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 진로 고민 상담
나는 '나이 든 워킹 맘'이다. 여기서 어떤 글자 하나 뺄 것이 없다.
나이 든 워킹맘
나는 '워킹 맘'이었는데 이제 '나이 든' 이란 수식어까지 달았다. 나이가 50 넘은 지 오래되었으며, 아직도 서울에 있는 자식에게 생활비를 부쳐야 한다. (아이들 생활비는 원래 나의 몫이라서 큰 딸이 취업하자 정말 기뻤다. 취준생 둘째에게는 계속 보내줘야 한다.)
오늘 친구들 단톡방에 뜬 소식은 나를 심란하게 만들었다. 축하해 줘야 하는 뉴스였다. 나의 둘째와 동기생이며 서울의 같은 대학을 나온 친구 딸이 대한민국에서 난다 긴다 하는 회사에 입사하게 되었다는 소식이다.
그 아이가 입사한 소식은 당연히 축하할 일이며 진심으로 축하했다. 다만 내 처지가 떠 올려진 것이다. 우리 딸이 안쓰러운 생각도 들었다. 그래도 씩씩하게 지내니 감사할 일이다. 내가 아는 어떤 아이는 몇 년간 임용고시 준비를 했다. 대학도 명문대 출신이다. 시험에 자꾸 떨어지면서 자존감은 낮아지고 우울증이 심하게 와서 지금은 부모님이 계신 곳으로 내려와 지낸다고 한다. 제발 그 아이가 마음의 평화를 찾기를 희망한다.
큰 딸이 대학을 졸업하자마자 보내던 생활비를 끊고, 자립하라고 했던 때가 떠 올려진다. 서울에서 취업을 준비 중이었는데 용돈(생활비 포함)을 5개월 정도 보내지 않았다. 대학을 졸업하면 시간이 많이 있으니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공부를 하라는 의미였다.
그 당시 나는 아무것도 몰랐다. 취업준비가 대학 공부보다 몇 배의 시간이 걸린다는 것, 아르바이트를 하다 면접을 갈 수도 없다는 것, 무한의 기다림과 초조가 반복되는 시간이라는 것, 무엇보다 가족의 응원이 필요하다는 것을......
그때 딸에게 강박과 우울 초기 증세가 나타났다. 똑 부러지게 발표를 잘하던 딸은 남들 앞에 서기도 힘들어했다. 불안이 그림자를 드리웠다. 그 시절을 생각하면 정말 뜨끔하다. 그 겨울 유난히 추웠다. 가장 싼 가격의 비행 편을 구해 딸과 함께 따뜻한 나라 태국에 다녀왔다. 기분 전환이 필요했다. 자식에게 엄마라는 존재는 절대적이다. 강한 엄마가 필요하다. 밝은 엄마가 되어야 한다.
자식을 내내 강하게 키우지 않은 채, 세상에 나오자마자 등을 떠민 격이 되었다. 그때 큰딸이 겪었던 정신적 고초는 말할 수가 없이 컸다. 그다음은 더욱 큰 노력이 필요했다. 자주 전화하고, 올라가고, 다시 생활비를 보내고, 격려했다. 그 후 큰딸은 후들거리며 힘든 가운데에 입사 면접을 치렀고, 당당히 합격을 했다. 지금은 건강하게 지내고 있으며 오히려 엄마를 격려하고 있다.
육아에 있어 둘째는 주로 쿠션 효과로 인해 큰 아이보다는 스트레스가 덜하며 긴장감도 적어진다고 한다. 둘째 딸이 나에게 언제까지 자신에게 생활비를 줄 수 있냐는 질문에 "네가 입사할 때까지"라고 말했다. 속으로는 '정말 큰일인데, 적어도 1년 안에는 취업하겠지.'라는 마음이었다. 그러다가 1년이 지났다. 그래서 이제 또 '그래, 00 이는(내 친구) 서울에 아들이 결혼한다고 아파트도 사 줬다는데, 경제적 능력이 있는 한 내 자식을 위해 지원해 줘야지. 그때까지만 내가 더 직장에 다니자. 마음 편하게 해주자' 하면서 내 마음을 다잡아왔다. 무엇보다 소중한 것은 내 자식의 영혼이다.
자식들 대학 입시 때부터 친구들에게 '자랑'을 하면 밥을 사는 것이 불문율이다. 그래서 다음에 만나면 밥을 산단다. 참 좋겠다. 나도 어서 밥을 사고 싶다.
인생 진로 고민
직장 중에서도 철밥통으로 알려진 직장이 교사다. 그런데 그런 철밥통을 그만두고 싶다고 말을 하는 경우가 있다. 특히 임용고시를 통해 교사가 된 신참마저 그런 말을 하니 참으로 안타깝다. 가장 큰 이유를 순위로 들면 다음과 같다.
그만두고 싶은 이유
1. 학생들이 달라져서(나는 달라지지 않아서 힘들다)
2. 체력이 모자라서(사람을, 그것도 청소년기 십 대를 상대하는 일이기 때문에 정신적인 에너지가 매우 요구된다.)
3. 업무가 힘들어서(업무 양이 많다는 문제보다 일방적으로 명령 하달식인 경우가 많다.)
4. 의욕이 떨어져서(지식 전달 위주의 교수-학습 관계가 되면서 교사로서 자긍심이 점차 사라진다/보람찬 하루라는 말이 그립다/그냥 누구 탓이 아니라 1, 2, 3번이 합해져서 덤으로 의욕도 떨어진다)
5. 적성에 맞지 않아서(다른 이유가 필요 없다. 자유로운 영혼이라 이것저것 제약이 유난히 많은 직업이라는 점이 우울 요인이다)
그럼에도 정년까지 하는 이유
1. 무엇보다 학교 생활이 소중하다(마지막까지 학생들과 함께 하고 싶다/학생이 달라지는 모습에 마음이 뛴다/소명의식보다 여태까지 해 왔던 루틴이 없어진다는 것이 두렵다)
2. 퇴직 후에 할 일이 없다(퇴직이 두렵다)
3. 목구멍이 포도청이다(일정한 월급이 중요하다)
이렇게 말하는 교사들을 비난의 대상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을 수 있다. 물론 여타의 직업에 비해 무척 행복한 양상이라고 할 수 있다. 배부른 소리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배부른 나는 글을 쓴다. '자유로운 영혼의 소유자'가 어떻게 여직 한 직장에 그것도 한 장소에 머물렀는지 나의 지인들과 친구들이 신기해한다. 나는 일정한 루틴을 그리 좋아하지 않는 성격이다.
이런 성격인 내가 한 학교에 30년을 머무르게 된 비법은 다음과 같다.
학생들이 매년 바뀌기 때문에 흥미롭게 지낼 수 있었다. 직장 밖에서 스트레스 풀 방법을 연구했고, 늘 새로운 도전을 해 왔다. 이 가운데 '일정한 월급을 받는다'는 부분은 뺄 수 없는 중요한 기정사실이다.
나는 교사 중 몇 명이나 자신의 인생 진로에 대해 심사숙고하는지에 관한 연구를 주제로 논문을 써 보고 싶었다. 학생들에게 장래의 희망이나 진로의 가이드 역할을 하는 교사지만 정작 본인의 장래에 대해 진로 고민을 하는 경우가 그리 많지는 않다.
아침에 일어나서 제발 어디 갈 곳이
있으면 좋겠다.
정년 퇴임하신 어떤 분께서 하신 말씀이다. 졸업 후에도 끊임없이 선생님을 찾아올 만큼 평생 학생들의 입시 진로에 매진하셨던 분이시며 따뜻한 선생님이셨다. 아침에 일어나면 갈 곳이 없으시다는 것이 답답하다고 하신다.
누가 나에게 컨설턴트 자격을 준다면 진정성 있게 설계를 해 주고 싶다.
먼저 우울해하는 주변의 젊은 청춘 교사들에게 조언한다.
처음 교사가 되었을 때를 생각해 보세요. 합격했을 때 그때 심정요. 애들은 그러련 하는 게 마음이 편하지요. 그래요. 그래도 속 터지면 친한 동료 교사와 말해요. 공감을 하는 동료가 곁에 있으면 직장생활이 나아지지요. 학교는 정말 아이들을 사랑하지 않으면 점점 힘들어지더군요. 동료가 힘들게 할 때도 많지요. 그런데 상대를 파악하고 내가 힘 빼는 연습을 하면 좀 낫더라고요.
선배교사가 요구하는 것이 공평하지 않다고 생각하세요? 그들도 그런 식으로 해 왔기 때문이기도 해요. 우선 맡은 일을 열심히 해 보신 후, 정 안되면 정면 돌파해야겠지요. 싸움이 나쁜 것만은 아닌 것 같아요. 방법을 잘 생각해서 내가 얻을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좋을 것 같아요. 나의 노력이 없이 싸우는 것은 상대에게 허점만 만들게 되니, 그전에 우선 열심히 노력을 하는 것이 좋을 것 같아요. 교사들이야말로 회사와 다르게 상하관계가 극심하지 않다고 생각해요.
공립학교는 이동을 하니 분위기 전환이 될 수 있지만 '이제 또 어떤 학교로 가나' 고민을 하지요. 사립은 한 학교에서 평생을 지내야 하니 동료와의 관계가 더욱 중요하다고 봐요. 외국 무료 연수가 있으면 기회를 꼭 잡으세요. 인생의 큰 그림을 그려 보세요. 제가 지금 공방을 갖게 된 것은 아주 오랜 계획이었고 그 꿈이 점차 구체화된 거예요. 우리가 아이들에게 꿈과 진로를 이야기하라고 하듯이 우리도 그걸 만들어가는 거라고 생각해요.
그러나 가장 중요한 것은 긴 직장생활에서 나의 스트레스를 어떻게 풀어나갈 것인지에요. 직장 밖에서 뭔가 찾아보면 좋을 것 같아요. 교사가 즐거워야 아이들도 신날 거예요. 등등.
나이가 55세 넘은 교사에게는 이런 식으로 권했다.
정원 일에 아주 소질이 있으시네요. 저에게 한때 조경에 관심이 많아 사 두었던 책이 있어요. 이걸 드릴게요. 그리고 00 센터에 관련 강의가 있으니 코로나 끝나면 가 보세요. 조경은 힘이 필요하며 위험요인도 많지만 좋아하시니 잘하실 것 같아요. 감각도 필요하다는 데 센스 있으시잖아요. 자격증 있으시면 나중에 정원의 나무 하나만 가지치기해 주셔도 용돈은 벌 수 있다더군요. 정년 후에는 돈을 많이 버는 것 보다도 좋아하는 일을 한다는 것이 젊게 사는 비결이래요.
이른 퇴직이든 정년이든 나이가 50대 중반인 경우, 그 사람의 성향을 이해하고 미래설계를 구체적으로 해 준다. 꼭 퇴직 5년 전부터 준비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얼마나 좋은 직장인가. 갑작스러운 은퇴를 당하지 않고, 미리 인생 설계를 할 수 있다니 말이다. 그런 나 자신은 어떠한가. 나 자신 역시 이른 퇴직을 고려해 왔고, 이미 준비되어 있다고 생각한다. 그럼에도 정년이 되려면 아직도 많이 남은 직장을 스스로 그만둔다는 것에 엄청난 고민이 앞선다. 두렵기도 하다.
은퇴, 명퇴
이른 퇴직에 대해 몇 년 전부터 고민을 했다. 나의 둘째 딸이 취업하면 그만두려고 했다. 그러다가 내가 그만둬야 청년 취업률이 늘 것이란 생각도 했다. 남은 인생의 계획과 준비를 해 왔음에도 고민한다. 언제 어떻게 그만둘 것인지와 무엇을 하면서 어떻게 남은 인생을 잘 살아갈 것인지다.
밤에는 자판기를 두드리면서 나의 자산을 따져보기도 한다. 빚을 청산하고 남은 것으로 살아가야 하기 때문이다. 딸이 고 3 수험생일 때와 비슷한 심정이다. 눈치 보면서 딸을 격려한다. 아이가 눈치 보며 기죽을 까 그것이 제일 싫다.
나의 진로에 대해 고민을 한 후로는 학교 생활이 더 재미있다. 이제 얼마 남지 않았다는 생각에 수업이 소중하다. 급식을 먹을 때도 맛있고, 고맙고, 추억거리가 될 것 같아서 사진도 찍어둔다.
다만, 딱 한 가지는 아침에 벌떡 일어나 출근하는 것이 싫다. 이불속에 조금 더 누워 있고 싶다.
한동안 고민이 많았지만 이제 확실히 결정을 내렸다. 나도 아침에 이불속에 좀 더 누워 있어도 될 만큼 열심히 살아왔다. 더 이상 다른 것들은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책
어제의 글을 오늘 발행하게 되었습니다. 책 소개를 아울러 하게 되니, 차라리 잘 되었다고 봅니다. 주문한 책이 도착했습니다. 박윤진 작가(브런치 이웃 @lifebarista)님의 <철학하는 50대는 미래가 두렵지 않다>입니다.
작가님의 브런치 주소입니다. 현재 연재하고 계신 글도 흡인력이 있습니다. 곧 출간 예정이라고 합니다.
https://brunch.co.kr/magazine/dasiosim
<철학하는 50대는 미래가 두렵지 않다>는 표지글부터 당깁니다. 은퇴를 하게 된 사람뿐 아니라 불안에 대해 불안해하는 이들이 읽으면 좋을 듯합니다.
은퇴를 앞둔 선후배들과 이야기를 나누면서 돈이 가장 큰 문제가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불안이 더 큰 문제였다. 불안하면 아무것도 할 수 없단다. 창업은커녕 사람조차 만날 수 없게 된다. 불안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신체증상으로 나타난다. 그러나 불안이 '나는 지금 어떻게 살고 있는가?'라고 묻는 양심의 목소리라면, 불안을 약물로 해결하는 데 한계가 있어 보인다. 불안은 내 삶과 직결된 문제다. 내 자신에 대해 스스로 묻지 않으면 해결할 수 없는 문제다. - 책 표지 글
프롤로그에서 작가는 철학 상담을 공부하면서 알게 된 불안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인간이 사는 한, 불안을 피할 수 없다. 불안은 퇴직 스트레스 때문에 어느 날 갑자기 생긴 게 아니었다. 내가 인간이라는 증거였다."
글은 여러 일화를 다루면서 재밌게 구성되어 있습니다. 자석처럼 이끌리는 책이라고 생각합니다.
포스트 대문 사진 이미지 출처(픽사 베이, Free-photos님 사진 중 일부)
https://brunch.co.kr/brunchbook/memories-of
https://brunch.co.kr/brunchbook/madang
https://brunch.co.kr/brunchbook/be-happ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