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Window in London Street/넓히고 싶은 세계, 자유
창문 너머에 관한 이야기
2002년 낭시, 내가 살던 곳은 열 평가량의 자그마한 스튜디오였다. 그곳은 <목로주점>과 <테레즈 라캥>을 쓴 프랑스 소설가 에밀 졸라의 이름을 딴 ‘휘 에밀 졸라(rue Emile Zola) 위에 있었다. 정확한 주소는 32 Rue Emile Zola 54500 Vandœuvre-lès-Nancy. 그곳에서 나는 혼자 있는 시간의 비밀을 알아내기 시작했다. 내 안의 저 밑바닥에 수맥처럼 흐르는 예술가의 기질을 온전히 만끽하기 위해 고독하길 자처했다. 누군가의 영향이 아닌, 오롯이 내가 가진 내면의 에너지를 만나 그것과 직면해 보는 것, 내가 한국을 떠나온 첫 번째 목적이었다. 내가 살아가던 세상과 거리를 두고 내 생각 속에 있는 진짜 나와 함께 있기를 원했다.
나는 무민의 스너프킨처럼 고독과 자유를 사랑해 혼자만의 시간이 없으면 안 되는 사람이다. 스너프킨은 무민이 사는 마을과 조금 떨어진 곳에 살고 있지만 그곳에 사는 사람들과 잘 어울리며 그들의 일을 적극적으로 돕곤 한다. 정말 나와 비슷한 점이 많은 캐릭터다. 무민은 그런 스너프킨을 있는 그대로 존중하고 구속하지 않는다. 스너프킨은 혼자 있을 때면 모닥불을 피운다. 자신의 고독과 직면하는 시간이 그때가 아닌가 싶다. 세상 속에 섞여 있다가 자신의 에너지를 찾기 위해 불을 피우는 스너프킨을 보면 꼭 내 모습처럼 느껴진다.
푸른 드레스의 여인이 바라보는 저 너머엔 무엇이 있을까? 열 평 남짓 작은 내 방엔 저 여인이 내다보는 창문만큼 커다란 나만의 창문이 있었다. 새벽, 네 시쯤 일어나 창문 앞에 서면 세상이 온통 여인의 푸른 드레스만큼 보랏빛과 푸른빛으로 물들어 있었다. 나는 더 적극적으로 창문 앞쪽으로 바싹 붙어 서서 공기의 흐름과 어둠의 물러감을 눈을 감고 느끼곤 했다. 나는 혼자 있는 시간과 내가 서 있는 공간을 사랑했다.
나만의 공간
2024년의 나, 여전히 창문 앞에 혼자 설 공간을 원한다. 이번엔 열 평보다 큰 나만의 공간이 갖고 싶다. 남향으로 난 창엔 낭시의 창문에서처럼 아낌없이 빛이 쏟아지고 천장의 평범한 조명 대신 내 손으로 직접 고른 화려하지 않은 여섯 구짜리 빈티지 샹들리에를 달 수 있으면 좋겠다. 신혼 초, 엔틱한 가구는 어쩐지 나이 들어 보여 싫었다면 2024년의 나는 낡고 고풍스러울수록 내 공간에 들여놓고 싶은 마음이 부쩍 든다.
낭시에서 내가 쓰던 책상은 덮개를 앞으로 반쯤 내리면 피아노처럼 보이는 책상이었다. 내 것은 아니었고 집주인의 것이었는데 마음껏 어지를 공간도 없는 그 책상을 원하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딱히 튼튼하지 않은 것 같은데도 어떤 향수 같은 것들이 내 주위를 감싸는 것만 같다. 그러니까 내 공간, 내가 고른 조명, 나를 위한 책상이 절실히 필요한 시점이다. 테이블 위 보단 책상 옆에 내가 좋아하는 흰색 카라 꽃 열 송이 시원스럽게 꽂아 두고 싶다. 피톤치드 향이 공간을 메우고 카라 꽃 향이 잔잔하게 코끝을 스치면 좋겠다. 벽에 걸어둘 그림은 아트페어에서 몇 점 사두었다. 어쩐지 심심한 내 공간에 꽤 어울릴 것 같아 포장도 뜯지 않은 채 아껴두고 있다.
넓히고 싶은 세계, 자유
혼자 있을 때 나에 대해 가장 잘 알 수 있다. 내가 가지고 있는 세계가 얼마나 무궁무진한지 실험해 볼 수 있다. 급격히 넓어지는 나의 세계와 만날 수 있다. 혼자 있는 시간을 잘 보내는 사람은 타인과의 관계에도 유연하고 감정 또한 자유롭게 교환할 수 있다. 남자들만 동굴이 필요한 게 아니라 나도 나만의 동굴이 필요하다. 아니, 난 동굴은 싫고 자외선으로 기미가 늘더라도 해가 잘 드는 커다란 창문이 있는 밝은 공간이 필요하다.
내가 넓히고 싶은 세계는 스너프킨이 가진 자유와 고독의 세계다. 그곳엔 혼자 있을 자유의 시간과 글을 쓸 공간, 삶을 누구보다 즐겁게 살 줄 아는 사람들의 똘끼들이 흘러넘친다. 윌리엄 오펜의 ’런던 거리의 창문‘을 보며 나는 내가 원하는 공간을 상상했다. 창문 너머의 세상엔 내가 원하는 세계가 분명 존재할 거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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