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0년대 나를 유혹하던 것은 거침없이 대담했다. ‘너바나(Nirvana)’, 레이지 어게인스트 더 머신(Rage Against The Machine), ‘라디오헤드(Radiohead)’, ‘림프 비즈킷(Limp Bizkit)’, ‘린킨파크(Linkin Park)’ 등 수많은 메탈 계의 계보를 잇는 록밴드의 음악을 들으며 지냈다. 때론 ‘메탈리카’의 음악을 들으며 넘치는 청춘의 열정을 대신 만끽하기도 하고 ‘마를린 맨슨(Marilyn Manson)’이나 ‘펄 잼(Pearl Jam)’의 음악 속에서 용기 있게 발현하지 못한 내 ‘똘끼’를 대리만족하곤 했다. ‘드림 시어터(Dream Theater)’의 곡을 내가 만든 영상에 배경음악으로 넣기도 하면서 휘몰아치는 음악의 쓰나미에 휩쓸려가듯 떠밀리는 내가 좋았던 시기이기도 하다. 도덕적 한계를 넘어선 행동을 할 수 없던 나로선 나를 대신해 한없이 세상을 만만하게 보고 마음껏 돌을 던지는 그들이 내심 부럽기도 하던 시절이다.
그때 꽤 근사하게 생각한 친구가 있었다. 그는 밴드에서 보컬을 맡고 있었고 큰 키에 걸맞게 해외 밴드 보컬처럼 옷을 잘 입었다. 어쩐지 학교에선 있는지도 모르게 조용한 학생이었는데 보컬이라고 했다. 시절 친구 덕분에 나는 세상에 다양한 음악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내가 아는 세상 저 너머에도 들으면 한없이 빠져들게 만드는 리듬이 있었다. 음악에 대해 더 많은 이야기를 그 친구와 나누고 싶었다. 지금은 절판된 대중음악 전문지 ‘월간 핫뮤직(Hot Music)’을 사서 보기 시작했다. 내가 영상 예술가로 계속 살았다면 그 시절 내 뮤즈는 그 친구가 아니었을까 싶다. 나를 유혹하던 것은 시간이 지나면서 대부분 사라졌다. 그것은 나이가 드는 일처럼 아주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1994년 ‘너바나’의 ‘커트 코베인’이 자신의 자택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2017년 ‘린킨 파크’의 ‘체스터 버닝턴’ 역시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 2022년 ‘행궁유람 행행행’전에서 나를 멈추어 서게 한 작품이 있었다. 신봉철 작가의 ‘원 모어 라이트(One more light)’ 앞이었다. 미술관에서 작가에 대한 정보를 얻고 오랜만에 ‘린킨파크’의 음악을 찾아 들었다. 90년대는 얼터너티브 록의 시대였다. 기존의 헤비메탈에 힙합이라는 장르가 융합되어 참신함을 주었는데 뉴메탈이라는 새로운 장르로 내가 대학생이던 90년대 후반을 휩쓸었다. 신봉철 작가의 작품은 나를 그 시절로 돌아가게 했다. 작품 앞엔 90년대 후반의 내가 서 있었다.
투명에 가까운 초록
작품은 짙은 초록이었다. 그건 멀리서 그랬다. 가까이 갈수록 초록은 투명에 가까웠다. 날카롭고 투명한 유리 조각이 만들어낸 흐릿한 기억들이 선명해졌다. 빛을 받아 반짝이는 부분은 초록이어도 색을 잃은 투명한 유리보다 더 맑게 보였다. 세월이 아무리 흘러도 사라지지 않고 영원을 가는 것이 있다. 아이들은 크리스마스트리 같다며 작품의 반짝임을 먼저 본다. 그건 아이로서 당연한 일일지도 모르겠다. 나는 그것의 날카로움, 깨진 것이 모여 만들어낸 한 시절이 먼저 그려졌다.
사랑은 지나고 나서야 반짝였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사랑하는 동안엔 늘 서로를 날카로운 유리로 찌르느라 그게 사랑인 줄을 모른다. 약속을 지키지 못했으므로 상처가 되었을 텐데 어쩌면 ‘원 모어 라이트(One more light)’ 보다 ‘페인트(faint)’를 자주 듣는지도 모르겠다. 지나고 나서야 깨닫게 된다. 빛나던 시절은 어둠과 아픔, 상처 속에서야 비로소 투명한 유리 조각처럼, 푸른 빛을 띠는 청춘의 한 조각과 함께라는 사실을.
어떤 순간의 약속은 영원을 간다.
신봉철 작가의 보석 같은 작품 안엔 Who cares if one more light goes out in ask of a million strars? 수많은 별 중에 빛 하나 사라진다고 누가 신경이나 쓰겠어? 라고 쓰여 있다. 살아가며 누구든 나 하나 없다고. 누가 날 신경이나 써? 하는 순간이 온다. 그럴 때마다 well I do. well I do. 나 있잖아. 어디에 있든 내가 너를 생각해. 그러니 어디서든 잘 살아주길 바라. 깊은 슬픔 속에서야 비로소 반짝이는 조각들을 찾을 수가 있다.
오랫동안 바라보던 작품의 깨진 유리 조각 사이로 따뜻한 바람이 지난다. 뾰족한 조각의 투명한 끄트머리를 어떤 바람이 어루만진다. 그 바람은 사랑이라는 이름보다 더 넓은 의미이다. 많은 것들을 안고 덮어줄 수 있는 단어로 well I do라고 말한다. 영원을 약속하고 지키지 못했어도 돌이켜 생각하니 빛나는 시간이었다. 그러니 모두 다 괜찮다. 안도 다다오의 ‘청춘 사과’처럼 설익어 시큼한 연둣빛이던 그 시절이 이제야 에메랄드빛으로 물들여졌다. 나는 록 음악 보다는 명상 음악을 틀어 놓는 사람이 되었다. 그래서인지 모든 것이 잔잔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