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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루씨Luce Dec 02. 2020

수능시험 D-1

지난 몇 년간 수능 시험일 즈음에 벌어진 일들

2020년 수능일 :[2020.11.19일(목)에서 코로나 19 대란으로 인해 2주 미룬 2020.12.3(목), 바로 내일 실시 예정]


이제 몇 시간 후면 수능일이다. 마치 전시 상황과 같이 준비하고, 감독관 회의를 두 차례 했다. 올 해는 시험실에 투입되지 않아서 안심했더니만, 더욱 중요한 임무를 맡게 되어 빨리 잠자리에 들어야 한다.


전례 없는 마스크 수능 시험이다. 방역 담당관이 된 내가 해야 할 업무를 숙지했다. 300여 명 정도 학생들의 열 체크 및 소독 체크를 일일이 해야 하므로, 아침 6시까지 도착해야 한다. 집에서 5:40분에 나가야겠다.


열이 높은 학생이 없기만을 간절히 기도한다. 만약 한 명이라도 열 환자가 발생하면 나는 방역복을 입고 학생을 특별실로 동반해야 한다. 열이 있는 학생들은 따로 마련된 공간에서 시험을 치르게 된다. 열이 없고 기침만 심한 경우에도 이번에는 따로 시험을 치를 수 있게 한다. 예비 시험실 감독관들까지 배치된 이번 시험은 거의 대다수의 교사가 총동원된, 역대 최대 감독관 숫자로 시험을 치르게 될 것 같다.


매 해 수능 시험 장소가 되어 우리 학교 교사와 학생들은 총체적으로 힘을 모아 고사장 준비에 차질이 없도록 노력을 기울인다. 바닥의 수평이 맞지 않아 행여 삐거덕 거릴까 봐서 일일이 책상을 흔들어본 후, 의자 다리 밑이나 책상다리를 두꺼운 종이로 괴어서 고정시키는 작은 배려까지 촉각을 곤두세우게 된다. 이렇게 30년 가까이해 왔다. 그런 가운데 수능제도는 그다지 달라진 것 같지 않다.

올 해는 고사장에는 안전칸막이가 일일이 설치되었다. 옆으로는 간격을 띄어 앉고 앞뒤로는 칸막이 설치를 했다.


결시생 처리에 대해서도 잘 알아야 한다.


이번에는 수시 최저가 없는 대학이 지난해보다 많아졌다고 한다. 수시에 합격한 학생이 최저 등급이 필요 없으면, 수능 시험을 치르지 않아도 된다. 올해 결시생은 당연히 많으리라 생각하지만 내일 봐야 정확히 알게 된다. 그런데 이미 수시에 합격했고, 최저등급도 필요 없는 아이들 중에는 수능 응시표가 있으면 이것저것 할인이 되기 때문에 그냥 시험 삼아 시험을 보는 경우도 몇 년 전부터 왕왕 있다. 우리나라의 수능 시험은 한번 치러봐야 두고두고 이야기에 공감을 하게 될 것이니, 그들 심정도 이해가 간다.


시험실에서 감독하는 경우 숙지사항은 더욱 많다. 알아야 할 내용이 어마어마하다. 예습과 복습이 필요하고 감독관 유의사항을 인쇄물에 빼곡히 기록하여 공부해야 한다.

핸드폰 및 기기 수거 철저, 구두 소리 내지 말기, 왔다 갔다 하지 않기, 시험지 일시에 모두 걷기, 부정행위 일어나기 전 미연에 방지하기, 한국사 시험을 치르지 않으면 수능 시험은 무효이므로 학생에게 주지 시키기, 결시생 처리방법, 4교시 시험 실시 방법 주의. 몇 해 전 지진이 일어난 이후는 지진대피 행동요령 지침 서를 소지하고 유사시 안내받기, 영어 시험 시 방송사고 주의 등등....... 몇십 년을 하다 보니 저절로 익히게 된 내용이지만 항시 긴장하게 되며, 새롭다.


신설된 내용은 코로나 상황 감독관 방역지침이다. 오늘 두 번 이 관계로 회의를 했다.


올해, 처음으로 수능 시험실에 감독관 의자를 넣어준다고 한다. 항시 로봇처럼 1시간이 120분 또는 140분이 되는데,  각 감독교사에게 할당된 3시간 거의 온종일을 꼼짝 않고 숨소리 죽인 채, 서 있어야 한다. 수능 감독관에게 감독 관비가 지급된다. 그러나 모두 피하고 싶어 한다. 온 책임을 지고 종일 긴장모드로 있어야 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우리 학교는 항상 수능 시험장이기에 환자가 아닌 이상 빠질 수가 없다. 나는 지난해는 고3 담임이라서 새벽에 아이들 현장 응원을 갔다. 몇 년 만에 처음으로 감독에서 제외되어 아이들 시험장에 들어가는 모습을 보며 어깨를 다독이기도 하고, 포옹을 해 주기도 하고 파이팅을 외쳐보기도 했다.


내일 부디 학생들이 시험을 무사히 치르기를 고대한다. 교사들이 힘들다지만 수험생만 하겠는가. 모든 수험생들에게 파이팅을 외친다.


그리고 지난해 우리 반, 한 해 더 공부한 두 아이에게 마음으로 기도하며 응원한다.


애들아~, 시험 잘 보렴



2019년 수능일 [ 2019.11.14. 실시함 ]                                         

수능 시험 전야 2019. 11. 14. 0:53


깊은 가을이다. 내일은 추워진단다. 대입 수능 시험인데...

고 3 담임 한 해가 휘리릭 지나갔다.

일생에 하루 시험으로 자신의 미래가 딱 정해진다.

물론, 수시가 있기는 하지만 그래도 상당수의 학생들은 여전히 수능 시험이 중요하다.

최저를 맞춰야 하거나 또는 정시로 가기 때문이다.

학생들 모두 원하는 곳에 쏙 들어가기를 기도한다.


이것도 모순이다. 모두 원하는 곳에 간다면 원하는 학과만 몽땅 학생을 뽑아야 가능하니까.

몇 년 동안 정말 열심히 한 학생들은 그 성과가 이루어지기를 기도한다. 수험생 파이팅!!   


2018년 수능일 [ 2018.11.15 실시]


2018. 12. 20. 20:24  강릉 펜션 사고를 접하며(수능 이후 학생들의 학교생활에 관한 생각)


강릉 펜션 사고와 관련된 뉴스를 접하니 참으로 안타깝고 슬프다.

무엇보다 꿈같은 나이에 세상을 떠나게 된 학생들에게 깊은 애도를 보낸다. 무엇보다 참사를 당한 부모들의 심정을 그 누가 알겠는가. 자식이 있는 입장에서 그 심정을 차마 헤아리기 어렵다. 아픔과 애절함 그리고 고통이 느껴진다.

또한 그들의 담임 선생님 역시 마음이 아프고, 상처는 오래오래 지속될 것이다. 같이 있다 살아남은 친구들의 마음은 또 어떻겠는가. 평생 지울 수 없는 고통이 될 것이다.

항상 이런 일이 일어나면 교육부는 매우 즉흥적인 지침을 내린다.

일례로 이번에는 당장 다가오는 방학 기간 중 체험학습을 가는 학생들의 행선지와 부모 동반 여부 등을 낱낱이 보고 하라고 한다. 교육부에서 하는 일이고, 행선지를 파악해 두라는 것은 추후 지도가 필요하기 때문에 충분히 동의한다. 그렇지만 이번 사건을 놓고 잘못된 방향의 보도를 하는 것에는 동의하지 않는다.

사실, 학생들은 방학기간 동안에는 여행의 목적지에 대행 서면 보고를 담임 선님이나 학교 측에 하지 않았다. 그런데 이제는 어디를 가려면 반드시 보고를 하라는 지침이다. 방학기간 동안에 외국에 가게 될 경우 교사들은 반드시, 당연히 결재를 해야 한다. 사전 보고의 의무가 있다. 하지만 학생들의 경우 이번 보고 조치는 조금 답답한 즉흥적인 지침이자, 그야말로 형식적인 일이 아닌지 생각된다. 이번 사건 이후 많은 보도에서는 학부모가 동반하지 않았다는 점을 이슈화하고 있다. 학교는 제대로 사전에 알았는지도 묻고 있다. 이번 사건을 바라보는 내 의견을 몇 자 적어본다.


첫째, 방학 기간 동안 학생은 가족의 보호하에 놓이게 된다. 방학기간은 학생들과 학부모의 가정교육기간으로 자율적으로 운영되어 왔다. 방학 중에 가족 여행이 즉흥적으로 이뤄지면 그건 어찌하라는 것인가. 가정에서 자율적으로 행동하는 방학 기간에는 이런 일들을 담임 선생님이나 학교에 알리기 꺼리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둘째, 학기 중에는 당연히 가족 동반 체험 시 보호자 동의서를 사전에 받으며, 보고서에 나와 있는 체험지를 갔다고 증명할 서류나 사진 항공권 티켓 등을 반드시 사후에 제출하도록 되어 있다. 그리고 부모님과 전화 통화로 다시 확인까지 한다. 새삼스럽게 학기 중 체험 학습에 대해 학교 책임이라고 따질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이번 사건의 부모님들께서도 담임 선생님에게 책임을 묻지 않기를 원했다고 들었다. 만약에 학기 중에 학생이 결석을 하면, 전화를 계속하고 부모님과 연락을 취한다. 그리고 중요한 사항은 학기 중 서류를 제출하지 않고 학교 밖의 다른 곳에 갔다면 무단결석 처리된다.

이번 사건과는 별개로 학기 중 가족 체험학습에 대한 사항도 일부 문제가 있다고 여긴다. 학기 중에 번연히 학교의 교육과정이 있는데, 가족 체험으로 해외여행이나 어떤 여행을 간다는 자체가 다시 생각해봐야 할 일이 아닌지 생각된다. 그것을 인정 결석으로 함으로써 오히려 학업에 방해 원인이 되기도 한다.

현재는 가족동반 효도 체험 및 가족 모임에 가게 되면 인정 결석 처리된다. 그런데 고등학교 교육과정에서 공부하는 학생이 방학이 아닌 기간에 여행을, 체험을 다녀오면 수행평가(과정 평가이므로 수업 중 수시 평가함)와 여러 수업과정을 따라잡기 힘들다. 나의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우리나라는 방학이 있으니 방학을 이용해 가면 좋을 것 같다.

셋째는 가장 중요하게 짚고 넘어가고 싶은 사항이다.
이번 사건에서 가장 문제가 된 것은 배관이었다. 노후된 배관, 잘못된 공사 등으로 산소공급이 문제였다면, 만일 보호자가 있었다 가정해도 인솔했던 보호자 역시 사건에 속수무책이었을 것이다. 보호자도 아마 변을 당할 수 있었던 것이다. 즉, 학생들이 보호자와 갔는지 학교 당국은 뭘 했는지 등이 사고의 관건이 아니라는 것이다.

이번 사건은 누군가가 거기 그곳에 있었다 해도 같은 일을 당했을 것이다. 관리 감독을 해야 할 곳들에서 제대로 관리 감독을 하지 못했고 그것 역시 법적인 문제와 관련되어 있다고 뉴스를 접했다. 학생들이 거기 그곳에 있었기에 그런 변을 당한 것이다.

마지막으로, 수능 이후 학생들의 관리 문제이다. 여러 면에서 정말 많이 생각해 봐야 한다.
수능 시험을 보기 전에도 문제가 많다. 이미 대입에 합격한 학생들의 학교생활은 어렵고, 그와 관련되어 나머지 학생들은 가장 중요한 시기에 어수선한 상황에 놓이게 될 여지가 많다.  그리고 수능을 본 후의 모든 학생들의 학교 생활 등은 대입 제도와 관련된 현재 상황으로서는 어려운 우리 모두의 과제라고 본다. 강제적으로 학교에 나오라고 하기에는 모든 여건이 필요 충분한지 생각할 일이다. 학생들을 학교에 붙잡아 두기에는 여러 면에서 어렵다는 것이다. [실제로 고3 담임을 해 보면, 그렇게 천사 같던 아이들이 수시 합격 이후 어떻게 돌변하는지 알 수 있다. 이미 합격해서 무단결석 처리가 된다 해도, 대학에서 반영을 하지 않을뿐더러 담임 의견이 중요한 시기는 지났다는 것을 학생들은 잘 안다. 수시 합격 이후 학생들에게 담임들은 아침마다 전화통을 붙잡고 있어야 한다. 어서 학교에 좀 오라고.]

모두가 머리를 맞대고 즉흥적이 아닌 현실적이고 합리적이며 현명한 대안을 고심해야 할 것이다.                                                           


2017년 수능일 [원래 11.16일에서 연기하여 11월 23일 실시]


지진 그리고 수능 연기  2017.11.17.


수능 연기로 인해 온 나라가 들썩인다.


가장 힘든 포항 시민들에게 위로의 마음을 갖는다.
가장 힘든 수험생의 시간을 가지게 된 모든 수험생들에게 격려의 마음을 갖는다.

고3 학생들은 책도 다 버린 학생들도 많다는데, 다시 주우러 다니고 기숙사는 방 비우라 해서 비웠다는데, 거기도 난리다. 잘 정비했던 고사장은 다시 원 위치되었다. 감독관 회의도 다시 해야 하는지 모르겠다. 고사장을 알게 된 학생들의 경우 부정행위가 있을 수 있기에 수험번호 교부도 다시 해야 할지 모른다.

출제위원들은 일주일 더 갇혀있어야 하고, 수능 시험 직후 서울권에서 면접 및 논술고사로 스케줄 되어 있던 숙박도 모두 연기해야 한다. 수능 후 해외여행 모두 취소 및 연기되고 있다.

온 나라가 어렵다.

그래도 수능을 연기한 것은 잘한 일이다. 이제 사후 수습을 잘해서 다음 주에는 무사히 수능을 치르면 좋겠다.

그런데 왜 우리나라는 12년 고생을 단 한번 시험으로 평가하는지 참말 싫다. 인공지능 시대에 돌입한 지금도 교육은 그대로인 현실이 참 싫다. 조금씩 조금씩 변화가 필요하다.


2009년 수능일[11월 12일]


대입 수능과 신종플루 [대입 수능 하루 전 ,  2009년 11월 11일]


수능 전날... 새벽.

기숙사에서 있는 큰 딸로부터 잠이 오지 않는다고 진동 문자가 왔다. 새벽 두시반.

잠을 자고 있었지만 그 작은 진동소리에도 벌떡 일어나 지는 걸 보면 내가 엄마라는 것이 실감 난다. 온 촉각을 내일 시험을 치를 딸에게 두고 있었다.

종일 시험을 봐야 하는데 두 시간 동안이나 누워 있어도 잠이 오지 않는다니... 어떡하면 좋을지 모르겠다. 멀리 있다는 것이 정말이지 종종 힘들다.

집에서 자고 가면 어떻겠냐고 했더니 끝내 기숙사에서 잔다고 하더니만...

큰아이는 원래  주관이 뚜렷한 편이다. 개성 강한 나의 큰아이가 마음도 강했으면 좋겠다.

배려심 많고 착하기도 한 나의 딸. 오늘 낮에 얼굴 보게 좀 오라고 하지. 또 엄마 힘들까 봐 끝내 찾아오란 말을 못 했나 보다.


자신의 마음을 잘 다스리는 법을 좀 알아가야 할 텐데...

멀리서 어쩌지도 못하고 있으려니 잠이 달아났다.


나의 큰딸이 이제는 잠자리에 들었으면 하고 간절히 바랄 뿐이다.

어제는 작은 아이 신종플루 검진을 했다.

오늘 확진 판정을 받았다.


큰아이에게는 이런 사실을 알리지 않았다.

배우 이광기 씨의 아들이 어이없이 사망한 지난 일요일, 바로 그 시각 나의 둘째가 감기 기운이 있었다.


이광기 씨의 아이 일은 정말 가슴이 찢어질 일이었다. 아이를 잃고 그들은 어찌 살아갈 것인가.

최근 열 없이 신종플루가 유행을 한다는 것을 알았다.


일요일, 둘째 아이의 열을 재니 미열(37.4도). 부루펜 시럽 먹이니 열 내렸다가 6시간 후 다시 37도 그리고 밤새 열 체크했는데 이상 없어서 월요일엔 학교에 갔다.


저녁에 열 재니 다시 37도. 그리고 컥컥하는 기침 비슷한 소리를 자꾸 냈다.


그래서 동생 병원에서 타미플루를 처방받았다. 별 특별한 증상이 없었고 단지 몸살감기와 같이 온몸이 나른하고 뻐근하다는 상태에서 타미플푸를 먹이려니 엄청나게 망설여졌다.

부작용은 없으려나. 조금  있으면 백신을 맞는다는 데 백신을 맞아야 하나 말아야 하나...

결국 타미플루 두 번 먹은 상태에서 어제 거점 병원에서 검진을 했다. 항시 아이를 지켜봤기에 엄마의 감은 정확한가 보다. 설마 했는데 확진이라니...... 타미플루 복용을 초기에 하니 별 증세 없이 멀쩡한 것 같다.


정말이지 엄마가 되어서, 엄마로 산다는 것은 참 힘들다.

며칠째 온 가족이 마스크를 쓰고 있다.


큰아이는 기숙사에 있으니 집안이 어찌 돌아가고 있는지 전혀 모른다.

사랑스러운 나의 아이들이 부디 이 풍진 세상에서 희망을 안고 살아가야 할 텐데.

이번 가을은 신종플루와의 전쟁, 그리고 대 수능과의 전쟁, 참 힘든 나날들이다.                                      


2009년 수능 실시일 : 11월 12일 목요일 실시


엄마  [2009. 9. 21. 0:44]  


건강하게 지냈던 고3 수험생 큰딸이 커다란 시험을 앞두고 병원에 입원을 했다. 올해 신종플루가 유행을 하고 있는 상황에 열이 38도가 넘어서 걱정을 했다. 플루는 아니고 장염이라고 한다. 장염도 마찬가지로 심각하다. 너무 심해서 며칠 입원하게 되었다. 그런데 아이 병간호를 하다가 나도 그만 아파 버렸다. 우리는 나란히 누워서 링거를 맞았다. 그래도 엄마인 내가 먼저 정신을 차리고 이후 며칠간은 나보다 더 아픈 딸을 간호했다.


내 삶에 대한 고민과 정열을 접어두고, 나는 아픈 아이 손을 잡고 내 마음이 더 아파서 몰래 눈물 흘렸다.

죽을병은 아니지만 고3으로서 이제 수능이 얼마 남지 않았는데 이게 무슨 일이란 말인가.


우리말에 큰 일에 쉬어가라고 했지 않느냐고 위로하는 동료의 말에 공감하며, 직장에 며칠 휴가를 냈다. 다행히 동료들이 나의 일을 나누어 해결해줬다. 인생에 며칠이 나의 큰딸과 나에게 주어졌다고 생각하면서 조금 나아졌지만 여전히 아픈 딸 손을 잡고 산책을 했다.


9일의 긴 병상을 털고 기숙사로 돌아가는 딸에게 뽀뽀를 하고 돌아서는데, 갑자기 눈시울이 붉어진다.


나의 엄마도 내가 자랄 때 간호해 주시고, 키워 주시느라 힘드시고 안타까워하셨다는 사실이 새삼 떠올려져서 엄마에게 참으로 오랜만에 전화를 걸었다. 엄마 목소리를 들으니 나이를 잊고 잠시 딸이 되어 행복하고 엄마에게 고맙다.


나의 딸이 남은 수능 준비 기간을 더욱 알차게 보내서 꼭 좋은 성과가 있기를 두 손 모아 기도하며, 언제나 전화하면 정겨운 목소리를 들을 수 있는 내 엄마가 오랫동안 건강하시기를 간절히 소망한다.                                      


2003년 수능 실시일 : 11월 5일 수요일 실시


집들이[ 2003/11/05 ]


대입 수능시험이 있는 날이다. 감독관에서 놓여난 나는 오늘은 자유다.


아무리 대학 들어가기가 전보다 다소 쉬워졌다고 하나 자신이 원하는 대학과 소수 유명한 과는 여전히 힘들기만 하다. 고 3 수험생을 둔 집들은 어젯밤 숨 쉬기도 힘들었을 것이다. 우리의 아이들이 시험을 잘 치르기를 빌어본다.

덕분에 나는 쉬면서 자동차 검사도 받고(기일 지나면 큰일이다) 또 면허증 추가 기록 등으로 바쁘기만 하다.
점심에 겨우 집에 와서 라면을 먹는 중에 남편의 전화가 왔다.


"지금 출발하네."

어제, 어머님과 아버님께 우리 시골 땅(안덕리)과 이사한 우리 아파트에 한번 오시면 좋겠다고 말씀드렸다. 시댁은 익산이라 안덕리에 가셔서 감을 먼저 따고 거기 어디서 점심 드시면, 저녁에 우리 집에 오셔서 진지 드실 수 있도록 해야지 싶었다.

그런데 갑자기 오신다고 전화가 왔다. 감을 다 땄나 보다.
2시 10분.
방바닥 여기저기 걸레질하고 장 봐오고. 부산하게 움직이고 있는데 다시 전화.


" 어머님 아버님 점심 안 드셨어. 나가서 사 드릴까?"
2시 20분쯤.

절대 그럴 순 없지 싶어 오시라고..... 했다.
이제 더 정신이 없다.
버섯전골 계획으로 냉장고 뒤져서 대하 찾고 소고기 썰고 낙지 씻고, 깻잎, 당근, 파 다듬고..
각종 버섯 깔고 국물 만들고
밥 하고..
딩동댕..

어머님 아버님 작은 할머님 도착!
2시 40분쯤..

앗, 손을 베었다..

어쨌든 대충 대일밴드 붙이고 다시 시작.

밥상 다 차려짐 3시 20분...

요리의 간도 제대로 못 본채로 상을 냈는데..
밥은 너무 때글 때글하다.

나이 드시면 더 부드러운 상태를 좋아하시는데..
그래도 전골은 간도 맞고 맛있게 드신다.
대신 숭늉과 누룽지를 내어 드렸다.

좀 시간이 있었다면 호박죽을 끓여드렸으면 좋았을 텐데 아쉽다. 그리고 생강차도 드리려고 생강도 사 왔는데.....
정말 번갯불에 콩 볶는 밥상 차림이다.


그러나
누가 뭐라 해도 나 자신이 대단하다고 생각한다.....
음, 대단해.      



스크롤을 내리시면서 여기까지 읽으신 분이시라면, 마지막 글에서, 저도 한때 괜찮은 며느리감이었다는 것에 동의해 주실 것입니다. ^^

그리고 또 생각하시겠지요. 정말 수능 시험 즈음에 많은 일들이 있었구나 하고요.

저 역시 지난 수능 즈음에 수능시험과 관련해 쓴 글을 정리하다 보니, 우리나라 수능제도가 거의 변한 것이 없다는 사실을 재인식했습니다. 정말입니다. 거의 같습니다. 안타까운 일입니다.


그리고 저의 수능 일지에 기록으로 남기지 않은 2015년 수능, 2014년 4월 16일 세월호 참사로 그 아이들의 미래는 영원히 잠겼습니다. 우리 모두가 우울증을 앓던 시기였지요. 아이들의 영혼을 위해 기도합니다.


이제 내일 또 우리의 미래를 책임질 아이들이 고사장에 오겠지요. 저는 한 아이 한 아이의 손에 소독제를 뿌리며 응원하겠습니다. 제가 그 아이들을 맞이하는 첫 관문이 되었답니다.


모두 시험 무사히 치르기를 응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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