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at if you meet the healthier you?
What if you meet the healthier you? (만약 당신이 더 건강한 당신을 만난다면.)
며칠 전, 외국에서 만든 한 영상을 보고 글로 남기고 싶어졌다. 하고 싶어지는 것이 생긴다는 것은 본래 내가 살아온 세계에 돌아왔다는 신호다. 희망과 꿈, 운 좋게도 이뤄지고 스쳐 지나간 꿈, 하나를 선택해서 나머지는 잃게 되는 순리. 그 시간의 경계를 유순하고 모질게 지나온 나만의 역사와 실패와 성공의 경험. 어느 하나 부질없는 시간이 없었으면 하는 욕심. 때론 역량 밖의 나를 만나면서 오는 좌절감. 바쁜 현대사회에서 도태되지 않기 위한 남을 의식한 시간까지도 모두 나다. ‘건강한 나’를 만나면 무슨 말을 할까?
‘건강한 나’와의 만남
같은 외모를 하고 한껏 환하게 웃고 있는 여인이 걸어온다. 옷은 깔끔하고 손톱이 정돈돼 있군. 네일아트 할 시간도 있고 여유 있는 얼굴을 보니 밤잠을 푹 잔 모양이야. 멜라토닌은 이제 먹지 않을까? 친구가 선물한 멜라토닌 덕에 잠을 잘 자는 건지. 아니면 밤잠 깰 만큼 불편하고 그런 일은 없는 건지. 너무 다행이야. 보기 좋다. 옷도 잘 차려입었군. 옷을 잘 차려입었다는 것은 옷으로 터져나가는 한숨 나오는 옷방에도 기분 좋게 들어가 옷을 고를 시간을 가졌다는 이야기다. 일은 많이 하는지 물어봐야겠다. 가족과 사이는 어떤지 물어봐야지. 그런데 그 전에 해야 할 일이 있네. 안아주는 것. 체온을 나누는 것. 지친 나를 건강한 나와 만나 안아주면 좋은 기운을 받을 수 있을 것만 같다. 습자지처럼 주위 영향을 많이 받는 나인 걸 나는 안다.
안아주기의 효과는 놀랍다. 유아기 아이를 키우면서 나를 가장 극심하게 자극하는 요소가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나의 아이라니 충격이군. 아이러니한 상황에서 육아의 자리를 잡지 못하고 있을 때, 읽었던 육아 책에서 ‘안아주기의 효과’를 가슴에 새겼다. 인생은 아이러니한 상황에 자주 놓인다. 차디찬 경험으로 따듯한 마음을 갖는 아이러니함. 모순과 역경을 지나가고 시간이 지나면 ‘배움’의 문을 지나 무언가를 손에 얻는다. 왜 아이러니함은 인간에게 계속되는가. 아이가 울고 고막이 터질 것 같다. 특정 데시벨을 넘기고 시간이 길어지면 화가 난다. 한동안 어쩔 줄 몰라 좋은 방법을 해보지 못했다. 그때 아이를 안아주었다. 속상한 내가 더 이상 속상하지 않은 방법은 누군가의 안아줌이 아닐까. 안아주는 형태가 ‘말’로든 ‘체온’이든.
개인의 역치는 어디까지인지 모르나 남의 인생을 자신이 되어보지 않은 이상 알기 어렵다. 그 또한 인정하자. 고난과 역경을 지나 잠잠해진 나의 얼굴을 보고 있으니, 눈시울이 붉어진다. 그리고 가만있자. 뭘 물어봐야 할까. 음악 시디가 다음 트랙을 준비하는 시간이 길어진다. 음료가 준비되었다네. 음료를 받으러 가는 ‘건강한 나’의 뒷모습을 본다. 운동을 열심히 했나 보다. 건강해 보이는 몸이 보기 좋다.
앞의 사람은 '나'이지만 나는 네가 부럽다. 환희에 찬 나의 모습이 대견하면서도 나는 나의 미래가 그럴 줄 알면서도 지금은 왠지 초라하다. 마주 보고 앉아서 손을 잡아본다. 말하지 않아도 눈을 보니 알 것 같다. 그렁그렁 눈물이 나면서 마주 잡은 손을 빼고 눈물을 훔친다. “보기 좋네! 너무 축하해. 평온을 얻었다니 너무 좋다.”
평온을 빕니다.
“요즘은 어때?”라는 말하지 않아도 ‘나’이기 때문에 안다. 맛있는 음식을 기다리는 설레는 마음도 갖게 되었을 거다. 음식이 돌 같아서 배고픔을 느끼는 내가 가끔 귀찮아질 때가 많았거든. 맵고 짠 음식도 다시 즐기게 되었을지도 궁금하다. 남을 바꿀 수 없다는 진리를 무시한 채 남편은 요즘 말을 잘 들어주는지도 궁금하군. 하긴 내가 마음이 힘들고 문을 걸어 잠근 뒤 남편의 인성에 감탄했으니 그 뒤로는 부부 사이 문제가 없긴 했지만. 일은 잘되고 있는지도 물어본다. 아이를 키우면서 본업을 이어가는 행운을 이어가는지, 그리고 돈벌이가 괜찮은지도 묻고 싶다. 갖고 싶은 것을 고민 해서 사는 버릇은 여전한지. 요즘 장바구니에 들어있는 품목은 뭔지 궁금하다. 몇 달 동안 갖고 싶은 것이 없어 재미없는 삶을 살아본 적 있던지라 그게 아니라면 또 무언가에 관심이 넘치고 있을지가 알고 싶다.
주저리주저리 생각나는 대로 질문을 하다가 달콤한 음료를 들이켜는 ‘건강한 내’가 말한다. “아메리카노가 건강에 더 좋긴 한데 가끔 열량 생각하지 않고 이렇게 한잔 마시는 것도 기분에 도움을 주더라. 내일 한번 마셔봐.” 묻지 않은 말에 하는 ‘나’는 여전하군. 다시 당당한 너를 찾았구나. 오지랖도 넓어지고 다시 질문도 제안도 많아지는 네가 되었구나.
한 시간 반을 이야기하고 나서 안도의 숨을 “후~”하고 쉬었다. 단전에서 나오는 호흡 같다. 그렇게 되는 내 모습을 다시 보니 반갑고 버텨줘서 그리고 (카페에, 세상에: 중의적인 말이다) 나와줘서 고맙다. 갑자기 “평온을 빕니다.” 하고 나를 안아준다. 당당해서 보기 좋다. 너를 누가 당당해서 밉다고 해도 나는 당당한 ‘건강한 내’가 좋다. 계속 그렇게 있어 주라.
‘건강한 나’의 이야기
오늘 마침 목요일이다. 일주일 중 가장 여유가 있는 날이다. 카페로 나가 ‘힘든 시기를 보내고 있는 나’를 만나는 날이다. 이것저것 물어볼 ‘힘든 나’의 예상 질문을 미리 생각해 보다 관둔다. 즉흥적인 물음에 잘 대답하는 나를 믿어본다. 불편한 마음으로 몇 날 며칠 잠 못 잤을 ‘힘든 나’에게 해 줄 말은 단순 명료해야 한다. “나는 너를 믿고 기다리고 있으니, 언제나 궁금할 때 나를 불러내 커피 한잔하자.”라는 말은 시간을 보고 적절히 해줘야지. 동굴 속에서 숨어있는 날이 버거워지는 시간이 되면, 그때 너는 다음 스텝으로 가기 위함이다. 나는 알고 있다고, 조금 그래도 괜찮다고 안아줄 테다. 너에게도 나에게도 누구에게나 그런 시간이 있다고 말해 줄 거다. 우울의 끝이 우울함이 아니라고 말해 주어야지. 지금의 나처럼 갖고픈 것도, 먹고픈 것도 다시 생긴다고 말해 줄 거다. 평온을 빈다고 말해 줄 거다. 그리고 한없이 손잡아 줄 거다. 꽉 안아줄 거다.
‘힘든 나’는 카페에서 나에게 연신 고맙다고 말했다. 상대가 시간을 들여 자신을 만나준 것으로도 행복해 하는 아이니까. 그래서 좋지만 가끔은 "여린 놈아! 좀 강해져라!" 하고싶다. 돌아서서 내일이 밝으면 우리의 만남을 잊고 다시 파고드는 삶을 시작할 수도 있겠지만, 내가 해 줄 수 있는 건 없다. ‘힘든 나’는 잘할 거다. 다시 이겨내고 나와서 지금의 ‘건강한 나’와 함께 합쳐지는 날이 올 거니까. 믿어보자. 그녀가 단단해지는 과정인걸 ‘건강한 나’는 안다. 나는 '너'를 또 '나'를 믿는다. 나는 나를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