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가진 계획
누군가 내 글이 날것의 즐거움을 준단다. 부끄럽지만 글 쓰는 사람으로 참 듣기 좋은 말이다.
오늘의 날것은 무엇 인고하면 바로 문제적 이웃과 남편이야기다. 실은 내 이야기다.
몇 달 만에 지난 일요일에 수영장에 갔다. 옷을 입다 거울에 비친 나를 보고 내가 기절할 뻔했다. 근래에 체중을 재지도 않고 살았을 뿐 아니라 내추럴 스타일 룩을 착용하다 보니 몸에 살이 붙는지 몰랐다.
아니다. 지난달 친구 집에 놀러 갔는데 거기에서 만난 친구의 친구가 나의 친구에게 아무래도 루씨가 살이 좀 찐 것 같다고 말했다고 전해줬다. 그때도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더운 여름날 책방의 정원을 가꾸다 보면 땀을 한 바가지 흘린다. 운동 한 셈 치부하고 저녁에 시원한 맥주를 매일 한 캔 씩 먹었다. 그리 많이 마시지는 않았다. 밤늦은 시간에 마신 탓으로 얼굴이 부었나 보다 생각했다. 나이가 들면 얼굴은 조금 부어도 좋다. 남들은 얼굴을 부풀리려고 무엇인가 넣는 시술을 한다는데 말이다.
여름날 남들은 밥맛이 없다는데 나는 뭐가 다 맛있다.
하지만 슬프게도 수영장에서 본 나의 모습에 놀라서 다급하게 금주와 다이어트 결정을 내렸다.
그렇게 지난 일주일 동안 맥주가 그리워도 잘 참았다. 저녁엔 ‘냉수 먹고 속 차려야지’ 하고 냉수를 벌컥벌컥 마셨다. 점점 기분이 좋아졌다. 심리적으로 배도 살짝 들어간 느낌이었다. 저녁은 특히 조금 먹었으며 저녁 식사 후 매일 수영장에 다녔다.
조금 날씬해져서 예쁜 옷을 입고 싶은 계획이 잘 될 것만 같았다.
그러나 오늘 모든 것이 망가졌다.
막걸리 1차
진북동 책방 이웃께서 무려 세 장의 야채 전과 방금 쪄서 따끈한 옥수수를 가져오셨다. 찐 옥수수와 전이 나에게는 막걸리 안주로 보였다. 마침 비가 내렸고 마침, 전이 있으며 함께할 이웃이 있으니 막걸리를 마시지 않을 수 없다.
일전에 사 둔 호리병에 막걸리를 담았다. 내가 만든 도자기 그릇에 따라 마시니 더 맛있는 느낌이다. 두 잔 마시니 스르륵 취기가 돌았다.
이후로 몇 시간을 물을 계속 마시면서 수다를 떨어 멀쩡해졌다.
막걸리 2차
저녁 7시에 집에서 식사를 하는데 비가 내린다고 남편이 오징어 파전을 했다. 솔직히 이번엔 파전도 안 먹고 막걸리는 더욱더 마시지 않으려 했다. 하지만 어쩔 수 없는 이끌림의 젓가락질과 더불어 냉장고의 석탄주를 꺼내 와인잔에 따랐다. 양심적으로 막걸리에 물을 탔다. 석탄주의 맛과 향은 반감되었지만 건강은 업 되었겠지 싶었다.
이리하여 오늘 나의 다이어트와 금주의 결심은 산산조각이 났다. 하지만 좋은 이웃과의 따뜻한 대화와 가족과의 맛있는 식사가 슬픈 내 마음의 빈자리를 채웠다.
그래서 또 계속 이렇게 살 것인지 궁금하다면?
내일부터 다시 금주와 다이어트를 시작할 것이며 수영도 다니려고 한다.
매일 계획을 세우는 사람이 무계획인 사람보다 훨씬 나은 걸까? 나는 항상 이 생각을 한다. 이유는 나 자신의 변명 때문이다.
그래도 또 하루 계획해 보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