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상래 Oct 31. 2024

<월간 국회도서관>_상상예술관 11월호 #손동준

원문은 아래에⬇️

글자로 그림을 쓴 ‘문자추상’의 차세대 주자, 손동준(不涯 孫東俊)


앵포르멜(informel) 정신의 승화, ‘문자추상’

앵포르멜(Informel)은 비정형이란 의미로 2차 세계대전(1939-1945) 이후 프랑스에서 일어난 회화 운동이며 서정적 추상을 말한다. 차가운 추상과는 반대로 작가의 감정과 캔버스 화면의 질감, 혹은 공간적인 요소가 주로 사용된다. 캔버스 위에 물감을 흩뿌린 액션페인팅의 선구자 ‘잭슨 폴록 Jackson Pollock’을 어렵지 않게 떠올릴 것이다. ‘문자추상’은 '앵포르멜(informel) 정신의 승화로, 프랑스에서 주로 활동했던 한국의 대표 예술가 이응노와 남관을 빼놓고 설명하기 힘들다. 그들은 한지 외에 다른 물성을 통해 파격적인 형태의 추상화를 시도했던 1세대 ‘문자추상’의 대가였다.


 손동준(不涯 孫東俊)은 한국 서예계의 동시대 리더 중 한 사람으로 서예를 기반으로 글자가 그림이 되는 ‘문자추상’을 하는 작가이다. 앞서 언급한 우리나라 1세대 예술가들과 다른 점은 회화 기반의 ‘문자추상’이 아니라 ‘서예’를 기반으로 한다는 점이다. 손동준은 캔버스 가득 색으로 채운 후 엄격한 화면 구성을 거부한 채 ‘그림 같은 글자’로 얼룩을 만들어 낸다. 타시즘(Tachisme)은 '얼룩', '자국'이라는 뜻의 프랑스어 '타슈(Tache)'에서 유래한 말로 1950년대 초, 전 세계적으로 유행한 추상표현주의에 대한 조소적 표현으로 사용되었는데 손동준 작가의 작품에서 그 형식을 찾아볼 수 있다. 누구도 걷지 않은 길을 오랜 세월 이어오고 있는 ‘문자추상’의 차세대 주자 손동준 작가의 작품 안으로 들어가 보자.


쓰는 미학, 글자가 그림이 되어

"궁극적으로 나의 의식적인 ‘쓰는 행위’는 노자가 말한 무위(無爲)의 세계를 향하고자 한다. ‘쓰는 미학'의 최종 단계에 이르고자 하는 다층적인 태도이다.“_ 손동준


해외 추상표현주의 작품이 자유로운 다채로움을 품었다면, 손동준 작가의 작품은 동양의 ’침묵의 시‘ 한 편을 그림으로 쓴 개념미술처럼 보인다. ‘서예‘라는 고전 형식의 틀을 부수고 마치 그림처럼 그 맥락을 새롭게 만든다. 글자가 그림이 되는 형상은 작품을 감상하는 관람객에게 기존 방식의 틀을 깨라고 이야기하는 것 같아 속이 시원하다. 눈에 보이는 사물이나 풍경을 그림으로 옮기는 ‘재현’ 행위를 전면 부정한 ‘마르셀 뒤샹’의 절반만 전통적인 개념과도 닮아있다.


그의 작품에서 한 편의 시처럼 쓰인 서체는 떨어져 감상하면 축 늘어진 버들가지 같다. 이는 낭군을 떠나보낼 때 꺾어주던 전통적인 여인의 버들가지가 아닌 기세로 품은 버들가지이다. 청춘의 시절은 엄청난 기세로 한 시절을 송두리째 삼키곤 잡힐 듯 잡히지 않아 더욱 애절하게 남는다. 마치 네덜란드의 ‘바니타스 정물화’를 연상시킨다. 젊은 시절, 장작불처럼 한껏 불태운 사랑이 결국엔 덧없음을 의미하듯 말이다. 기세로 충만한 글자들은 바람에 날리듯 어느새 늘어져 흔적을 남긴다. 속절없는 시절의 사랑과도 같이, 작가는 글자로 그림을 만든 ‘문자추상’을 통해 개인의 스펙트럼을 넓혀 작품을 감상하라고 말하는 듯하다. 마음대로 낙서한 듯 보이는 서체들이 전봇대처6ㄷ럼 보이기도 하고 내리는 가을비 같기도 하다. 영화 매트릭스의 푸른 배경의 코드와도 비슷하다. 하지만 가만히 들여다보면 무수히 많은 한자가 빼곡히 들어차 불교의 억겁 세월을 나타낸 듯 보이기도 한다. 호안 미로가 여성, 별, 꽃, 하늘, 행성, 새 등의 요소를 단순화시켜 상징 기호를 만들듯 문자를 모아 도시의 밤을 그린 것 같이 보이기도 한다.


전시관을 찾은 관람객의 “이 정도는 나도 그릴 수 있겠는데?”라는 이야기를 들으면 어린아이처럼 그리기 위해 60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노력한 호안 미로가 생각난다. 단순하면서도 복잡하고 자유로우면서 깊이 있는 ‘문자추상’을 통해 자기 안의 창조성과 상상력이 춤을 춘다. 보기와 읽기를 함께 구상한 손동준, 그는 누구인가.


서예를 빼놓고 이야기할 수 없는 사람

 손동준은 서예학원을 운영하던 조부 덕에 한문과 서예를 일찍이 익힐 수 있었다. 그의 첫 번째 스승은 중학교 3학년 때 처음 만난, 서예계의 큰 별 창석 김창동이다. 그는 국내의 ’학생서예대전‘ 중고등부에서 대상과 1등 상을 15회나 수상하며 줄곧 서예 장학생이었다. 입대 후엔 모필병(毛筆兵), 한국 최초의 서예 학과 실기 만점 장학생으로 대학 1학년 때는 서예계를 대표하는 가장 큰 서예 공모전인 '제6회 KBS 전국휘호대회'에서 1등을 했다. 이 대회는 KBS와 국제서법연맹이 공동주최하고 한국 서예계의 거장 여초 김응현 선생이 주관한 대회로 손동준의 나이가 어리다는 이유로 1등을 했지만 2등 상을 받으며 당시 뉴스의 화제가 되기도 했다. 피카소가 일찍이 부를 누렸듯 손동준은 서예공모전 입상을 통해 모든 생활비를 해결할 정도로 부유한 대학 시절을 보냈다.


이후, 대한민국미술대전 입선(1992), 제1회 서울 서예대전 대상(2001), 월간서예대전 대상(2004), 제1회 서예문화대전 대상 수상 작가 초대전(2005)을 기점으로 작가로 등단하여 2006년 국내 첫 전각(篆刻) 전의 문을 열었다. 이로써 전각이 서예의 보조 수단이 아닌 독립적 작품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수화 김환기처럼 손동준 작가 역시 불혹이 되던 해 중국으로 유학을 떠났다. '중국정부사(서)법 장학생 박사 1호'가 되던 해 중환자실에 계시던 어머님이 병환으로 떠나면서 예술가의 영혼은 작품에 대한 열정으로 가득 찼다. 손동준은 서예 명문 중국수도사범대학 서법문화 연구소에서 구양중석(歐陽中石) 선생에게 사사한 ‘외국인 정부장학생 박사 1호 제자’이다. 구양중석(歐陽中石) 선생은 중국인이 존경하는 서예가이자 학자이다. 손동준 작가는 중국 랴오닝성 판진시 예술촌에 입주한 유일한 외국인 입주 작가로 '구양중석 교수와의 졸업사진' 덕에 그의 작업실 겸 화랑은 랴오닝성에서 유명 인사들이 빼놓지 않고 찾는 명소이기도 했다.


판진시 예술촌은 중국 전역에서 선발된 100여 명의 작가들에게 작업실과 아파트를 제공하는 곳으로 전시장과 문화 관련 시설을 3만 평 규모의 복합문화단지 안에 갖추고 있는 곳이다. 손동준 작가는 졸업하는 4년간 학비와 기숙사비 전액 면제는 물론 생활비까지 지원받으며 학업에만 전념했다. 서예 본고장에서 중국인이 가장 존경하는 서예가이자 학자의 '외국인 정부장학생 박사 1호 제자’라는 타이틀은 나라를 넘어선 큰 의미가 있다.


작가 약력

손동준(孫東俊ㅡSon Dong Jun)한국문화예술위원회 심의위원재중한국인미술연협회 부회장중국광샤리앙신그룹 전속작가대종상영화제 예술총감독역임현) 동방문화대학원대학교 문화예술콘텐츠학과 학과장


중국수도사범대학 서법문화원박사국내외 개인전24회/아트페어15회한중일 3인전 6회(서울.동경.북경.서안.산동)작품소장제일은행본사, 국립현대미술관미술은행, 서울아산병원, 대구미르치과병원, 파이낸셜경제신문, 운현궁미술관, 미국UCLA박물관, 한국수력원자력공사, 북경수도사범대학박물관, 중국传媒대학박물관, 중국炎黄미술관, 심양久丽백화점, 아제르바이잔대통렁궁, 덴마크왕궁


#칼럼
#국회도서관
#월간국회도서관
#손동준
#김상래작가
#미술인문학도슨트



매거진의 이전글 <월간 국회도서관>_ 상상예술관 7,8월호#에르빈 부름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