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에서 발견한 사유, 기록, 예술 이야기
관계에도 온도가 필요해
매일 아침 내게로 들어오는 문장이 있다. 나는 그 문장을 기록하고, 그 문장에 따라 살아내려 애쓴다.
불교 명언 중에
'불가근(不可近) 불가원(不可遠)'
이라는 말이 있다.
'너무 가까워도 문제가 생기고,
너무 멀어져도 다친다'라는 뜻이다.
인간관계도 마찬가지다.
인간관계도 화로(爐)와 같아서
가까이 다가가면 데일 수 있고
너무 멀어지면 춥고 외로울 수 있다.
그래서 너무 가까워졌다 싶으면
의도적으로 거리를 둘 필요가 있다.
이건 친구, 회사, 가족 사이에서도
적용될 수 있는 '중용'의 진리다.
그래서 나는 어떤 관계든, 가까워졌다고 느껴질 때면 한 걸음 뒤로 물러서 본다. 적당한 거리, 그게 우리가 서로를 오래 지키는 방식일지도 모른다. 며칠 전, 누군가를 위해 기사를 하나 썼다. 그런데 뜻밖에도 또 다른 누군가가 내 기사를 써 주었다. 세상은 이렇게, 서로를 향한 마음이 맞물려 돌아간다. 무엇을 바라거나 계산했던 일은 아니었다. 그동안의 노력을 알기에, 그 사람이 잘되기를 바라는 마음 하나였다. 그리고 강연장에 왔던 또 다른 사람. 처음엔 기사 쓸 생각이 없었다고 했지만, 모든 강연이 끝나자 자신도 기사를 쓰고 싶다고 했다. 강요도, 기대도 없었기에 더욱 고마운 흐름이었다. 자연스럽게 흘러가는 것들, 끼워 맞추지 않은 그런 날들이 허락되어 감사했다.
마르셀 뒤샹의 체스판
도서 인플루언서 ***님께 책 한 권을 선물 받았다. 예술가의 여정에 관한 책으로 정가가 37,000원이라 사야 할까 고민 중이었는데, 강연 준비에 도움이 될까 하며 건넨 책이었다. 묵직한 양장본을 받아들고 보니 요즘 이런 형식이 유행인가, 문득 궁금해진다. 최근에는 주로 핸디북 사이즈만 읽고 있었던 터라 더 반가웠다. 나는 끌어당김의 법칙을 믿는 편이다. 강연 중 마르셀 뒤샹이 미술을 잠시 떠나 체스에 몰입했다는 이야기를 했었다. 그런데 그 책을 펼치자마자, 체스에 빠진 뒤샹의 여정이 그대로 나오는 게 아닌가. 부에노스아이레스, 그곳에서 체스에 집착하던 뒤샹. 강의안에 이 내용을 꼭 넣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이렇게 내게 닿는 것들은 우연처럼 다가와 필연이 된다.
그래서 사람 사이에도 ‘적당한 거리’가 중요하다는 말을 곱씹게 된다. 강연장에서 만난 사람들, 우연히 기사로 다시 이어진 인연들, 나와 타인의 마음이 너무 다가서지 않으면서도 적당히 이어져 있을 때, 삶은 자연스럽게 흘러간다.
상반기 강의와 강연은 이제 거의 마무리되었다. 서양미술사를 한 바퀴 도는 일은 나에게도 큰 의미가 있었다. 연초에 온 요청을 선뜻 수락했던 이유다. 한 번 큰 호흡으로 훑어보니, 내가 어디에서 얼마나 비어 있었는지도 보였다. 그 구멍을 하나씩 메워가다 보면, 엉성했던 지식들이 단단히 묶일 것이다. 남은 강연 요청들은 아쉽지만 정중히 거절했다. 대신 하반기에 이어가기로 한 인연들이 있다. 여름방학 동안엔 어린이와 성인을 위한 강연이 몇 차례 예정되어 있다. 가족 여행을 다녀오자마자 아이들 수업이 있고, 강원도 유치원 원장님 스무 분 대상의 문화예술 교육도 기다리고 있다.
여행을 떠나기 전, 마무리한 원고는 출판사 편집장님께 보내기로 했다. 빨래도 여러 차례 해두었고, 티는 안 나지만 싱크대도 정리했다. 냉장고 속 묵은 음식들도 꺼내 모두 버렸다. 엄마는 삼일에 한 번씩 와서 유찬이와 유림이를 들여다봐 주시기로 했다. 28인치 캐리어를 하나 더 샀고, 여행 루트와 근처 갈 만한 곳은 구글 지도에 저장해 두었다. 각자의 캐리어엔 각자 읽을 책도 하나씩 챙겼다.
이제 그간 열었던 문을 잠시 닫고, 새로운 문을 열 시간이다. 여행을 선택했으니, 이제 그곳에 집중할 차례다.떠나기 전, 재미있는 아이디어가 하나 떠올라 일단 적어두었다. 읽고, 기록하는 사람은 성장할 수밖에 없다.
그 기록이 비록 흔들리는 날의 감정일지라도, 시간이 지나면 분명히 삶을 지탱하는 지점이 되어줄 것이다. 나는 오늘도 읽고, 기록하고, 천천히 흘러간다. 좋아하는 사람들과 책을 읽고 글을 쓰자고 하는 이유다. 상반기 보다 더 성장한 하반기가 될 테고 내년엔 더 재미있고 신나는 일들이 많이 일어날 거다. 급하지 않게 천천히 흐르며 살아내자.
자기 방식으로 자라나는 아이
수두로 일주일을 학교에 가지 못했던 아이가 등교하자마자 수행평가에 들어갔다. 하교 후엔 친구와 헬스장에서 몇 시간 운동을 하고 돌아와 서너 시간을 꼬박 앉아 PPT 자료를 만들었다. 도와주었으면 시간을 줄일 수 있었겠지만 끝까지 혼자 해내길 바랐다. 답답한 마음도 있었지만 스스로 푸는 법을 익히게 하고 싶었다.
시간이 꽤 걸렸지만 해냈고, 그 내용도 제법 괜찮았다. 아이는 끝까지 ‘조금 더 나은 문장’을 쓰고 싶어 했다.
벌건 눈으로 잠든 아이를 바라보다 비로소 오늘 하루의 마지막 페이지를 덮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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