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캉의 언어로 본 영화 <스위트 홈>
<스위트 홈>을 통해 순환하는 언어, 소쉬르의 기표가 아닌 라캉의 시니피앙(기표)으로서 '사람과 괴물'에 대해 살펴본다. 라캉의 시니피앙은 사회적 통념인 이데올로기를 대변한다. 이데올로기는 그들이 속한 집단에 따라 다르게 표현된다. 이는 라캉이 말하는 대문자 타자다. 하지만 손에 잡히지 않기 때문에 소문자 타자로 존재한다. 영화에서 주인공 차현수(송강 분)는 윤지수(박규영 분)의 기타 치는 모습을 보면서 위안을 얻는다. 그들의 앞날은 아무도 모르며, 사방에 위협이 도사리고 있다. 그런 상황에서 기타 소리를 들으면서 현수가 "스위트 홈 같아."라고 말한다. 단 한번 언급되는 스위트 홈을 제목으로 삼은 이유가 드러난다. 바로 영화의 제목이 괴물 화가 진행 중인 현수의 입을 통해 말로 표현된다는 점이다. 스위트 홈은 언어의 은유이다. 라캉은 무의식이 은유와 환유의 형태로 언어로 표현된다고 했다. '따뜻하고 화목한 가정', '인간으로 죽기를 원하는 것' 이런 것이 라캉이 말하는 대문자 타자다. 대부분 사람들이 원하는 것이다. 그런 현수가 괴물 화가 진행됨에도 불구하고 '아이를 구하는 것'이 소문자 타자다. 이렇게 소문자 타자는 대문자 타자로 이끄는 욕망의 전차이다.
정부 기관 쪽에서 말하는 괴물은 단 한 가지로 집약된다. 사람과 다른 괴기 생명체다. 그러나 그린 홈 내에서 괴물은 다르게 해석된다. 그린 홈에서 일어나는 현상과 관련하여 괴물의 의미를 파악하고자 한다.
현수가 생각하는 '인간'은 사회적 이데올로기에 의한 통념적인 의미이다. 이 사회가 생각하는 인간에 대해 탐구해 본다.
인간은 언어를 사용하며, 의사소통 능력이 있어 조직을 구성하고 협업할 줄 안다. 이성뿐만 아니라 감성을 지녔다. 화목한 가정, 부, 권력과 명예를 욕망한다. 이기적인 면도 있지만 이타심도 있다. 때로는 자기반성 및 자기혐오에 빠질 수도 있다. 그리고 결국 언젠가는 죽는다는 점이다. 영화 속 이 은혁(이도현 분)은 인간이 지닌 긍정적인 면을 고루 지닌 사람으로 보인다. 나머지 그린 홈의 캐릭터들은 인간의 양면성을 고루 보여준다.
인간은 외관상으로는 직립보행을 하며 도구를 사용하는 능력이 있다. 특히, 불을 사용할 줄 아는 인간은 영화 속에서도 불을 이용해서 괴물을 처단하는 면을 보인다.
인간과 타 영장류를 비교하면 엄지 손가락의 능력이 있다는 것이 커다란 차이점이라고 한다. 인간만이 엄지 손가락을 나머지 네 개의 손가락에 두루 가져갈 수 있어서 어떤 물체를 쥐는 힘이 아주 강하고 정교하다고 한다. 인간이 괴물의 모습을 하게 되는 순간 손가락의 모양도 바뀐다. 어찌 되었든 인간과 괴물의 형상을 달리 표현하고 싶었던 것 같다. 또한, 얼굴을 붉히는 것은 인간에게만 나타난다고 하는데 영화에서도 괴물 화가 완전히 끝나게 되면서 괴물이 된 몸이 '차갑다'라고 표현되는 것을 볼 수 있다.
현수는 SNS를 통해 자신이 바이러스 감염자임을 인식한다. 현재 은밀히 바이러스가 퍼지고 있으며, 그 이상 증세인 코피를 줄줄 흘리는 현상이 나타났기 때문이다. 만약 골든 타임을 놓치게 되면, 자신이 괴기한 생명체로 변할 것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여기서 '인간으로 죽을 수 있기를 갈망하는' 현수는 날짜를 정해 놓고 자살을 시도하려고 한다. 그러나 그의 시도는 발레 하는 은유(고민시 분)를 보는 순간 무산되고 만다. 여기서 차 현수의 응시는 이 은유가 자기를 보고 있던 현수를 발견하게 되면서 소멸한다. 라캉의 응시는 소문자 타자이다. 차현수를 죽음본능이 아닌 삶에 의지로 이끈 것은 사소하지만 현수에게는 중요한 사건이다. 사소한 디테일이 한 개인을 변화시킨다.
잘생긴 만찢남(만화를 찢고 나온 것 같은 비주얼)인 차 현수는 알고 보면 아주 소심쟁이이고 왕따에 가족과 사회에 대한 갈등의 트라우마를 지녔다. 사회의 하급 클래스에 속했으며 인간으로서 대접을 받고 살지 못해 왔다. 그래서 죽음을 선택하기도 쉬웠다. 삶에 아무런 미련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가 선택을 해야 하는 순간이 왔을 때, 아이들을 구하기 위해 용감해진다. 이로써 현수는 괴물 화가 되고 있지만 있지만 아직은 사람임이 드러난다. 인간이 갖춘 덕목에 해당되는 행동을 하기 때문이다.
과연 그들이 괴물을 물리칠 수 있는가. 내 주변의 누가 괴물 화가 진행되고 있는가. 괴생명체로 변한 괴물. 골든타임. 괴생명체로 변하기 전에 처치하라. 그러나 괴물 화가 진행되는 골든 타임 동안 그/그녀는 인간이다. "본시 골든타임은 인간의 생명을 살리는 시간인데", 의대생 은혁의 말이다. 골든타임의 이중적 의미를 다른 누가 아닌 은혁이 했다는 점은 영화의 마지막에 그 의미가 드러난다. 인간의 무의식이 언어로 표현된다는 라캉의 언어의 환유다.
영화가 진행되면서 드러난 사실은 인간이 욕망으로 인해 괴물이 된다는 것이다. 자신의 사악한 욕망을 이겨내는 자는 추한 괴물이 되지 않으며, 괴물(2)이지만 오히려 인간을 지켜준다. 여기서 언급하게 된 괴물(2)은 괴물의 외형과 특수한 현상인 죽지 않는 점을 말한다. 다만, 인간의 덕목 중 긍정적인 면을 지녔다는 점이 괴물(1)과 차이점이다.
여기서 사람이란 괴물을 구분 지어 말했던 영화 초반에 언급된 '인간'을 의미한다. 죽은 자는 사람이나 사람이 아니라 말한다. 이는 인간이 지녀야 마땅한 고귀한 덕목이 파괴된 형태의 겉모습만 사람이라는 의미다. 괴물(2) 보다 못한 특정 지을 수 없는 환유의 시니피앙이다.
재헌이 언급한 인간은 신과는 대조되는 개념으로 불사조가 아님을 의미한다. 즉, 인간은 상처받으면 아프고, 칼에 찔리면 죽게 된다. 결국 거대한 힘에 눌려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는 존재이다.
그녀는 여전사다. 걸 크러쉬를 대변하는 인물이다. 사실 스위트 홈에서 여자들은 대부분 용감하다. 배우 이시영은 평소 운동으로 다져진 몸매로 캐릭터를 멋지게 소화한다. 그녀가 새 생명을 잉태했는데, 인간이 나올지 괴물(1)이, 혹은 괴물(2)이 나올지 알 수 없다. 그녀의 남편은 대타자를 향한 명분으로 정부를 위해 사회를 위해 스스로 연구에 참여했다. 그러나 현재 그가 어디로 갔는지, 지금 상태가 어떤지 알 수가 없다. 죽었는지에 대해서도 현재로서는 정확히 알 수 없다.
바로 한두식(김상호 분)이다. 그의 한마디가 괴물(2)을 '선한 의지를 지닌 인간'으로 만드는 순간이라 생각한다. 역시 따뜻함, 이해받기를 원하는 것은 인간 본연의 여러 욕망 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괴물(3)은 괴물이 되었지만 모습이 인간이다. 그러나 사악한 욕망이 가끔 발현한다. 그가 어찌 인간의 모습을 하고 괴물의 힘과 불사조와 비슷한 능력을 소유한 것인지 알고자 정부에서 그를 가두고 실험한다. 실험실에서 나온 그는 결국 괴물로 변하며 괴물에 의해 죽는다.
라캉의 욕망 이론을 다룬 책에서 라캉은 '시각의 영역은 타자의 욕망의 차원이다'라고 말한다. 시각의 영역에서 소문자 타자는 응시다. 일반적으로 응시와 우리가 보고 싶어 하는 것의 관계에는 유혹이 따른다.'라고 언급한다. 즉, 응시가 있을 때 인간들이 원하는 대문자 타자인 스위트 홈을 욕망할 수 있는 것이다. 만약 더 이상 응시가 없다면 그 안의 인간적 욕망이 사라지게 된다. 그래서 응시를 하도록 거울 이미지처럼 내가 보고 싶은 것만 '보는 나'를 일깨워서 '보여지는 나'를 발견하게 한다.
보편적으로 지칭하는 인간은 '보여지는 나'와 '보는 나'의 상호작용이 일어날 때 소통이 이루어진다.
평소 스릴러와 드라마 쪽의 장르를 선택해서 영화를 보는 편이다. 호러, 즉 공포로 분류된 것들은 거의 보지 않게 된다. 그러나 현재 넷플릭스 국내 1위이자, 해외에 입성하여 핫한 반응을 일으키고 있다고 하니 몹시 궁금했다. 나 역시 타자의 욕망을 욕망하기 때문에 넷플릭스 1위인 영화를 선택하게 되었다.
무섭고 징그러운가에 대한 답을 해야겠다. 나처럼 무서운 것을 보지 못하는 사람도 10화까지 정신없이 잘 봤다. 가끔 눈을 다른 곳으로 돌리고, 귀를 막은 적은 있다. 9화에서 특히 피가 낭자하며, 인간이 괴물보다 잔인해질 수 있는 동물이란 사실을 실감하게 된다. '갑툭튀', 갑자기 툭 튀어나오는 무섭고 징그런 장면은 그리 심하지 않았던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