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moi

엽록소 chlorophyll

by 김상래
너를 자극시키는 뭔가를 발견해 내기를 바란다.
전에는 미처 느끼지 못했던 것들을 느껴보길 바란다.
서로 다는 시각을 가진 많은 사람들을 만나보기를 바란다.
이게 아니다 싶으면 다시 처음부터 시작할 수 있는 강인함을 갖기를 바란다.

_영화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 중

엽록소 chlorophyll

엽록소의 어원은 그리스어의 녹색을 뜻하는 클로로스(chlorous)와 잎을 뜻하는 필론(phyllon)에서 유래.


색이 바뀌는 것은 그전에 있던 색이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색이 올라온다는 거다. 녹색도 있었고 오렌지, 빨강, 노랑도 모두 가지고 있던 나의 색이었다. 다만 때에 따라 그것들이 다르게 보이는 것뿐. 그 안에 다 가지고 있던 색이다.


꿈 많던 아이. 어린 시절, 그림 좀 그린다는 소리를 듣고 자라 자연스레 화가와 디자이너가 되고 싶었다. '인디아나 존스'를 보며 겉모습에 치중하지 않으면서 자기 분야에 푹 빠져있는 근사한 고고학자가 되고 싶었다. 일기는 꼭 써야 한다는 아빠의 가르침 아래 끄적거리는 걸 좋아하다 보니 산문, 운문 가리지 않고 상을 탔다. 그래서 시인이 되고 싶었던 꿈. 앞으로 전망이 좋을 거라며 화실 원장님이 추천해준 전공이 film & video. 자연스레 영화감독의 꿈을 꾸었다. 프랑스 유학시절, 카피라이터를 해 보는 게 어떻겠냐는 제의도 받았다. 그림을 좋아해서 사람들에게 좀 더 쉽고 친근하게 다가갈 수 있게 그림책 에세이스트도 꿈.



어떤 것을 완전히 알려거든
그것을 다른 이에게 가르쳐라

_트라이언 에드워즈


결국,모든 것은 내가 나이고 싶었던 시간들.


모든 일에 회의를 품기 대신 신념에 가득 차길 선택한 것은 필연적으로 나는 나약한 인간이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예술을 사랑한다. 불안하거나 초조한 감정들로부터 살아남기 위해 선택한, 집중의 시간들. 도망가는 나 자신을 데려올 시간. 오랫동안 꿈을 그리는 사람은 마침내 그 꿈을 닮아간다고 앙드레 말로가 말했던가! 여전히 아날로그 감성인 나의 새해 첫 다이어리 맨 앞엔 늘 이 문구가 적혀 있다.


달을 향해 나아가자. 달에 미치지 못하더라도 별들 사이 어딘가에는 있게 될 거니까.

3학년 우리 아이의 그림으로 행복 에너지를 받는다

마흔넷.

꿈과 망상의 차이를 아는 나이. 늦게 시작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고 하다가 중간에 중단하는 것을 두려워하자. 내일 죽을 사람처럼 살고 영원히 사는 사람처럼 누구에게든 배우자. 앞으로의 삶은 놀이에 빠진 아이처럼 살아가자. 조급하게 생각하지 말 것. 삶은 각자의 시간으로 여물어 갈 테니 나 자신이 제대로 숙성되었을 때 비로소 원하던 것을 이루게 될 거니까.


매일의 선택으로 내가 생각하고 행동하는 것에 따라 나의 가치가 형성된다고 생각한다. 스스로 선택하지 못하면 성격이 되고 스스로 선택할 수 있다면 인격이 되듯이. 기억나지 않는다고 무의미한 순간, 시간들이었던 것은 아니다. 눈을 감아도 세상은 사라지지 않고 그대로 있는 것처럼, 잊었다고, 잃었다고 생각했던 조각난 기억들을 닥치는 대로 모두 소환 해 오자. 기억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나를 증명하는 방법에 대해 적어보라고 한다.


글을 쓰고 있는 지금 이 순간이 나에게 기억 소환의 시간들, 나를 증명하는 시간들. 젊은 날엔 날개 없이도 세상천지를 훨훨 날아다녔다면 이제는 그것 없이는 어디에도 갈 수가 없다. 날개를 달아보자. 나에게 내 인생이란 건 누구와 겨루어야 하는 경주가 아니라 나 혼자만의 공간에서 나를 가꾸고 손 보는 일이다. 남들처럼 가지 않는 것이 두렵지 않다. 저만큼 나아가고 있는 사람들이 나보다 앞서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내게 주어진 시간의 길을 모네가 노년에 가꾸던 정원처럼 끊임없이 소중하게 돌보고 가꾸어 가고 싶다. 달팽이가 느려도 느리지 않다는 정목스님의 말씀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