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이를 좋아하게 될 줄은 몰랐다
1. 진실을 왜곡하려 할 때, 또는 루머에 대해 수군거릴 때 사용하는 언어 - 오직 본인만이 진실을 알 것이라는 의미
2. 겪어 보지 않은 이상 우리 미래는 아무도 모른다 - 오직 신만이 우리의 미래를 아시리라는 운명적 의미
3. 알 수 없는 미래에 나의 현재의 가치관과 다른 행동을 하고 있을지 모른다 - 처해진 상황에 따라 가치관이 변화될 수 있다는 의미
밥에 넣은 검은콩을 빼냈던 내가 건강에 좋다 하니 일부러 넣어 먹고 있다든지, 할머니에게 혼이 나서 새알심을 더 뺐던 어린아이가 이제 새알심을 잘 먹게 되었다는 아주 단순한 요리와 관련된 일만 해도 그렇다. 가장 놀라운 사건은 반려동물 혐오자에서 사랑스러워 미칠 지경이 되었다는 점이다. 인생은 알 수가 없다.
그밖에 대학시절에는 현모양처가 꿈이었지만 지금은 열심히 일하는 직장인이며, 지난 어린 날 마음 아프게 사랑했던 사람은 지나고 보니 헤어진 것이 아주 잘했다는 생각이 드는 것들은 모두 인생을 살아보지 않고는 알 수 없는 이야기다.
'흐르는 강물처럼'이라는 표현을 이제 내가 좋아하게 되었다는 것은 기를 쓰고 안 되는 일도 되게 하려 했던 지난날들을 지우고 조금은 넉넉한 마음으로 삶을 관조하게 되었다는 의미다.
그런데 젊으면 그것이 잘 되지 않는다. '철물점에서 우유를 찾지 말라'라고 그렇게 충고를 해도 철물점으로 우유를 사러 가는 것이 젊음인 듯하다. 그런가 하면 내가 지속적으로 좋아하는 단어가 있다.
도전하다, Try
'흐르는 강물처럼' 살되 한 번씩 고개를 들어 주변을 살피고, 물살을 가르는 도전을 즐긴다. 나에게 매일 뭘 그렇게 쓰냐고 한다. 옷 만들기 바느질한다고 했다가, 그림 그린다고 했다가 이거 했다 저거 했다 한 가지를 지속적으로 하는 게 없다고 나의 인생을 한마디로 단정 지어 말하는 친구가 있다.
네가 알아? 내 마음은 나만 알지. 나는 계속 방황 중이라서 그런 거야
나이가 오십 넘어서도 방황을 한다는 내 말이 어이없게 들릴 것 같아 부연 설명을 했다. <아직도 나에게 딱 맞는 일이 무엇인가 찾지 못해서 끝없이 찾기를 포기하지 않는 것이다. 나의 모든 작업은 내 관점에서는 일관성이 있다. 나는 미래에 언젠가 현재 직장을 그만두었을 때를 대비해서 노력하고 있다. 미래는 알 수 없는 것이지만 준비하는 것은 좋은 것 아니냐>는 등의 이야기를 조리 있게 했더니, 그만 친구는 수긍을 하고 만다. 요즘 글을 쓰니까 언변도 느는 것 같다.
내 성격이 강아지 캐릭터라고 하지만 이상적으로는 고양이 캐릭터를 좋아한다. 나의 별자리(star sign)는 궁수자리다. 반인반마, 아래는 말 위는 사람의 형상을 하고 항상 활시위를 당기고 있는 캐릭터다. 이런 성향 때문인가. 흐르는 강물을 거스르면서 한 번씩 먹이를 찾아 두리번거리며 낚아채기를 시도한다. 유니콘처럼 날 수도 없다. 몸을 지구에 안착하고 머릿속은 이상향을 그리면서 도전을 즐기는 타입이다.
중요한 문장을 빠뜨릴뻔했다. 위에서 언급했듯, 이제 활시위를 조금 내려놓고 흐르는 강물에 몸을 맡기는 여유를 즐길 줄도 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