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교통카드와 삿포로 시내 관광 (2025년 10월 3일)
아.. 간만에 잘 잤다.. 싶었는데 그래도 6시 전에 일어났다. 여행을 다니면서는 여전히 8시간 수면을 채우는 게 힘들다. 도파민 뿜뿜으로 기분이 업되어 있는 탓도 있겠지만, 잠으로 허비하는 시간이 왠지 아깝다는 생각도 들기 때문이겠지. 그래도 어제처럼 숙취 때문에 오후까지 비몽사몽이 될 것 같지는 않은 상태다. 식사 후 집에 와서 친구는 증류소에서 구매한 요이치 싱글몰트 (증류소 판매가격이 공항 면세점보다 쌌다고 한다)를 마셨지만 나는 저질체력 때문에 끝까지 맥주만을 고수한 덕분이다.
다시 잠에 들기에는 애매한 시간이라서 서둘러 커피를 내린 후 TV를 켰다. 이번에 일본에 있는 동안에는 흔히 '와이드쇼'라고 부르는 일본의 아침방송을 많이 보게 되었는데, 뉴스와 함께 건강정보나, 리포터들이 직접 취재해 온 생활정보, 그리고 식당이나 요리 정보도 물론 빠지지 않고 알려주는 종합 정보프로 같은 개념이다. 그런데... 일본어 능력 수준이 2세 미만인 내가 들어도, 유난히 '니혼'이라는 말과 '니혼진'이라는 말이 많이 들린다. 잘은 몰라도 음식이나 상품을 소개하면서 "일본인이라면 모를 수 없는...", "일본인에게 딱 맞는..." 뭐 이런 식의 말을 하려는 것 같았다.
한국 방송에서 이런 얘기를 자주한 적이 있는가 하는 의문을 품어본다. 물론 캐나다 방송에서는 이런 말을 찾을 수 없다. 미국의 TV프로그램 공급에 전적으로 의지하기 때문도 있겠지만, 기본적으로 민족이나 국가로 묶는 성향이 무척 적은 편이다. 당연하지. 미국이나 캐나다나, 기본적으로 이민자들이 만든 나라고, 외국인 노동자나 이민자들이 경제를 유지하는 나라이니까. 그렇다면 일본은? 일본 역시 외국인 노동자가 많이 있다. 특히 지방 소도시의 리조트나 숙박업체에서는 각국의 유학생들이 많이 와서 일을 하고 있는 게 유튜브나 다른 미디어를 통해 공개되어 있다. 물론 미국이나 캐나다처럼 그들의 노동력에 전적으로 의지하는 경제구조는 아니겠지만. 하지만 방송에서는 여전히 '일본'과 '일본인'을 강조한다. 그렇다고 TV에 외국인이 전혀 안 등장하는가 하면 그것도 아니다. 일문문화를 보고 감격하는 외국인들이 심심찮게 등장하는데, 우습게도 모두 백인이었다. 적어도 2주 조금 넘게 있는 동안 본 TV에서는. 현재 일본을 방문하는 관광객의 대부분이 중국과 한국에서 오고 외국인 노동자들은 주로 동남아시아 혹은 한국인임에도.
이런 굴절된 자기 인정욕구는 어디서 오는가? 보통, 선진국 진입을 앞두고 있는 개발도상국에서 이런 현상을 자주 발견한다. 정부나 미디어를 통해서 자국의 우수성을 끊임없이 강조하면서, 납세자들의 자발적 희생을 유도한다. 회사도 마찬가지. 8~90년대 한국의 대기업 (그 당시에는 지금의 대기업이라는 개념과 전혀 다른... 약간 더 큰 도토리 같은 개념이었다)에서는 신입사원을 채용한 후 기업정신을 무장시키는 행사를 종종 하곤 했다. 연수라는 명목으로 일종의 극기훈련 및 매스게임 같은 걸 진행하기도 했다. 최근에도 종종 유튜브에 올라오는 그 당시 행사 영상을 보면.. 아.. 삼성에 다니는 회사원과 광신도 집단이 얼마나 차이가 있으려나.. 하는 의문이 들기도 한다. 지난 몇 년간 중국 유학생들을 보더라도, 중국 제일주의에 심취된 사람들이 많았다. 일본이라는 나라 역시 한국 전쟁을 틈타 경제 복구가 되기 시작하면서 80년대까지, 끊임없이 자국민들의 성취욕을 자극시키는 방송을 했을 것이다. 그런데 아직도? 지금은 오히려 세계 최고 경제대국까지 되었다가 몰락하는 중인데. 아닌가? 몰락하는 중이라서 더 심하게 '일본', '일본인' 타령을 하는 건가? 1983년에 연재를 시작한 만화 <맛의 달인> 초반부를 보면 "일본인이라서 다행이야"라는 문장이 종종 발견되는데, 그걸 40년째 우려먹고 있다. 똑같이 동질성을 강조하는 문화를 가진 나라라고 할지라도, 오히려 한국은 이런 게 덜한 느낌이다. 한국 유튜브나 TV방송에서 '한국', '한국인'이라는 단어가 출몰하는 걸 본 기억이 거의 없다...라고 생각했다가,
아,
맞다. 대신 '우리'라는 표현을 쓰지.
'우리들', '우리나라', '우리 마누라'
'우리' 만큼 동질성을 강조하는 단어가 없네. 일본과 중국은 더 분발해야겠다.
오늘은 삿포로 시내 관광을 자유롭게 하기로 한 날. 사람들이 하나둘씩 일어나면서 근처 편의점에 나가 간단한 아침거리를 사 왔다. 그래봤자 컵라면과 삼각김밥, 샌드위치, 야채샐러드 정도겠지만. 예전에 일본에 왔을 때는 일본 컵라면들은 내용물은 참으로 충실하지만 양이 매우 적다는 느낌이었는데, 이제 이곳도 대용량 컵라면이 편의점 선반을 채우고 있었다. 일본까지 가서 컵라면이 웬 말이냐... 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먹어보고 싶었거든요. 여러 번. 그리고 어제 숙소로 돌아오는 길에 식당 근처 슈퍼에서 손짓발짓 설명을 해가며 획득한 숙취해소제도 있었는데, 아.. 일본에는 아직 여명 808처럼 확실한 놈이 없는 것 같았다 (물론 캐나다에도 없다). 슈퍼 주인한테 소개받은 야쿠르트 병 크기의 음료에는 '강황의 힘'이라고 크게 적혀있었지만, 맛은 글쎄요, 카레 맛은 전혀 나지 않던 걸요. 오히려 박카스와 같은 맛이 난다. 그래도 기왕 사 왔으니.
친구들은 좀 더 자기로 하고 우리 먼저 시내로 나가보려고 하는데, 위층에서 집주인 메구미 상이 내려온다. 아.. 연이은 술파티 때문에 잔소리 좀 들으려나... 했더니.. 되려 니혼슈를 한 병 선물로 준다. 친구 아들이 양조장을 하는데, 선물로 받은 거라나? 자기들은 원래 술을 안 먹으니까, 괜찮으면 마음껏 마시라고 선물로 준다. 아이고. 이건 뭔가요. 감격과 민망함이 뒤섞였다. 헛참. 하긴 재활용 상자에 매일매일 새로 쌓이는 맥주 캔들을 보고 얼마나 놀랐을까? 고마움에 친구가 우리 선물로 한국에서 가져온 한국 과자를 선물로 주기로 했는데 내가 전달자로 당첨이 되었다. 아이고 X 2. 이런 거 한 번 하려면 또 파파고에서 문장을 외워 가야 한단 말이지.
친구가 한국에서 매우 유명한 제과점에서 일을 하는데 선물로 가져온 과자니까 드셔보시라.. 를 일본어로 번역해서 몇 차례 반복 연습했지만, 무슨 연유인지 친구가 한국에서 매우 유명한 파티시에인 걸로 전해진 듯했다. 뭐.. 딱히 큰 거짓말로 아니니까. 그냥 하하호호 웃고 나서 다시 내려가려 하는데, 나에게 뭐라고 뭐라고 한다. 엥? 중대장이 한 말을 이해 못 해 "잘못 들었습니다" 외치는 신병의 얼굴로 미안하지만 못 알아듣겠다고 얘기했더니 메구미 상은 갑자기 무척 당황하면서 "이이데쓰 이이데쓰 (괜찮아요, 괜찮아요)"를 반복하면서 올라갔다. 멀리서 그 대화를 듣고 있던 친구가 나중에 말했다. "형, 그거, 형보고 일본어 잘한다고 하는 거 같던데요."
...
에라이. 한참 멀었구나.
며칠간 난보쿠선을 주로 타고 다녔으니까 오늘은 좀 다른 지하철 노선을 타고 싶었다. 토호선. 난보쿠선과 마찬가지로 삿포로 시의 남북을 종단하며 운행하는 전철이지만 난보쿠선이 서쪽 구역의 남북을 다닌다면, 토호선은 동쪽 구역의 남북을 운행한다. 거리상 따지고 보자면 숙소에선 북24가 + 동15가에 있는 토호선의 모토마치 역이 조금, 아주 살짝 더 가까운 걸로 보이는데 어쩌다 보니 그동안 난보쿠선만 이용해 왔던 것. 여기온 첫날 친구들을 마중 간답시고 구글에서 알려주는 근처 전철역으로 찾아갔다가 길을 헤맨 곳이 바로 이 모토마치 역이 되시겠다.
삿포로 시내 구경을 하기로 했으니 가장 편한 건 버스나 전차를 타고 풍경을 구경하는 게 좋을 것 같았다. 관광도시에 있는 빅버스 투어처럼. 마침 삿포로 시내를 순환하는 시영 노면전차 (市電 시덴)를 스스키노에서 환승을 할 수 있었다. 삿포로 전차는 외선과 내선이 각각 따로 있어서 하나는 시계방향으로 순환하고 다른 하나는 시계 반대방향으로 순환하는데 (당연하겠지만) 정류장도 각각 따로 있다. 목적지가 분명하다면 어디로 가는지 잘 보고 타야겠지만, 우리는 그냥 한 바퀴 돌 생각으로 타는 거니까... 시간표를 보고 둘 중에 먼저 오는 전차를 타기로 했다. 그런데.. 삿포로도 그렇고 이후에 갔던 하코다테도 그렇고 전차 정류장을 어쩌면 이리도 작게 만든 건지. 등뒤로 큰 배낭을 메고 있거나 덩치 좋고 배 나온 서양인들이 이곳에 서있다가는 배가 전차에 치이기 십상이겠다. 우라사와 나오키의 <빌리배트>처럼 미군정 시대를 배경으로 하는 만화를 보면 모든 게 작게 만들어진 일본의 건물이나 시설 때문에 미국인들이 짜증을 내는 장면이 종종 나오는데 그 기분을 알 것도 같았다. 요금은 2025년 10월 기준으로 230엔. 전철에서 환승하는 승객은 경우 80엔의 할인을 받는데, 교통카드 (IC 카드)를 사용하게 되면 자동적으로 할인요금이 적용되지만 현금으로 전철 승차권을 구매할 경우 미리 환승용 티켓을 구매해야 한다고 한다.
잠깐 곁길로 빠져서 교통카드에 대해서 얘길 하자면, 일본에도 교통카드가 한국의 티머니 카드처럼 편의점 등에서 전자 결제수단으로 사용되는데, 일단 종류가 무척 다양하고 (키타카, 수이카, 파스모, 이코카 등) 휴대폰 앱을 설치해서 사용할 수도 있지만, 대중교통에 따라 사용이 불가능한 지역도 존재한다. 예를 들어 지난 요이치 증류소 편에서 삽입한 JR 홋카이도 노선표에도 교통카드를 사용할 수 없는 역을 보여주는데, 이는 단지 카드를 읽고 결제를 하는 기기가 아직 설치 안 되어서 그런 걸로 보인다. 예를 들어, 지하철 내에 광고 중 하나가 아다치 미츠루의 <터치> 광고였는데, 처음엔 그게 최근에 다시 연재를 하는 건가 싶었지만, 자세히 보니 크레디트 카드를 터치해서 요금을 결제하는 새로운 전철요금 결제 방식을 홍보하고 있었던 것이었다. 영미권에서는 카드를 '탭'한다고 하고, 한국에서는 카드를 '찍는다'라고 하지만, 일본에서는 '터치'라는 생소한 용어를 썼던 것.
그리고 교통카드뿐만 아니라 NFC 방식으로 요금을 결제하는 모든 방식을 IC 카드라고 부르고 있다. 말하자면, 이자카야에서 술을 마시고 돈을 낼 때에도 휴대폰 애플페이 등으로 돈을 내고 싶다면 "IC카드 괜찮습니까?", 혹은 "터치?"라고 얘기하면 된다는 것. 단지 휴대폰 앱을 사용한 교통비 결제에 있어서는, 일본에 현재 깔린 교통비 NFC 정산 시스템에 소니의 FeliCa 인증이 필요하기 때문에, (2025년 현재) 다른 나라에서 구입한 안드로이드 폰은 수이카나 파스모 앱이 설치되지 않는 경우가 많다. 현재로는 애플의 아이폰 만이 전 세계에서 판매 중인 모든 기기에 FeliCa 인증을 넣어 팔고 있다. 뭐.. 장황하게 썼으나, 갤럭시 폰을 쓰는 나로서는 삼성페이가 아니라 실물 교통카드를 들고 다니면서 대중교통을 (그리고 편의점을) 잘 이용했다는 이야기.
스스키노는 삿포로 최대의 환락가라고 들었는데 평일 아침이라서 그런지 한산해 보였다. 하긴. 잘 나가는 환락가일수록 평일 아침은 한가해야겠지. 어젯밤에 달렸을 테니까. 그래도 한 면이 완전히 광고판들로 어지럽게 뒤덮인 건물을 보고 있자니, 저기 위층에 입주한 사업체들은 창밖을 아예 못 보고 일을 하겠구나 싶었다. 물론 파친코나 유흥주점일 경우 크게 상관은 없겠지만.
멀리서 들어오는 전차가 보인다. 너무 비싸서 열차 여행은 엄두를 못 내는 캐나다에 살아서 그런지, 이번 여행 동안에는 원 없이 열차를 타게 되었던 것 같다. 막상 타면 수면으로 피로를 풀기 바빴지만. '삿포로 시덴' 하면 보통 떠오르는, 눈보라 속을 헤치고 가는 똥그란 눈의 녹색 전차를 타고 갈 줄 알았는데, 강화유리로 덮인 으리번쩍한 신형 전차가 들어왔다. 정류장도 좁더니 전차 안도 좁았는데, 몇 정거장 가더니 병원 앞에서 노인분들이 잔뜩 들어와서 서둘러 마스크를 써야 했다. 그동안 일본에서는 전혀 발견되지 않았던 정체 모를 병원균의 기원은 되고 싶지 않았으니까.
한가한 변두리 시내, 학원 앞, 상가 촌을 지나서 중앙도서관이라고 적혀있는 정거장에서 내려본다. 아내와 같이 여행을 다니면 참새 방앗간처럼 도서관 견학을 하다 보니 몸에 밴 습성이다. 그리 크다고도 아예 아담하다고도 말할 수 없는 크기. 80년대 과천도서관 정도의 규모. 당연하겠지만 대부분이 일본어 도서였는데 최근에 일러스트레이션에 재미를 붙여서 사진 책들을 찬찬히 훑어보다 보니 약간의 허기를 느꼈다. 기왕 번화가 밖으로 나왔으니 이 동네 골목 식당을 좀 찾아보려고 검색을 해봤더니, 엥, 여기 도서관에도 구내식당이 있었네. 이런 건 못 참지. 갑자기 오래전 과천 도서관에서 팔던 우동이 생각났다. 지금 생각하면 하이면 정도의 맛이었는데, 그땐 그것도 동전을 세어가면서 먹었었다 헤헷.
테이블 4개 정도 그리고 창가에 카운터 탑을 둔 소박한 식당 주방에는 조리사 2명이 일하고 있었다. 역시 식권 발매기에서 식권을 산 후 주방 카운터에서 주문을 하는 방식. 물은 셀프. 주로 일본식 카레를 베이스로 한 음식들이 있었고 라면도 팔고 있었는데, 시간이 어정쩡해서 그랬는지 도서관 이용객보다는 주변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작업복을 입고 앉아서 먹고 있었다. 아니나 다를까, 엊그제 홋카이도 대학 학생식당에 비해 양이 넉넉한 편이었네. 메뉴판에는 올해 7월부터 가격이 인상되었다고 적혀있는데, 최근에 일본에서 쌀이 품귀라는 소식을 들었던 터라 이해가 갔다. '오늘의 점심'과 돈까스 카레 중 고민하다가.. 돈까스 카레로.
다시 스스키노로 가서 다누키코지 입구에 있는 모유쿠 삿포로 쇼핑몰을 잠깐 구경한다. 아내의 사전 조사에 의하면 이곳에 메가 돈키호테와 다이소 스탠더드, 그리고 로프트가 모여 있어서 일본에서 사 가지고 갈 물건들을 한꺼번에 살 수 있단다. 가만. 벌써 물건을 사자고? 앞으로 여기저기 더 돌아다닐 텐데 들고 다닐 짐만 늘리는 게 아냐...?라는 생각이 0.5초 정도 들었지만 내 손은 이미 돈키호테의 진열대를 샅샅이 훑고 있었다. 요 며칠 좀 걸어 다녔더니 모두가 칭송하는 '휴족시간'이라는 아이템을 써 보고 싶었던 게지. 그것 외에도 앞으로의 폭식 여행을 위해 소화제를 이것저것 집었는데, 나중에 정신 차리게 되지만 많이 먹기 위해서는 단지 소화력만 필요한 게 아니었다. 돈도 있어야 되더라구요.
오, 근데, 여기에 소니 매장도 있었네. 오오오오오오옷. 아이보가 있다. 아직도 소니에서 아이보를 만들었구나.
2001년에 세계 여행을 다닐 때 호주 소니매장에서 처음 본 아이보. 비록 움직임은 터무니없이 느려터졌지만 그 아이디어 하나는 출중했었다. 사람을 따르고 재롱을 피우고 반응하는 것이 정말 생물 같은 느낌도 주었다. 사실 로봇 개를 반려견으로 삼아야 할 대상들은 뒤치다꺼리를 할 수 없는 노인들일테니, 로봇이 그리 빨리 달릴 필요도 없었다. 그러다가 VAIO 컴퓨터를 매각하면서 로봇 부문도 정리한 줄 알았는데, 2018년에 새로운 버전이 나왔다고 한다. 그러고 보니 벌써 7년 전에 나온 거였구나. 예전에도 그랬는지 정확히 기억이 안 나는데 신형 아이보는 낯을 가린다. 이름을 불러도 처음에는 경계하는 모습을 보이다가 차츰 스킨십이 많아질수록 그 사람 쪽으로 더 자주 간다. 듣자 하니 일본에서는 아이보 장례식 전문가도 있고, 이바라키 현 어딘가에 구형 아이보를 전문으로 수리하면서 장기기증도 중개한다고 하니, 초고령화 사회의 단면을 여기서도 볼 수 있었다.
이후에도 유니클로, 빅카메라, 빌리지뱅가드가 있는 도큐백화점 건물을 또 샅샅이 뒤져 다녀본다. 박물관이나 유적지를 다니는 여행일정도 좋지만 지름신의 인도를 따라다니는 것도 즐겁구나. 이럴 때마다 이렇게 쇼핑을 좋아하는 사람이 과연 시골에서 안빈낙도하며 살 수 있을까 의심도 들었지만... 아... 스스키노와 삿포로 역을 연결하는 지하도를 지나면서 순찰로봇을 발견하고는 약간의 회의도 들었다. 도시에서는 저렇게 카메라로 체증만 하는 로봇이 순찰 경비원을 대체하게 되겠구나. 사실 경비원들에게 범법자들을 무력으로 진압하는 것까지 기대해서는 안 되겠지만, 어린 아이나 노인이 실시간으로 피해를 당하는 상황에서 로봇이 다가와 체증만 해 가는 상황을 상상하니 왠지 아쉬움이 들기도 한다. 그렇다고 로보캅이 현행범을 현장에서 사살하는 장면까지 원하는 건 아니지만.
어제 예약해 둔 시하치에 가서 간단한 저녁을 먹은 후 숙소로 돌아가 2차를 한다. 친구 녀석은 많은 미덕을 가지고 있는데 그중 가장 존경스러운 부분은 여행지에서 현지어를 적극적으로 사용하는 용기가 있다는 점이었다. 한국의 많은 성인, 특히 중년 남성들에게 무척 어려운 부분. 남들 앞에서 자신이 바보 같아 보일 수 있는 부분에 쉽게 도전하지 못한다는 것인데, 이 친구는 어색한 외국어라고 할지라도 그걸 사용하는데 주저하지 않아서 어떻게 그럴 수 있는지 감탄을 연발했다. 그러다가 친구의 한 때 꿈이 외교관이었다는 얘기를 처음 들었다. 녀석과 학교를 같이 다니고 같이 자취를 한 적도 있었는데. 어떤 사람에 대해서 잘 알게 되는 건, 어쩌면 세월의 두께나 친분의 깊이와는 전혀 다른 문제일지도 모른다는 평범한 진리를 또 깨닫는다. 사실 우린 낯선 사람에게 내 고민에 대해 더 진실하게 얘기하는 경우도 많지 않은가. 한 때 상담가들이 고액을 받아가며 하던 일들을 지금은 챗GPT가 대신하기도 하고. 아무튼 이렇게 모처럼 가슴에 남은 이야기들을 털어놓다 보니...
어떻게 잠에 든거지?
캔맥주로 속을 달랜 후 메구미 상한테 받은 사케와, 어제 친구가 사 온 요이치 싱글몰트를 비운 후 술 사러 편의점에 두 번 나갔다 온 거까지 기억은 나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