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지내는 거야?
후회는 우리를 과거에 머물게 하지. 중요한 건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지야. 영화 <쥬라기 월드:도미니언> 중 강하게 남은 한 문장이다.
후회 없는 삶을 이어가는 이가 있을까. 그중 나는 아주 심한 '후회 쟁이'다. 그렇지만 지금 오늘, 바로 이 순간을 즐기려고 한다. '그래, 후회하지 말자. 무엇이든 더 나은 오늘을 위한 초석으로 삼자.'하고 마음을 다듬어 보기로 한다.
지금 행복한가?
나에게 자주 묻던 질문이다. 힘들 때 '행복'하려고 노력해왔다. 직장을 그만둔 후로는 생각해보지 않았다. 퇴직 후, 이것저것 후회막급인 일들 천지였지만 살만했나 보다.
나는 상당히 외향적이다. 사람들을 좋아하며 사람들 사이에서 에너지를 얻는다. 직장에서는 하루에 120명 넘게 만나면서 살아왔다.
퇴직 후에는 종일 열명 미만의 사람들을 만난다. 어느 날은 아예 아무도 만나지 않는다. '왁자지껄 재미'대신 '평화'를 얻었다.
퇴직 후 이제 겨우 한 학기, 6개월이 지났을 뿐이다. 초기에는 하고 싶은 것들을 다 하려고 하다 보니 몸이 먼저 지쳤다.
직장을 그만두면 하고 싶었던 일 중 일 순위는 해외여행이었다. 코로나로 갈 수 없게 되었을 때, 정원이 있는 공방을 하게 되었다. '정원이 있는' 이란 단어가 의미하는 것은 사람을 만나지 않아도 무지하게 분주하다는 것이다. 이제는 먼 여행 대신 꽃과 나무 그리고 강아지와 노는 것이 일 순위가 되었다.
그런 와중에 다소 억울하게 코로나에 걸렸다. 만나는 이들도 적고 그들은 아무도 코로나에 걸리지 않았다. 어떤 경로인지 알 수는 없으나 며칠 호되게 아팠다. 여전히 기력이 없다.
코로나 확진되기 하루 전에 공방 정원의 잔디를 깎고, 코로나 자가격리가 끝나자마자 잔디를 또 깎았다. 두 번 모두 몸이 아주 힘든 상태였지만 기다란 잔디를 보는 순간 초인적 힘이 발휘되었다.
그 와중에 강아지 깜뽀는 열심히 잔디에서 놀았다. 일이 끝난 후 강아지와 나, 우리 둘은 평화롭게 바닥에 드러누워 구름도 보고 마당도 보며 뒹굴거렸다.
피크닉 놀이도 해 본다.
인스타도 한다. 공방을 하려면 해야 한다는 창업자의 조언을 받아들였다. 광고성은 없는 것 같다. 아직까지 인스타를 통해 수강 신청을 하는 사람은 없다. 수강생은 초반부터 지금까지 한결같이 다섯 분이시다. 적극적인 홍보를 하지 않아서 수강생이 늘지도 줄지도 않고 있다. 지금 함께 하는 이들로 만족이다. 같은 취미를 가진 이들과 함께하는 것은 즐겁다.
수강시간에는 함께 뭘 먹고, 웃고 바느질하고 그림 그린다.
옷 만들기는 힘든 과정이었지만 개성 있는 생활한복으로 뿌듯하게 잘 마무리했다.
어느 날엔 와인 강의를 했다. 그날 밤 와인 클래스를 받은 분들은 모두 여성이었다. 우리는 그 밤 새벽 두 시까지 인생 수다를 즐겼다. 첫 수업이라 테이블 와인 위주였지만 모두 진지했다.
공방 사방팔방에 모두 창문이 있다. 어느 곳에서 보아도 꽃과 나무가 방긋 웃으며 나를 본다.
지금 나는 꽤 잘 지내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