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다, 오타루

남편과 함께 쓰는 홋카이도 여행 이야기 10

요이치는 바닷가의 작은 마을로, 양조장 투어 후 동네를 돌아다니며 시간을 좀 더 보낼까 하는 마음도 있었다. 하지만 (아무도 걱정하고 있지 않았고 그럴 필요도 없었지만) 우리 일행을 무사히 오늘 밤 전에 숙소로 데려다 놓아야 한다는 사명감에 불타고 있던 나는, 왠지 조바심이 들어 일단 뜨기로 했다. 여행 전에 친구가 하루 이틀 정도 렌트를 하겠다고 제안하긴 했지만, 양조장 투어에다 ‘일식일나마비루’를 모토로 삼은 여행인지라 운전자에게 미안할 것 같아서 포기했었다. 요이치는 바닷가에 면해 있기도 하고 기후와 지형적 이유로 와이너리들도 있다고 해서 (그래서 위스키 증류소도 생긴 거겠지), 미래에 다시 기회가 있다면 렌터카로 천천히 돌아보고 싶은 동네 중 하나이다.




삿포로 일정이면 보통은 추가하는 관광지 오타루는, 바로 그 이유로 아예 일정에서 뺄까도 했지만, 요이치까지 온 마당이라 가는 길에 들러보기로 했다.


관광지 아니랄까봐 운하도 건물들도 예쁘다. 관광객 상대로 소프트 아이스크림이나 멜론 등을 파는 상점들도 늘어서 있다. 친구가 멜론을 한 조각 사서 나누어 먹었는데, 캐나다에서 쉽게 찾을 수 있는 캔털루프(Cantaloupe)랑 비슷하게 생겼으나 맛이 특별하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뭐야, 철이 아니어서인가. 여기 멜론 맛나다더니 좀 실망이다. 제철 멜론을 먹어보지 않아서 뭐라 말할 수는 없지만, 제철이 아니라면 멜론은 젤리로 먹는 것이 낫겠다.




오타루에 대해서는 남편이 자세히 서술하였으므로 길게 쓰진 않도록 하겠다. 다만 좀 흥미로웠던 것은 밴쿠버 개스타운(Gastown)의 증기시계가 오타루에도 있다는 사실. 심지어 시계 밑의 네개의 동판 중 하나에는 'Vancouver, Canada'라 써 있다.

개스타운의 그 증기시계로 말할 것 같으면, 관광책자에 꼭 들어가 있고 누구나 다 보러 오지만, 너무 소박해서 이게 다인지 어리둥절해지는 그러한 시계 되시겠다. 매일 수많은 관광객들이 모여 시간을 기다리는, 밴쿠버와는 그 규모가 다른 프라하의 천문시계도 실망하는 사람들이 있다고 하니까 여행 전에 준비해야 하는 것은 기대치를 적절하게 조절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천문시계는... 옛날 옛적 호랑이가 담배피고 체코가 아직 크로나를 쓰던 시절 본 기억으로는 멋졌었는데.)


올해 여름 일본에서 놀러온 친구 S와 그의 아들과 갔던 개스타운.


암튼, 오타루의 시계는 뭔가 다를까 하여 관찰을 하였으나 잠깐 증기 뿜고 마는 것은 유사하였다. 나중에 찾아보니 무슨 특별한 이유가 있어 쌍둥이 시계가 거기 있는 건 아니었고 그저 같은 사람이 만들었을 뿐. (Raymond Saunders라는 분이 만들었으며, 밴쿠버 시계는 1977년에, 오타루의 시계는 1994년에 제작되었다고 한다.)


오타루의 신삥 증기 시계




어느 정도 구경을 마치고 다시 기차역으로. 여전히 예약이 없으면 완행을 기다렸다 타야하는 줄 알고 언제 오는가 걱정이었는데, 역에 가서 물어보니 웬걸, 서는 기차는 직행 완행 가리지 않고 다 탈 수 있는 듯. 친구는 쫄지 않고 자기가 이해할 때까지 묻는 훌륭함을 가지고 있는 녀석인데, 남편 말로는 몇 번 같은 질문을 했더니 직원이 짜증을 냈다고 한다. 일반적인 그들의 태도에 반해 꽤 놀라웠나 보다. 일상 일본인보다는 소설 속이나 일드 속의 일본인들에게 더 익숙한 나로서는 그리 놀랍진 않지만.


짜증 얘기와는 조금 다른 이야기이지만, 일본에서 신기했던 것 중 하나는 교통 약자석에 앉는 것에 대해 주변 신경도 쓰지 않고 양보도 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물론 종종 양보하는 사람들도 있긴 했지만, 보통은 그냥 자연스럽게 앉아 있다. 동료들과 얘기를 하다가 이 주제가 나온 적이 있는데 우즈벡에서 온 동료 말로는 우즈벡에서는 그런 일이 있다면 주변 사람들이 우르르 세찬 비난을 쏟아부어서 아예 그럴 엄두도 내지 못 한다고. 캐나다에서는 Priority Seat라 부르는 이 자리에 비교적 자유롭게 앉긴 하는데, 불편해 보이지 않더라도 앞에 누군가가 서 있으면 손짓과 눈빛으로 앉겠냐고 묻는 일이 많다. 일본에 갈 때마다 적응이 되지 않는, 인도에서 사람들 사이를 미끄러져 다니는 자전거들와 함께 흥미로운 문화의 차이다.




기차를 타고 다시 삿포로 역 도착. 역은 다이마루 백화점과 붙어있어서 지하 식품관 구경도 해보고 (맛있어보이는 식품들로 가득했지만 좀 고급 백화점이어선가 아직 이른 시간이어선가, 할인 스티커 따위는 없었고 가격은 비쌌다), 오늘은 저녁을 어디서 먹어야 할까 하는 매우 중요한 토론 후, 혹시 자리가 없으면 또 마트에서 먹거리를 사는 방법도 있으니 일단 메구미 상이 말씀하신 식당에 가 보기로 했다. 식당의 이름은 '시하치'로, 나중에 알고 보니 인기 많은 맛집이었다. 특히 가성비 카이센동으로 줄을 서는 집이라고 하는데, 평일이어선가 다행히 자리가 있다고 한다. 문을 열면 테이블이 아니라 냉장고들만 있는, 수산물 가게처럼 보이지만 안쪽으로 들어가면 몇 개의 좌석이 있다.

손글씨로 빽빽하게 설명까지 쓰여 있어 파파고로도 알 수가 없는 메뉴라, 친절하신 서버분의 도움과 감에 따라 주문을 한다. 근데 와… 이렇게 신선하고 맛있다고?


IMG_0027.jpg 아이 씐나


(아무도 모르고 있었지만) 하루 종일 가이드의 마음으로 일행의 안전하고 원활한 이동을 위해 전력을 다했던 나는, 동네로 돌아오자 긴장이 풀려서 신이 났다. 음식이 맛있었기 때문에 더 신이 났다. 맥주 몇 잔을 마시고, 또 일본에 오면 경험해 보고 싶었던, 잔을 나무 그릇에 넣고 받침 그릇까지 넘치게 따라주는 사케도 주문했다. 안타깝게도 이 집에선 나무 잔 (마스(升)라고 부른다고) 은 아니고 오목한 사기 접시에 받쳐서 따라주셨지만. 그것까지 마시고 엄청 시끄러워졌다고 누가 그러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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