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 다루기
무엇이든 적당히가 어렵다.
어느 날 공방의 몬스테라 잎에 물방울이 대롱대롱한 것을 발견했다. 일액 현상이라고 한다. 조사해 보니 과습이 원인으로 스스로 뿌리에서 잎으로 물을 보내는 현상이다. 그래서 몬스테라는 '울보'라는 별명을 지녔다고 한다. 참으로 자연은 신비롭기 그지없다. 스스로 치유하는 몬스테라의 부단한 노력에 감사한 마음이 절로 우러났다.
과습은 식물재배에서 가장 조심해야 할 원인이다. 잎이 처지고 시들 때 물을 계속 주면 오히려 뿌리가 썩어 결국 죽고 만다. 이는 인간사에도 적용된다. 원인을 파악하지 않고 일방적인 애정만 퍼붓는다면 문제 해결에 도움은커녕 관계만 악화되어 파탄에 이르게 된다.
가족, 친구, 연인 등 우리의 일상에서 적절한 마음의 거리두기가 필요한 이유다. '사랑'은 따뜻하고 아름다운 언어이며 삶의 원동력이 될 수 있다. 그러나 때로 문제를 일으키는 원인이 된다.
나는 너를 사랑해서 그래
일방적 사랑이 가져온 참담한 사건들이 보도되기도 한다.
이는 극적인 일화가 아닌 일상에서도 반복된다. 예를 들면 아이가 어렸을 때, 싫다는데 숟가락에 반찬 올려주기를 반복했던 나의 이야기다.
아이가 자라서 함께 외국 여행을 하게 되었을 때, 딸은 서로의 배려 목록을 만들자고 했다. 세 가지씩만 쓰자고 했다.
딸이 나에게 요구한 첫 번째 사항은 '하기 싫다는 데 하라고 3번 이상 반복해서 말하지 말기'였다. 여행할 때 내가 그 행동을 하면 '엄마, 1-1 항목이야.'라고 말하면 "알았어."하고 바로 받아들이면서 스스로 반성했다. 내가 상당히, 자주 그런 면이 있었다는 것을 알았다.
상대가 요구 조건을 잘 지켰을 때, 서로 껴안고 "사랑해!"라고 말하는 방식이었다. 처음에는 이런 것들을 굳이 목록으로 만드는 것에 대해 딸에게 불만이었다. 그러나 덕분에 우리는 아주 행복하고 성공적으로 여행을 마쳤다.
늘 푸르던 몬스테라가 엄동설한에 잎이 얼어 흐느적거렸다. 온실의 귀퉁이에서 외풍에 시달렸던 것 같았다. 다행스럽게 뿌리에 가까운 줄기까지 얼지는 않은 듯했다. 잎을 모두 싹둑 자른 후 안쪽으로 옮겼다. 3월 한 달 동안 실내로 옮겨 햇볕도 없는 곳에 두었다. 물은 거의 주지 않으려고 시선에서 먼 곳에 두었다. 한 달 동안 두 번 정도 물의 양도 조금만 줬다. 한 달 후에 싹이 올라왔다. 4월에 햇볕이 조금 드는 곳으로 옮겼다. 잎이 무럭무럭 나왔다. 겹으로 가지가 나오자 위의 잎에 구멍이 생겼다.
몬스테라의 찢어진 잎(구멍)은 아랫 잎에 햇볕이 들게 하기 위한 윗 잎의 자발적 희생이라고 한다. 성장을 위해 몬스테라는 오늘도 분주하다.
'치매'에 걸리지 않는 한, 인간의 성장은 죽을 때까지 지속된다고 한다. 그런데 잘못된 습관을 고치기는 참으로 힘들다. 몬스테라처럼 성장을 위해 스스로 지속적이고 처절한 인내와 노력이 필요하다.
아이들의 동화 중에는 사실 살벌한 이야기가 많다. 큰 딸아이가 세 살 때 안데르센의 동화 '분홍신 소녀 이야기'를 읽어줬다. 아이가 대성통곡을 하는 바람에 책 읽기를 다 마치지도 못했다. 너무 무서워서 그랬다는 것을 후에 알았다. 그토록 잔인한 이야기인 것을 왜 몰랐을까.
죽음에 갖춰야 하는 통념적 상황에도 불구하고 허영심에 분홍신을 신은 소녀는 저주에 걸리게 되어 계속 춤을 추고 결국 발을 자르고서야 춤이 멈추게 되는 이야기다. 결론은 소녀가 봉사를 계속하여 천국에 간다는 권선징악의 내용이라고 한다.
잔혹동화로 분류하여 아이에게 읽혀서는 안 되며, 특히 그림과 함께 되어 있는 경우 트라우마를 일으킬 수 있다고 한다.
그런데 그때 딸에게 읽어준 책은 그림이 삽입된 동화였다.
인터넷이 발달하지 않았으며 동화책을 몇십 권씩 함께 대량 구매하던 시대였다. 아무튼 그 당시 엄청나게 후회했다. 이후 아이에게 그 동화를 잊게 하기 위해 노력했다. 참으로 힘들었다. 청개구리가 물가에
엄마 무덤을 만들었다고 엉엉 울 만큼 감성이 발달했기 때문이었다. 이후에는 한국 현대 창작동화를 읽어주거나 내가 창작한 이야기를 해줬다. 권선징악보다는 재기 발랄한 내용이 전개되는 쪽을 선택했다.
'분홍신'과 같은 잔혹 동화는 아이보다는 어른을 위한 이야기라고 본다. 나의 잘못된 습관을 끊어내는 결단과 용기에 대한 비유적 표현으로서 말이다.
나의 건강을 위해 내가 당장 하고 싶은 충동적인 것들을 참고 가만히 생각을 해 본다.
음, 그래. 내 위장을 위해 오늘 아무리 목이 타도 맥주를 참자.
나의 정신건강을 위해 가만히 나를 들여다본다.
음, 그래. 그 사람은 그래서 그런 거였나 보다.
나의 마음 성장을 위해 시간을 만든다.
음, 그래. 하루 단 오분이라도 아무 생각을 말자.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보자. 평화롭고 예쁜 정원을 보자.
나는 너무 일을 많이 한다. 배우고 가르치고 강아지와 놀아주고 정원을 가꾸다 보면 하루가 짧다. '멍한 시간 갖기'는 내가 자신에게 해 줘야 하는 최상의 자기희생이다.
마침 친구로부터 문자가 왔다. 나도 현명해지고 싶다. '쉴틈'을 잘 만들어야겠다.
몬스테라의 잎을 들어 하늘을 보고 정원을 보고 강아지를 본다.
다시 살아난 몬스테라를 신기하게 만지작 거린다. 그러자 함께 놀아달라고 착한 자세로 납작 엎드려 조용히 있던 강아지 '깜뽀'가 짖는다. "알았다. 알았어!" 즐겁게 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