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것들은 때가 있다. 공방 '모닝'도 여느 농가들처럼 농번기에 접어들었다. 잔디가 '나 깎아줍시오~.'하고 나를 본다. 화단의 꽃들이 '나 좀 봐줘~. 물 줄 때 깨질 깨질 말고 시원~ 하게 뿌려봐.' 한다. 매일 물 주는 시간이 최소 한 시간, 많게는 두세 시간이 소요된다.
오늘은 올 들어 처음 잔디를 깎았다. 내가 이발을 한 듯 이리도 개운하다.
화단의 물을 주다 보니 아기 사과 꽃에 진딧물이 잔뜩 끼었다. 이런 이런. 나무 아래 지난해 심은 부추가 자라고 있어서 토양 진딧물 약을 미리 뿌리지 않은 탓이다. 에라 모르겠다. 부추는 모두 깎아 놓고 진딧물 약을 한다.
외부 작업을 하다 물 마시러 실내에 들어오면 또 실내에 할 일이 눈에 들어온다. 실내에 해피트리는 잘도 자란다. 공방의 해피트리와 녹보수 모두 동료 선생님들께 퇴직 선물로 받은 것이라 각별하게 관리해야 한다. 언제든 방문하시면 빛나고 있기를 원하실 것이다. 나는 녹보수 잎이 조금 더 예쁘다. 하여튼 이쁜 것들은 문제다. 관리를 안 하면 안 된다. 방심한 사이 흰 가루병이 번졌다. 외부 서늘한 곳에 놓고 약도 치고 바람도 맞게 한다.
내가 제일 싫어하는 벌레가 바퀴벌레다. 그래서 3월에 미리 방역을 했다. 한 달에 한번 '람다킬'이란 것을 물에 희석해서 나무 데크 틈새에 뿌린다. 한 달이란 시간은 참으로 나는 화살과 같다. 이걸 뿌릴 때마다 폭풍 후회를 한다. 아이고, 여길 타일로 했어야 해. 아니면 그냥 에폭시로 할걸. 이게 무슨 생고생인지 모르겠다.
지금 한 일들을 대충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꽃들 물 주기 2시간. 잔디 깎기 40분. 바퀴 방역하기 1시간. 나무 가지치기 30분. 화단 풀 뽑기 20분. 나무 진딧물 약 뿌리기 1시간. 약을 뿌린다는 건 준비과정이 포함된다.
한참 일을 하다 보니 오늘 포크아트를 배우러 가기로 한 날이다. 결국 오늘 못 간다고 전화했다. 나는 왜 이리 힘들게 사는지 모른다. 게다가 포크아트는 단 하나 배우고 나니 질리는 스타일이다. 주어진 대로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도 중급반과 고급반 것 네 작품만 하기로 했다. 나무에 그림을 그리는 것이나 천에 그림을 그리는 작업은 종이에 그리는 것과 별반 다를 것도 없다. 나는 역시 내 맘대로 가 좋은데 바쁜 와중에 무엇을 하고 있는지 후회막급이다. 글 중반에 벌써 '후회'란 단어가 두 번이나 된다. 그래서 한동안 글을 쓰지 않았다. 바쁘게 사는 것 자체가 '후회'이기 때문이다. 글을 쓰면 제목이 이리될 줄 알았다.
퇴직하면 쉬엄쉬엄 하기로 마음먹었다.
그런데
생활한복 월수 오전 9:00-13:10
화목 오전 수강생 두 분 (그림과 프랑스 자수 수업)
금요일 포크아트 배우러 감. 11-13:00
토요일 오전 수강생 세 분 그림과 자수 수업 10:00-13:00
모든 요일의 오후는 강아지와 산책 및 운동.
틈을 타서 수강할 것 샘플 작업 등등...... 네버 앤딩 일이다.
강아지 이야기는 조금 길다. 너무 힘든 상황이 되었다. 유전적으로 다리에 문제가 있다고 한다. 펫 샾과 연결된 병원에서 3개월 정도 6차 접종까지 마치자마자 동네 병원에 데려갔다. "다리가 잘못된 애를 샀네요." 수더분하시고 유기견을 돌보시는 원장님이시다. 그래서 다른 곳에 두 군데 가 봤는데 결과는 좋지 않다. 진료 소견은 동일하다. 언젠가 펫 샾의 문제에 대해 이야기를 좀 속시원히 하고 싶다. 이것도 인연이라지만 참으로 힘들다. 반려동물을 키우기로 한 일에 대해서 엄청 후회했다. 경제적 지출도 많은 데다 정신적으로도 육체적으로도 힘들다. 그래도 우리 귀엽고 안쓰런 강아지 '깜뽀'를 보며 마음을 다잡는다. 유기견도 키운다는데...... 우리 강아지 힘내자.
그런 이유로 인해 평일 오후에 공방 잔디에서 열심히 운동을 시키고 있다. 다음 달에 수술을 해야 한단다. 이제 겨우 생후 6개월 접어든 강아지다. 아기들이나 강아지나 잘 때가 제일 예쁘다. 사진이 대부분 자는 모습이다. 깨어있는 사진 몇 장 올려보기로 한다.
생활한복 배우기는 내일 배움 카드란 것으로 시작하게 되었다. 원장님과 안면이 있어서 자리가 하나 비었다고 얼른 하시란 말씀에 번갯불에 콩 볶듯이 이틀 만에 노동 일자리 센터 가서 배움 카드 만들고 은행 가서 카드 찾고 학원 가서 등록했다. 국가 지원을 받는 과정이다. 과거에는 전액 지원이지만 지금은 40퍼센트 자비 부담이다. 재료비와 수강비 중 4개월 간 40만 원을 자비로 낸다. 그 말은 곧 7월까지 수업을 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일련의 과정이 정말 힘들다. 생애 처음 배움 카드를 만드는 과정도 힘들지만 정작 수업이 시작되니 급 후회되었다. 아침 9시에 카드를 대고 출석해야 하고, 1시 10분에 퇴실 카드를 찍어야 한다. 지각도 결석도 모두 체크되고 시험도 본다. 이럴 줄 알았다면 하지 않았을 것이다. 수업이 끝나고 정리한 후에 공방에 오면 2시가 다 된다. 점심은 늘 오후 2시 넘어서 대충 먹는다. 배우시는 분들 여덟 분이 모두 수준급이시고 화장실도 안 가시고 열심히 하신다. 덩달아 나도 열심히 한다. 벌써 치마 하나, 상의 하나 마쳤다. 이제 철릭 원피스 작업 중이다.
"선생님, 사람 쉽게 안 변해요."
바쁘고 에너지 넘치게 사는 모습은 변하지 않을 거라면서 미리 직장을 내려놓는 것에 용기를 주셨던 지인의 말씀이다. 그때 그 말씀이 고마웠다. 풀 죽어 살까 봐서다. 그러나 이건 해도 너무 심하게 돌아가고 있다. 자업자득이다.
글을 쓰고 있는데 어떤 분이 막 대문을 열려고 하신다.
왜 그러세요?
여기는 아무나 들어가면 안 되나요? (문이 닫혀 있는 거 안 보이시나.....)
네~ 수강생만 들어오는 곳이고요, 오늘은 수강이 없고 제가 지금 쉬는 중이라서요.(사실 오늘 몇 시간 동안 정원관리에 땀을 너무 쏟아서 그림 그리면서 대낮에 맥주를 들이켜고 있었다. 밖이 환해서 안이 보이지 않아 다행이다.)
그럼 이따 와서 구경 좀 하면 안 되나요? 정원이 너무 예뻐서요.
네~ 죄송해요. (분명히 오늘 제가 쉬는 중이라고 말씀드렸건만........)
...:::
거절은 늘 마음을 다소 불편하게 한다.
우리 정원은 주변에서 예쁜 편에 속한다. 일단 담이 낮으니 구경을 맘껏 할 수 있다. 그럼에도 꼭 들어오셔서 보시고 싶어 하시는 분들도 많다. 그러나 대문을 한 후에는 문을 열고 무작정 들어오는 이는 드물다. 간혹 그런 분들이 있기는 하다. 꽃이 예쁘면 꼭 만져보고 싶고, 심지어 꺾어야 직성이 풀리는 분들도 있으시다. 멀리서 보는 인내가 필요한데 말이다. 나는 어떤 부류인가?
수강할 의사가 있을 때, 전화번호가 있는 경우 전화로 문의를 하거나 그렇지 않은 경우엔 참고 멀리서 본다. 그리보면 성격은 급하지만 예의는 지키는 타입이다.
그나저나 나는 참으로 바보다. 전화번호를 잘못 적어 놓고 두 달이 지났다. 최근에야 전화번호가 잘못 적힌 것을 알고 수정했다.(010-2791-1304 뉘시든 문자로 남겨주세요.) 개인 전화가 아니라 공방 대표전화라서 전화번호 외우는데 시간 걸렸다. 허당이다.
오늘은 날이 이상하다. 내가 잔디까지 깎으니 집이 더 예뻐 보이는가 보다. 어떤 분이 대문에서 안타깝게 나를 부르신다.
저기요~~~. 문의할 것이 있어요.
수강 문의세요?
아니요. 집 짓는 것에 대해서 문의하려고 하는데요. 저희 집이 이 근방인데요. 잠시만 좀 함께 가서 봐 주시면 안 될까요?
네?????
그런데,,,,,,
결국 함께 가게 되었다. 리모델링을 의뢰받았다. 인테리어 작업은 늘 설레는 일이다. 아무래도 공방 게시판에 '인테리어 컨설팅'을 써 붙여야 할까 보다. 친구들이 권유했었던 일이기도 하다.
아니다. 아마 폭풍 후회할 것이다. 그래서 전화를 드렸다. 지출이 큰일이 될 것이니 잘 상의하시고 다시 이야기하자고 말씀드렸다. 우리 공방을 보시면 다들 주택 리모델링을 고려하신다. 그러나 정작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에 돌아서면 망설이다가 계획을 접으신다.
지난 일이지만 나에게는 커다란 일이 있었다.
열흘 전쯤에 서울에서 두 분이 내려오셨다. 실은 브런치 글을 읽고 브런치를 통해서 제안 메일을 받았었다. 드라마 장소 섭외 건이었다. 그냥 신경 쓰지 않고 답장을 보내지 않았더니 직접 오신 것이다. 넷플릭스 새 드라마 장소 섭외다. 듣고 깜짝 놀랐다. 내가 좋아하는 감독과 드라마 스타일이다. 너무 사랑스러운 여배우가 할머니와 함께 사는 집 설정이라고 한다. 집이 아름답다고 감탄을 연발하시면서 정원과 실내까지 찍어가셨다. 실내는 스튜디오에서 하신다면서도 예쁘다고 끝내 찍으셨다.
그런데...... 지금까지 소식이 없다. 다른 곳으로 장소 섭외가 되었나 보다.
그래서 무슨 드라마인지 밝히지는 않겠다. 브런치 글에 나온 집의 형태와 지금은 조금 다르기 때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단정한 집에서 조금 실용성 있는 공간을 두 개 만들었더니 외부 모양새가 덜 예뻐 보인다. 오셔서 보신 분들은 좋다고 하시지만 어쩐지 그런 생각이 들어서 섭외에서 탈락된 것인가 하는 생각에 실없이 유리 새시 한 것이 후회되었다.
에이, 그럼 또 어떠하리. 누가 오든 오지 않든 나는 나무, 꽃들을 기다리며 오늘도 진북동 '공간 모닝'을 부지런히 가꾸고 있다.
그리고......
오로지 하나, 후회하지 않는 것이 있다. 명퇴를 한 것이다. 직장 스트레스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