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8. 그림 이야기

<박여주> 닥터스트레인지와이날치를만나다

by 김상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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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멘션 dimension 크기, 치수, 규모, 차원


공간의 내부를 채우는 빛과 밖으로 흘러나가는 빛의 만남을 선보이는 작가 박여주.

눈에 보이는 영역, 시공간을 넘나드는 것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키는 작품을 주로 선보이는 작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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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공간 내에서 자신의 구조물과 함께 빛을 보여주기 시작한 것으로 인해 작가는 더욱더 섬세하게 자신의 공간을 관객에게 보여줄 수 되었고 관객은 더욱 다양한 방법으로 작가가 보여주는 공간을 받아들일 수 있게 되었다. 공간과 구조물이라는 정적인 영역에 빛이 더해져 내부에서 하나의 흐름을 형성하거나 밖으로 뻗어 나가는 등 동적인 영역으로 제시되기 시작했다. 능동적으로 변모한 박여주의 공간은 차원을 끌어당긴다는 특징 역시 지니게 되었다. 여기서 차원을 끌어당긴다는 것은 인간에게서 먼 곳에 있거나 인지되지 않았던 차원을 인간에게 가장 직접적인 차원으로 불러들이고 일차원적이었던 것을 다차원적으로 전환하여 준다는 것을 의미한다.

박여주, [매직 아워(Magic Hour)].jpg 박여주, [매직 아워(Magic Hour)], 2015년 dichroic film on lights, 가변설치



박여주, [인피니트 브릿지(The Infinite Bridge)].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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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여주, [인피니트 브릿지(The Infinite Bridge)], 2017년 Perspex, dichroic film, super mirror, LED light

박여주의 설치작품은 하나의 공간을 새로운 성격의 공간으로 전환한다. 전환된 공간 앞에서 관객은 두 가지의 바라봄을 경험할 수 있다. 단순히 바라보는 것으로의 관망과 직접 공간 내부로 나아가며 겪게 되는 마주함이다. 관객은 구조물 각각이 빛과 함께 색을 지니고 벽면의 거울에 반사되어 무한으로 증식되는 방 안으로 나아가며 시각적인 효과의 인지와 더불어 특정한 공간 속에서 이루어지는 비 영속적인 존재의 확장과 전환을 경험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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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간 자체를 시각과 몸으로 경험해 보라고 제안한다. 그것은 마치 오래된 사원 안을 사색하듯 빛과 공간의 기운에 몸을 맡기고 감각과 의식의 접점을 찾으려는 존재의 본질적인 몸부림과 같다. 한편 공간의 안과 밖을 가르는 벽 사이 창을 이용한 라이트 작업은 기능으로서의 빛이 아닌 미학적 현상으로서의 빛을 선사한다. 이는 안과 밖, 성과 속, 공과 사, 사회적 자아와 개인 사이의 경계와 이 사이를 끊임없이 통과해야 하는 인간의 조건을 떠올리게 한다.


“제 작업은 문화적, 철학적 개념인 ‘리미널리티’와 연관성이 있습니다. 리미널리티는 ‘문지방’, ‘경계’ 그리고 ‘두 공간 사이의 복도’를 의미합니다. 프랑스의 민속학자 아널드 반 제넵(Arnold van Gennep)은 리미널리티를 ‘전환의 상태’ 혹은 ‘정체성’이라고 정의하는데 이는 개념적이고 비 영속적인 사람들 사이의 관계 그리고 공간적인 환경의 존재성이라는 문맥 속에서 정의됩니다.”
_박여주
“관객은 제가 만든 구조물 앞에 서서 마치 어떠한 광경을 관망하듯 그 장면을 응시하게 됩니다. 이차원적인 평면적 광경 내에는 공간의 연장, 시간, 속도 그리고 시작, 중간, 끝의 국면이 담겨있습니다. 관객은 수동적으로 구조물을 바라보며 혹은 주어진 길을 따라가며 공간감과 함께 리미널리티의 과정을 인지할 수 있습니다.”
_박여주


베네딕트 컴버배치가 동양의 철학적 사유를 가득 담고 출연한 어벤저스 시리즈 중 닥터 스트레인지.

(개인적으로 잘생김을 연기하는 배우 베네딕트 컴버배치를 좋아해 여러 번 봤던 영화)

닥터 스트레인지에서는 인셉션에서 우리가 이미 봐 왔던 시공간의 뒤틀림을 보여준다.

어둠의 차원, 거울의 차원을 통해 우리가 현재 어디에 있는지 알 수 없는 공간을 만드는데 박여주 작가의 작품이 우리에게 느끼게 해주는 부분들과 일맥상통한다고 생각된다.


착시를 이용한 시공간의 이동, 공간과 공간의 접점 어디엔가 우리가 서 있는, 마치 지금 나는 어디에 있는 건지 알 수 없게 만드는 불안감을 주는 작품들을 주로 선보이고 있다.

알랭 드 보통의 말처럼 작품과 나의 경험이 만나는 접점. 그것으로 관객은 작품을 이해하고 기억을 끄집어내고 다시 작품을 내 것으로 만든다고 했던 것처럼 나 역시 박여주의 작품을 보며 닥터 스트레인지를 봤던 기억을 작품에 입히고 작품 속에 '이날치 밴드'가 노래를 불러보면 어떨까? 를 생각한다.

예술가들에게도 신선한 자극제가 되는 '이날치 밴드'와 박여주의 콜라보가 기다려지는 건 왜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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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좋아하는 작품들의 콜라보

박여주+닥터 스트레인지+이날치 밴드

각각으로도 빛나지만 셋의 결합으로 나는 그들을 기억한다.

예술은 우리에게 그렇게 인식되고 기억되면 어떨까?



아트스페이스 광교 지난 전시 <그것은 무엇을 밝히나> 전에서 박여주와 이날치를 언급했던 부분을 링크해 본다.


외국인들이 좋아할 만한 요소들을 두루 갖추고 있는 이날치 밴드의 '범 내려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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