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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달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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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루씨Luce Dec 01. 2020

누가 알겠는가, 어쩌면 인생은

고양이를 좋아하게 될 줄은 몰랐다

 '누가 알겠어?'라는 우리말을 영어로 하면 'Who knows'가 되겠다. 이 단문은 매우 철학적 의미를 내포한다.


1. 진실을 왜곡하려 할 때, 또는 루머에 대해 수군거릴 때 사용하는 언어 - 오직 본인만이 진실을 알 것이라는 의미
2. 겪어 보지 않은 이상 우리 미래는 아무도 모른다 - 오직 신만이 우리의 미래를 아시리라는 운명적 의미
3. 알 수 없는 미래에 나의 현재의 가치관과 다른 행동을 하고 있을지 모른다 - 처해진 상황에 따라 가치관이 변화될 수 있다는 의미


위의 모든 의미들을 하나의 문장으로 압축하여 보면, 진실은 본인들만 알 것이며 우리는 현재 벌어지는 일들에 대해서 상당히 확신에 차 있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바뀔 수 있다는 것이다. 


밥에 넣은 검은콩을 빼냈던 내가 건강에 좋다 하니 일부러 넣어 먹고 있다든지, 할머니에게 혼이 나서 새알심을 더 뺐던 어린아이가 이제 새알심을 잘 먹게 되었다는 아주 단순한 요리와 관련된 일만 해도 그렇다. 가장 놀라운 사건은 반려동물 혐오자에서 사랑스러워 미칠 지경이 되었다는 점이다. 인생은 알 수가 없다.

우리 달프, 성은 간이요 이름은 달프. 간달프. 딸의 그림이다.

그밖에 대학시절에는 현모양처가 꿈이었지만 지금은 열심히 일하는 직장인이며, 지난 어린 날 마음 아프게 사랑했던 사람은 지나고 보니 헤어진 것이 아주 잘했다는 생각이 드는 것들은 모두 인생을 살아보지 않고는 알 수 없는 이야기다.


 '흐르는 강물처럼'이라는 표현을 이제 내가 좋아하게 되었다는 것은 기를 쓰고 안 되는 일도 되게 하려 했던 지난날들을 지우고 조금은 넉넉한 마음으로 삶을 관조하게 되었다는 의미다.


그런데 젊으면 그것이 잘 되지 않는다. '철물점에서 우유를 찾지 말라'라고 그렇게 충고를 해도 철물점으로 우유를 사러 가는 것이 젊음인 듯하다. 그런가 하면 내가 지속적으로 좋아하는 단어가 있다.


도전하다, Try


'흐르는 강물처럼' 살되 한 번씩 고개를 들어 주변을 살피고, 물살을 가르는 도전을 즐긴다. 나에게 매일 뭘 그렇게 쓰냐고 한다. 옷 만들기 바느질한다고 했다가, 그림 그린다고 했다가 이거 했다 저거 했다 한 가지를 지속적으로 하는 게 없다고 나의 인생을 한마디로 단정 지어 말하는 친구가 있다.


네가 알아? 내 마음은 나만 알지. 나는 계속 방황 중이라서 그런 거야

나이가 오십 넘어서도 방황을 한다는 내 말이 어이없게 들릴 것 같아 부연 설명을 했다. <아직도 나에게 딱 맞는 일이 무엇인가 찾지 못해서 끝없이 찾기를 포기하지 않는 것이다. 나의 모든 작업은 내 관점에서는 일관성이 있다. 나는 미래에 언젠가 현재 직장을 그만두었을 때를 대비해서 노력하고 있다. 미래는 알 수 없는 것이지만 준비하는 것은 좋은 것 아니냐>는 등의 이야기를 조리 있게 했더니, 그만 친구는 수긍을 하고 만다. 요즘 글을 쓰니까 언변도 느는 것 같다.


내 성격이 강아지 캐릭터라고 하지만 이상적으로는 고양이 캐릭터를 좋아한다. 나의 별자리(star sign)는 궁수자리다. 반인반마, 아래는 말 위는 사람의 형상을 하고 항상 활시위를 당기고 있는 캐릭터다. 이런 성향 때문인가. 흐르는 강물을 거스르면서 한 번씩 먹이를 찾아 두리번거리며 낚아채기를 시도한다. 유니콘처럼 날 수도 없다. 몸을 지구에 안착하고 머릿속은 이상향을 그리면서 도전을 즐기는 타입이다.


중요한 문장을 빠뜨릴뻔했다. 위에서 언급했듯, 이제 활시위를 조금 내려놓고 흐르는 강물에 몸을 맡기는 여유를 즐길 줄도 안다.


넓은 마당이 있는 집에서 언젠가 고양이와 지낼지, 강아지를 키울지 아니면 지금처럼 딸아이의 고양이 사진만으로 즐거워할지 미래는 알 수 없다.


왼쪽의 잔뜩 겁먹은 달프. 오른쪽은 누나? 이제 어른이 된 달프. 이때는 아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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