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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상래 Apr 02. 2024

스웨덴 화가_한나 파울리_아침 식사 시간1887

평범한 일상의 고귀한 가치

17세기 네덜란드는 경제, 정치, 문화적으로 그야말로 황금기였다. 그 시기를 관통한 미술사조는 바로크였다. '일그러진 진주'라는 뜻의 포르투갈어 바로크는 과장되고 왜곡된 예술을 뜻한다. 바로크 시대의 거장 하면 렘브란트, 디에고 벨라스케스, 요하네스 페르메이르, 프란스 할스 등을 꼽을 수 있는데 ‘한나 파울리’의 <아침 식사 시간>을 보며 요하네스 페르메이르의 ‘우유를 따르는 여인’이 떠올랐다. 바로크의 영향을 받은 인상주의 얘기를 하려는 것이 아니다. 누군가를 위해 식탁을 차리는 일, 정성스레 음식을 꺼내어 놓는 일은 단순한 일상의 반복일지도 모른다. 더군다나 17세기엔 안주인을 위한 아침 식사는 하녀의 역할이었으니 단순 가사노동쯤으로 여길 수도 있었겠다. 하지만 요하네스 페르메이르는 다른 방식으로 주방의 여인을 표현했다. 집안의 일을 하는 여성에게 신성함을 나타내기 위해 값비싼 울트라 마린 블루라는 색으로 치마를 물들였으니 그 얼마나 혁신적인가. 아침을 차리는 하녀가 입기엔 고가의 치마를 표현함으로 그녀가 하는 일의 가치가 진정 위대한 일임을 나타냈다. 그는 시대를 앞서 깨어 있는 생각을 했던 것 같다.


내 가족을 위해 아침 식탁을 차리는 일

‘한나 파울리’ 그림 속 여인은 녹음 가득한 정원 앞마당에 정성껏 가족의 식사를 준비한다. 테이블 위에는 종일 윤을 내어 반짝이게 했을 법한 예쁜 그릇들과 우유가 담긴 커다란 주전자, ‘얼 그레이’로서 배의 일종인 베르가모트 향이 나는 차가 담긴 티포트가 놓여 있다. 취향별로 향을 낼 수 있는 향신료 병과 뚜껑이 열린 에메랄드빛 투명한 설탕통, 투명한 뚜껑으로 덮어 놓은 치즈 접시, 벚꽃으로 빚었다고 해도 믿을 것 같은 봄의 찾잔, 평상시엔 화이트 와인을 따라 마실법한 투명한 잔엔 무심한 듯 센스있게 담긴 붉은색 꽃이 꽂혀있다. 어느 곳 하나 싱그럽지 않은 곳이 없다. 보이는 것 너머를 가늠이나 할 수 있을까?

 

한나 파울리는 칼 라르손과 동시대 스웨덴 작가이다. 직업을 가진 여성들이 많지 않던 시기, 아이 셋을 키우면서도 그림을 그리는 화가로의 삶도 놓지 않았던 깨어 있는 여성이었다. 식탁보를 가득 메운 인상주의 화풍의 빛과 그림자자가 그녀의 작품을 더욱 돋보이게 한다. 그녀는 가족과 함께하는 삶의 주인이 내가 아니더라도 만족스럽다. 자신이 가꿔놓은 세상에 또 다른 빛으로 존재할 가족을 위해 기꺼이 흔들림 없는 단단한 사랑을 쏟아낸다. 봄의 햇살처럼 보듬고 싶은 가족의 소중함을 ‘아침 식탁’에 표현한 것은 아닐까. 주변을 가꾸므로 겸손함과 엄숙함을 지니는 아우라가 보인다. 그녀는 삶에 있어 무엇이 가장 중요한 것인지 알았던 것 같다. 푸르름이 가득한 정원의 아침 식탁은 그녀의 가족 사랑을 표현하는 공간이자 또 다른 예술 활동 공간인 셈이다. 

한나 파울리/아침 식사 시간 1887

흔하고 익숙한 풍경이 주는 위대함

나는 어느새 평범해서 위대한 삶, 그곳에서 조금씩 빗나가는 것은 아닐지 생각해 본다. 우리의 오늘, 지금을 잊은 채 미래의 한적한 어느 곳에서의 ‘아침 식사’ 준비를 위해 달리며 살아가는 것은 아닐지. 내가 가꾸어 가야 할 것은 비단 내 꿈뿐 아니라 내 가족의 안녕과 편안함이다.

 

계곡 물소리에 온 마음이 치유되던 날이 있었다. 한낮에 내리쬐는 봄의 햇살은 꽤 뜨거웠고 산림이 울창한 계곡 옆 우리 텐트는 커다란 나무들이 바람을 만들어 시원하고 은은한 빛을 느낄 수 있었다. 그야말로 헨리 데이비드 소로의 월든 같은 곳이었다. 흔하고 익숙한 풍경이 펼쳐지는 그림 앞에 나는 한참이나 머물렀다. 누군가를 위해 식탁을 차리는 일은 보이는 것 너머를 상상하게 만든다. 

 

엄마가 매일 같이 반복해 윤을 낸 자줏빛 마루, 한낮의 햇살을 맞으며 카스텔라의 빵가루를 갈색과 노란색으로 분리해 삶은 경단을 그 위로 굴리던 기억, 납작한 반죽의 안쪽을 칼집 내 안으로 접어 만든 과자, 싱싱한 오이가 큼직하게 들어간 엄마표 김밥, 파는 김밥을 좋아하지 않는 나를 위해 채소를 송송 썰어 볶아 만든 엄마표 오므라이스, 지단을 포근하게 덮고 있던 예쁜 도시락통 속의 엄마표 오므라이스가 떠올랐다. 처마 밑으로 떨어지는 빗물을 모을 수 있게 받쳐둔 빨간색 통 역시 엄마의 손길로 남아 있는 장면이다.

 

나, 잠시 멈추어 서서 일상의 소중함을 느껴보기로.


요하네스 페르메이르/우유를 따르는 여인 1658~60

명상 음악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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