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질을 탐구하는 화가
오랜만에 가슴이 콩닥콩닥 뛰는 책을 만났다. 책 <세잔의 사과>는 폴 세잔의 그림에 대해 현대 사상가들의 다양한 시선을 담았다. 책을 선택할 때 저자의 약력을 보는 편이다. 책의 저자 전영백 님은 연세대학교 사회학과를 졸업하고 홍익대학교 미술사학과에서 석사과정을 영국에서 미술사학과 석박사 학위를 받았다. 현재 홍익대학교 예술학부와 미술사학과 대학원 교수로 재직 중이라고 한다.
이렇게 저자의 약력을 쓰게 된 연유는 현대 사상가들의 시각을 모아 펴 낸 글이 매우 경륜이 쌓인 교수의 논문을 접하는 느낌이기 때문이다. 어렵다고 포기하지 말고 첫 장을 펼치면 친절한 글이 시작된다. 전체적으로 쉽지 않은 책이지만 이해를 돕는 일화나 그림들이 예시되어 있어서 꽤 재밌게 읽었다.
영교과 대학원 수업 때 문학 비평 교수님이 떠오른다. 엄청난 분량의 에세이 과제로 매 시간 우리를 쥐어짜던 교수님이 원망스러웠지만 과제를 제출한 후 수업은 늘 즐거웠다. 나는 당시 문학비평 수업 중 자크 라캉이론에 가장 끌렸고 석사논문으로 라캉이론을 택했다.
'나 자신'은 타자의 눈(the eye)을 통한 응시(the gaze)에 맡겨진다는 점에서 라캉은 사회적 관계에 집중한다. 따라서 언어를 익히는 순간 거울 속 나는 상실, 결핍을 경험한다는 것이다. 상징적 세계에 편입된 나는 사회적 기호에 연연하게 된다. 우리는 관계에 익숙하지 못한 경우 대부분 스스로 질문한다. '대체 저 말이 무엇이지?'
너무 나에 빠져 산다면 라캉의 거울단계에 머무는 격이다. 반면 지나치게 상대의 응시에 의존하는 것은 그 응시가 '허상'이라는 것을 깨닫게 된 이후에 더욱 큰 결핍만 남는다. 나는 사회적 관계 속의 나 자신에 대해 고민했었고 라캉이론은 나에게 상당 부분 해답을 제시했다.
그렇다면 어떤 부분이 세잔과 라캉을 연결해 주는 것인가. 세잔의 그림에 대해 소설가 로렌스는 대상의 '클리셰'를 거부하고 '사과성'을 표현했다고 언급한다. '사과성'을 감지한다는 것은 대상을 포착할 때 그 내부까지도 관통하여 대상의 본질에 이르는 것이다. 따라서 로렌스가 지적한 세잔 그림의 사과성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대상을 꿰뚫어 그 감추어진 측면들을 볼 수 있는 미적인 눈이 요구된다고 할 수 있다.(279-281p요약)
일반인의 눈에 세잔의 사과는 전혀 먹음직하게 잘 그린 것이 아니다. 세잔은 사과를 그릴 때 한 방향에서 바라보지 않았다고 한다. 그래서 세잔 그림의 사과는 시각이 다양하다. 테이블을 돌면서 한 방향에서만 보면 보이지 않는 사과나 그림자가 져서 보이지 않는 사과까지 그렸다고 한다. 세잔은 사람의 눈을 의심했고 그 너머의 본질을 이해하고자 노력했다. 세잔은 인물화를 그릴 때도 사과같이 가만히 앉아있을 것을 요구했다고 한다. 세잔에게 사람이라는 대상은 사과나 매한가지였던 것이라 여겨진다.
세잔은 색채의 중요성을 강조했다고 하는데 인상파 화가들이 좋아할 만한 점이 있었다. 색채란 빛과의 작용이다. 시시각각 빛은 달라지고 그에 따라 나의 눈은 대상에 대해 계속 다른 느낌을 지니게 된다. 그런데 그 대상은 바뀌는 것이 없다. 그냥 '사과'는 그대로 '사과'다. 맛있는 사과, 썩은 듯한 사과, 파란 사과, 빨간 사과는 모두 내 눈의 클리셰에 의해 만들어지는 이미지인 것이다. 예를 들면 정육점의 불빛이 붉은 색인 것도 우리 눈을 속여 더 신선하게 보이게 하기 위함이다.
책 <세잔의 사과> 중 인물화에 대한 라캉이론 부분을 조금 살펴보기로 한다.
세잔은 그의 자화상에서 자신을 거울에 보이는 대로 그리지 않았다. 세잔의 자화상은 낯선 모습의 자신을 구현하는 시각적 구조(세잔의 사과 343p)이며 의식적으로 거울이미지에서 빗나간 자화상(344p)이다. 응시와 눈과의 분리는 라캉이 설명하는 지각의 핵심이다.(344p)
라캉은 "내가 인지할 때, 나는 나 자신을 응시하의 그림으로 만든다. 나는 보인다. 나는 그림이다." 이는 주체가 곧 대상이라는 뜻이다.(345p)
한마디로 세잔의 자화상은 일반인이 보기에 구도가 완벽하지 않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것은 세잔이 의도한 것이다. 거울의 반영이미지와 그림의 표상이미지 사이의 거리를 최대한 멀게 한 것이 세잔의 의도다.( 336p)
자화상에 대한 내용을 축약하니 오히려 더욱 어렵게 느껴질 듯하다. 조금 쉽게 내 방식으로 설명해 보기로 한다. 세잔이 자기 모습을 거울에 보이는 대로 그리지 않았다는 것은 거울 속 자신을 철저히 타자로, 객관적인 하나의 사물로 여기고 그림을 그린 것이라 생각된다.
인상파들이 계속해서 변하는 빛의 움직임을 쫓으며 순간을 그려냈다면 세잔은 더 나아가 물체가 가진 본질을 탐구했다.
세잔의 사과가 유명한 이유는 자화상에서 보여준 그의 생각이 사과그림에 그대로 나타났기 때문이다. 세잔은 사과를 그릴 때 원근법이란 것을 고려하지 않았다. 테이블 위의 사과를 여러 시선으로 관찰하고 그렸다. 이곳에서 봐도 사과요, 저쪽에서 봐도 사과다. 사과의 본질은 변하지 않는다.
세잔은 세상이 뭐라 하든 끝까지 탐구하며 실험적 정신으로 그림을 그렸다. 그의 그림은 피카소와 마티스에게 영향을 주었다.
만약 나의 의지가 조금 나약해진다거나 슬럼프에 빠진다면 어떤가. 빈센트 반 고흐를 지지해 준 동생 테오처럼 누군가 자신을 지지해 줄 이가 세상에 한 명은 있을 것이다. 아무도 의지할 이가 없으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사람은 의외로 강하다. ‘이가 없으면 잇몸으로 먹는다’는 말이 있다. 세상을 혼자 힘으로 이겨내야 한다면 스스로 훨씬 강해지는 것 같다.
내가 좋아하는 일 중에는 그림 그리기가 있다. 몇 시간 앉아 있어도 시간이 아주 잘 간다. 나는 잘 그린 그림보다 좋은 그림에 더 정감이 간다. 물론 좋다는 것도 각자 개인의 취향이 있다. 이 이야기를 하자면 또 길어지니 좋은 그림이 뭔지는 다음으로 넘기기로 한다. 본다는 것을 너머 타인의 '응시'에 정신이 팔리지 않으려면, 가끔 나 자신으로 돌아가는 시간인 그림 그리기나 정원 가꾸기 등을 하면 좋다. 그리고 루소의 책 <에밀> 중 한 글귀에 깊이 공감한다.
재능으로는 열성의 부족을 채우기 어렵지만
열성으로는 재능의 부족을 채울 수 있다.
(루소의 에밀 중에서)
<루씨의 인스타그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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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잔의 사과> 전영백지음/한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