안 왔지만, 모기가 많아서 견딜 수가 없었다. 또 이때까지만 해도 아내는 천연성분을 선호했던 터라, 바르는 모기약도 화학제품이 아닌 무슨 허브 오일 같은 걸 썼었는데, 자스퍼 모기들은 자연 허브 따위는 아랑곳없이 내가 텐트를 치는 동안 계속해서 덤벼들었다.


자스퍼의 위슬러 캠핑장은 밴프의 터널 마운틴 캠핑장과는 달리 널 푸른 숲 속에 만들어진 캠핑장이었다. 마치 광역 밴쿠버에 있는 BC 주립공원처럼, 빽빽하게 늘어선 나무들 사이로 군데군데 캠프 사이트가 자리 잡고 있었다. 게다가 (캠핑장 관리자 말로는 자기네들이 꾸준하게 내쫓고는 있다고 하는데 아무래도 중과부적인지) 큰 사슴 (Elk) 무리들이 여기저기 사이트들을 어슬렁거리면서 다니고 있었다. 건너편 옆 캠프 사이트에 있는 RV에 다가가 냄새를 맡고 있던 큰 사슴 무리를 보면서 우리 집 강아지가 계속 캬르르릉 컁컁거리는 걸 보고 있자니, 갑자기 모든 현실 감각이 사라지면서 무슨 TV 교양 프로그램 한가운데에 앉아 있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하지만 그런 감동도 잠시뿐, 저렇게 큰 사슴 무리가 돌아다닌다면… 곰은 과연 없을까??? 우린 위슬러 캠핑장에서도 전기장판을 쓰기 위해 전기가 들어오는 곳으로 예약을 했는데, 그 캠핑장 역시 우리 텐트 말고는 죄다 RV였기 때문에, 만일 곰이 먹이를 찾으러 다닌다면 우리가 가장 쉬운 먹잇감이 되지 않을까??? 아니 사람을 무서워하는 곰이라도, 작은 강아지를 먹으러 올 수는 있는 거잖아… 등등 걱정에 사로잡히기 시작했다. 결국 아내와 나는 귀를 쫑긋 세우느라고 잠을 자는 둥 마는 둥 설치고, 정작 우리 강아진 갸르릉 갸르릉 코를 골면서 꿀잠에 빠지게 되었다.


옆집 RV에 관심 있어 보이는 큰 사슴









밤새 잠을 설치며 불침번을 섰지만 곰의 습격은 없었다. 깊게 우려하던 일이 사실 기우에 불과한 것이라는 게 드러날 때 사람들이 순식간에 대범해지는 것처럼, 아내와 나는 누가 먼저라고 할 것도 없이 “에이. 당연히 그렇지. 이렇게 인간들이 우글거리는데 곰이 오겠어..?”를 시전했다 (자매품으로, 생각도 못한 위기에 봉착했을 때 쓰는 “에이 씨.. 거봐. 내가 뭐랬어?”가 있겠다). 나중에 알게 된 일이지만, 밴프에 있는 루이스 호수 캠핑장 (Lake Louis Campground)의 경우, 텐트와 소프트탑 RV가 사용할 수 있는 캠프 사이트에도 전기가 들어오는데, 거기엔 야생동물이 아예 못 들어오도록 전기 철조망으로 둘러싸여 있었다. 하지만, 곰은 곰이라 할지라도 큰 사슴들이 바로 옆으로 어슬렁어슬렁 돌아다니는 걸 보고 있자니, 어디서 또 이렇게 호사스러운 야생 사파리 캠핑을 할 기회가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밤에 잠을 설쳐서 그랬는지, 아니면 텐트를 치면서 모기에 너무 물려서 그랬는지, 아침에 일어나니 머리가 너무 무겁고 으슬으슬 떨렸다. 뜨끈한 국물이라도 마셔야겠다고 서둘러 라면을 끓였지만.. 이게 그만 속에서 꽉 뭉쳐 버렸다. 그래도 여기까지 왔는데 몸져누울 수는 없는 노릇이고 해서 차를 몰고 주변 관광지를 둘러보려 나섰는데… 하하하 여긴 정말 야생이로구나. 길가에 순록 (Caribou), 산양 (Rocky Mountain Goat), 그리고 검은 곰 가족들이 산책을 하고 있어서 번번이 갓길에 차를 대고 사파리를 즐기는 시간을 보내야 했다.


길가에서 놀고 있던 순록 (Caribou)



자스퍼를 상징하는 말린 호수 (Maligne Lake)에 도착했을 때에도 날씨는 여전히 잔뜩 찌푸려 있었다. 거무튀튀한 하늘을 반사하는 호수 물빛을 보고 있자니, 그리고 아직 시즌 준비 중이라 썰렁한 비즈니스들을 보고 있자니 몸이 더 으슬으슬 춥고 그랬지만, 그래도 강아지의 안정적인 배변 활동을 위해서 호수 주변을 천천히 걸어 보았다. 하지만, 이후 메디신 호수 (Medicine Lake)에 가서는 더 증상이 심해져서 결국 하루를 마감하고 캠핑장으로 다시 돌아와야 했다. 오는 길에 자스퍼 다운타운에 들러 황도 통조림을 사 오는 것도 잊지 않았고, 밤에 증상이 심해지자 아내가 강아지용으로 준비해 둔 동종약도 먹어봤지만, 결국 이 초기 감기+속병은 이후 캠룹스에서 중국식 탕수육을 먹고 나서야 비로소 낫게 되었다.


말린 호수 (Maligne Lake)


메디신 호수 (Medicine Lake)




컨디션은 영 아니었지만, 다시 불을 피우며 최대한 록키에서의 마지막 밤을 즐겼다. 아내는 그동안 별러왔던 '스모어 (S'more. 모닥불에 구운 매쉬맬로우에 초콜릿을 녹인 후, 비스킷 샌드위치로 만들어 먹는 북미 전통 캠핑 음식. 순식간에 혈당이 치솟을 수 있다)를 만들었지만, 당시 내 속사정으로는 한 조각도 먹을 수 없어서 그냥 복숭아 통조림으로만 당을 채웠다. 날이 어두워지자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했는데, 밤에는 어느새 폭우로 바뀌어 있었고, 다음 날 아침에 아예 푹 젖은 텐트를 걷어야 했다.


모닥불에 굽는 매쉬맬로우









날씨도 그렇고 몸 상태도 그렇게까지 완벽했던 여행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볼 수 있는 건 다 보았고 놀만큼 놀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뭐 사실.. 예상대로 호수와 산들은 어느 게 어떤 거였는지 기억은 안 나지만, 그래도 야생동물들의 재롱만큼은 실컷 즐겼었다. 이전에는 겪어보지 못했던 장기간 캠핑으로 매우 피곤한 상태였는데도 막상 축축한 짐들을 차에 구겨 넣으려고 보니, 아무래도 조만간 하루 날 잡아서 다시 캠핑장에 가서 이 모든 걸 쫙 펴놓고 말려야겠다는 생각만이 간절했다. 짐을 다 챙긴 후 다시 서쪽으로 향하다가 BC 주 경계에 들어서서 록키 여행의 마지막 관광지라고 할 수 있는 랍슨 산 주립공원 (Mount Robson Provincial Park)에 들러보았는데, 3대가 덕을 쌓아야 볼 수 있다는 랍슨 산 정상은 아니나 다를까 구름에 덮여 있었지만, 아침에 서둘러 만든 김치볶음밥 도시락을 구름에 잠긴 산을 보면서 먹는 건 각별한 맛이었다.

구름으로 덮여 있던 랍슨 산 (Mount Robson)


여행 마지막 날 숙박이 계획된 캠룹스 (Kamloops)는 캘로우나 (Kelowna)와 더불어 BC 주 내륙도시 중 가장 큰 도시로 (이때 갔을 때는 여전히 흐린 날씨였지만) 평상시 작열하는 태양과 불볕더위가 인상적인 곳인데, 5번 고속도로와 1번 고속도로와 모두 연결되는 교통의 요지여서 BC 주정부 기관이나 공기업들이 많이 자리 잡고 있다. 모텔에 체크인을 한 후, 시내 구경을 좀 하다가 어느 중국식당에 들어가 탕수육 한 점을 넣고 나니 속이 뻥 뚫리는 것 같았다. 평소에 밴쿠버 밖으로 나와 중국음식을 먹을 때마다 그렇게 투덜대던 게 다 미안해졌다. 밥에 약을 탔나? 어쩌면 아직 밝혀지지 않은 MSG의 효능 중에 소화작용이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대자연 속에서의 캠핑도 좋지만.. 이렇게 도시 생활도 좋구나…’ 하는 기분이 들었던 것 같다. 톰슨 강 (Thompson River)을 따라서 길게 늘어진 강변공원을 산책하면서.. 아내와 첫 록키 여행의 소회를 나누었던 기억이 난다


캠룹스 강변공원











자스퍼 국립공원 위슬러 캠핑장 (Jasper National Park - Whistler Campground https://www.pc.gc.ca/en/pn-np/ab/jasper/activ/passez-stay/camping/whistlers) : 자스퍼 국립공원을 대표하는 캠핑장으로 드넓은 숲 속에 사이트들을 배치해서 본격 야생 캠핑을 경험할 수 있다. 최근 2년간의 안식기와 리노베이션을 마치고 2021년에 재개장을 했다는데, 최신식의 화장실 및 샤워시설도 설치하고 캠프 사이트도 총 800 사이트로 증축했다고 한다. 과연 예전 그대로의 야생 사파리 느낌이 날까… 걱정이 되기도 하지만, 연초에 캠핑장 예약할 때마다 군사작전을 방불케 하는 긴장과 고생들을 생각하면 이런 증축을 적극 환영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다행히 재개장 후 리뷰나 사진들을 보더라도, 그 야생, 그 분위기는 여전해 보인다. 자스퍼에서 장기간 캠핑을 계획한다면 두말할 것도 없이 추천받는 캠핑장. 역시나 일반적인 국립공원 캠핑장처럼, 전기시설, 샤워실, 설거지 싱크대, (워크인 캠핑족들을 위한) 부엌 등을 제공하고, 장작은 판매하는 것이 아니라 무제한 제공되며, 대신 하룻밤 캠프 파이어를 할 수 있는 Fire Permit을 사야 한다. 하지만 국립공원 외부에서 나무를 반입하는 것은 전염병 방지를 위해 금지되어 있고, 공원 내에서 구할 수 있는 장작도 무지막지하게 큰 사이즈 이기 때문에, 커다란 도끼가 필요하다


가까운 시내 : 자스퍼

광역 밴쿠버로부터 접근성 : 0/5

이동통신 / 데이터 : 잘됨

프라이버시 : 4/5 (2019년 이전)

수세식 화장실 / 샤워실 : 있음

시설 관리 / 순찰 : 4/5

RV 정화조 : 있음

RV 급수 시설 : 있음, 좋은 수압

캠핑 사이트 크기 : 4/5 (2019년 이전)

나무 우거짐 : 3/5

호숫가 / 강변 / 해변 : 있음

햇볕 : 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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