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남과 헤어짐
직장 졸업 인생 2막 시작이라고 딸이 그랬다. 눈물은 보이지 않으리라 마음먹었다. 주차장에서 나를 반기는 젊은 선생님을 만났다. 웃으며 인사했다. 그때 저쪽에서 비슷한 연배의 동료가 다가왔다. 덜컥 눈물이 났다.
동료 선생님들을 위한 선물을 딸이 준비했다. 메모는 내가 썼다. 한 학교에서 33년 교직생활이 끝났다. 33년이란 단어에서 또 눈물이 났다.
딸이 그린 그림에 맞춤 케이크를 놓고 동료들이 퇴직 축하 노래를 불러줬다. 웃으며 나를 보낸다. 멀리 가는 것이 아니니 나 역시 웃어야 마땅하다. 또 눈물이 났다.
딸들의 꽃바구니와 케이크 그리고 많은 동료 교사들의 격려 봉투들을 들고 공방에 왔다.
천천히 그들의 편지와 돈봉투를 열었다. 모두 감사했다. 마지막으로 큰딸이 보낸 편지를 읽는데 휴지를 계속 뽑아야 했다.
사립학교에 간 처음 몇 해까지 여교사는 결혼하면 학교를 그만두어야 하는 상황이었다. 전교조의 도움과 여선생님들의 단합으로 일이 잘 마무리되었다.
그러나 육아휴가를 사용할 수 없었다. 학기에 맞춰 무조건 학교를 한 학기 쉬어야 했다. 임신은 관리자들에게는 결코 반가운 일이 아니었다. 국공립 사대를 나왔지만 한때 발령이 적체되었다. 바로 그 시점에 사립에 들어간 것을 후회했다. 사립 발령을 받자마자 친구들이 모두 공립에 발령을 받았으니 말이다. 취업을 준비하는 친구들에게 늘 하는 말이다.
인생 알 수 없어요. 지금 힘들지만 곧 순식간에 해결되기도 하거든요. 힘내세요.
몇 년 전 일이다. 옆에 앉았던 기간제 선생님은 학교에서 재 임용을 해 주지 않았다. 다른 선생님이 그 자리에 오시게 되었다. 사립에서는 기간제 선생님 자리도 찾기 힘든 판국이었다. 그녀는 이를 악물고 임용 시험공부를 하여 그다음 해 공립에 발령을 받았다.
나는 졸업과 동시에 지금까지 교직생활을 했다. 이제 교정을 떠나는데 학교의 벚꽃과 살구나무가 영원히 그리울 듯하다. 운동장의 민들레들이 그리울 듯하다. 그곳을 동료 교사들과 때로는 학생들과 거닐었다. 우리의 현재와 미래를 함께 고민하기도 하고 아픈 속내를 터 놓기도 했다.
취업해서 직장에 다니는 딸은 입버릇처럼 말한다.
엄마는 어떻게 직장에 그렇게 오래 다녔어요
딸의 편지는 나의 33년을 이야기해 준다. 고마운 딸. 따뜻한 딸. 마음이 아름다운 나의 딸들이 건강하게 이만큼 자라줘서 너무나 감사하다.
딸의 말처럼 인생은 이제 시작이라고 생각하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