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무 살의 우리는 어느덧

잇지 못한 순간들이 잊지 못할 순간으로 변해가고 있던 날

by 김상래

비가 부슬부슬 내리던 날. 스무 살이었던 우리는 마흔의 중반이거나 마흔 중반을 훌쩍 넘어버린 나이로 망원동 2번 출구에서 만났다. 수원에서 출발해 신도림을 거쳐 합정, 그리고 망원까지 근 2시간이 걸리는 나들이. 매월 꼬박꼬박 2만 원씩 월회비를 낸 것도 벌써 20년. 청춘의 시작을 함께한 우리 모임의 이름은 ‘밴댕이’다. 밴댕이 소갈딱지처럼 속이 좁고 까칠하지만 맛있는 사람들이란 뜻을 가졌다. 까칠한 듯 보이지만 진국인 여자들. 영등포역 뒤편에 우리가 자주 가던 ‘똥꼬 집(똥집과 오돌뼈를 팔던 곳, 딱히 이름이 없이 그냥 포장마차)’에서 ‘밴댕이’를 창단하고 매월 회비를 모아 생일 축하를 하고 여행도 갔다. 20년이 넘어가는 사이, 서른넷의 내가 가장 빠른 결혼을 했고 서른아홉에 SL언니가 결혼했고 마흔하나에 결혼한 BH, 마흔넷에 결혼을 준비하는 NH이가 있고 마흔여섯에 결혼 생각이 없는 NS여사와 ES언니가 있다.


각자가 사는 방식이 달라 서운했던 적도 있었다. 그로 인해 싸우던 날도, 부둥켜안고 울던 날도 있었다. 서로를 이해 못해 다시는 안 만날 것처럼 굴던 시절도 있었다. 이 모임을 계속해야 하나 진지한 생각이 들던 때도 있었다. 먼저 결혼한 내가 아이를 낳고 키우며 이해받지 못했던 시간도 있었다. 한 친구가 결혼하고 아이를 낳으면서 나를 조금은 이해해주었다. 그리고 또 한 친구. 그렇게 우리는 나이를 먹어감에 따라 서운했고 아쉬웠고 미웠던 마음들을 보듬게 되었다. 흰머리의 수를 세며 누가 노안이 빨리 왔는지, 요새 원효로 집값이 천정부지라며, 더는 웹디자인 일은 못 하겠다며, 이 나이에 아이를 갖는 일이 쉽지 않다며, 결혼할 남자가 있는데 집에 인사를 안 시킨다며, 더는 남자에겐 관심이 없다며, 요새 드라마는 막장이 대세라는 얘기를 하는 친구들이 이제는 더는 밉지 않다. 더는 나와 달라 보이지 않는다.

친구들이 내게 서운했던 때, 내가 그로 인해 가슴이 답답하던 그때 글을 썼더라면 조금 더 빨리 친구들을 이해하고 조금 더 자주 만나지 않았을까? 서울에 사는 친구들과 수원에 사는 나의 거리는 마음의 거리보단 가까웠을 터. 멀리 가버렸던 마음들이 하나 둘 제자리를 찾아온다. 세상살이 특별히 슬플 것도 특별히 억울할 것도 없다는 생각이 들게 된 건 글을 쓰면서부터였을까? 3월 생일은 NS와 내가 있다. 월회비에서 생일 자는 15만 원을 받는다. 그리고 각자 주고 싶은 선물이나 원하는 선물을 보낸다. 책을 사는 일은 내 돈을 내어 사게 되지 않는다. 도서관이면 되던 내가 밑줄을 긋는 재미에 빠져 버려 누군가 무얼 사줄까? 물으면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그간 마음에 담아두었던 책 리스트를 하나씩 꺼낸다. 그렇게 나는 이번 내 생일에 4권의 책을 받았다. 그리고 도서관에서 빌려 읽으며 좋았던 책 두 권을 NS네 집으로 온라인 배송을 시켰다. 망원에서 NS를 만나 생일 선물로 책을 사주려고 근처 독립 책방을 찾았지만 문은 굳게 닫혀 있었다.


2시간을 들여 친구들을 만나러 가는 길이 늘 즐겁지 만은 않았던 건 사실이다. 가고 오는 네 시간 동안 만원 지하철을 타는 것도 그다지 즐기지 않았던 탓이다. 가기 전에 집에서 해둘 것과 다녀와서 챙겨야 할 것들이 모두 귀찮고 힘들던 시기가 분명 있었다. 아이가 초등학교 4학년이 되니 친구들을 만나러 가는 지하철 안이 코로나로 인해 인파가 줄었다. 앉아 있을 수 있는 것 만도, 게다가 책을 마음껏 읽을 수 있는 시간이 주어지는 것도 좋았다. 오랜만에 가는 망원동 거리에 새로 생겨난 작고 귀여운 가게들을 보는 재미도 있었다.


직접 책을 사주고 싶어 찾아간 독립 책방이 문을 닫아도 괜찮았다. 돌아 나오는 길에 만난 먹음직스러운 치킨을 보는 재미가 좋았고 깨끗하게 정돈된 망원동 시장의 끝없이 긴 통로를 지나는 길이 즐거웠다. 맛있는 떡집이라며 취향별로 떡을 사도 만원이면 됐고 귤 두 소쿠리에 오천 원 밖에 안 하는 물가 값도 마음에 들었다. 여기 서울이 맞나? 수원보다 물가가 더 싸. '작은 게'를 매콤하게 튀겨 파는 튀김집 앞에서 시식하는 재미, 족발이며 보쌈을 파는 음식점의 트렌디한 간판 앞에서 포장 주문한 음식이 나오길 기다리는 동안 커피가 900원이라며 신기해 들어간 커피집에서 900원짜리 커피를 받아 들고는 대학생 마냥 신이나 홀짝이는 내 모습을 느끼는 내가 마음에 들었다. 커피맛을 보고는 NS와 SL언니, 내가 한꺼번에 웃던 시간도 좋았다. 역시 900원짜리 커피라며... 결국 다 마시지는 못했지만 다양한 재미가 있는 멀고 먼 망원동이 참 좋았다.

호기심이 많고 새로운 것에 도전하길 좋아하는 내가 작은 돈으로 만날 수 있는 세상이 눈앞에 펼쳐짐이 행복했다. 호박마차가 호박으로 변하기 전에 실컷 눈으로 담고 마음으로 즐기고 싶었다. 그렇게 왁자지껄한 곳에서 포장한 음식 몇 봉지씩 담아 들고 망원동, 엘리베이터가 없는 5층 NS네 가는 길이 멀게 느껴지지 않았다. 향긋한 오일 향이 매끄럽고 뜨끈한 바닥에서 폴폴 피어오르고 있었다. 먼저 도착해 장을 본 NS, SL언니와 나는 상차림을 했다. 나머지 세명을 기다리며...


족발, 보쌈, 싱싱한 회, 낚지 탕탕이, 매콤한 작은 게 튀김, 황태 껍데기 튀긴 것, 각종 떡과, 닭발에 오돌뼈, 그리고 야채들. 요새 맛있는 맥주라며 꺼내온 OB맥주. 블랙 화요. ES언니가 들어오고 BH가 들어오고 NH가 마지막으로 들어와 벌겋게 오른 수다 꽃을 피우자니 예전으로 돌아간 것 마냥 익숙했다. 일 년에 한두 번 보는 친구. 왕복 4시간 거리를 오지 않는 내게 서운해하던 그들과 그 거리가 멀게만 느껴지던 내가 마흔 중반을 넘어 만나는 일. 자주 보지 못해도 이제는 더 이상 서운하지 않다는 사실이 감사했다. 그렇게 나이 먹은 게 좋은 날이었다.

잇지 못한 순간들이 잊지 못할 순간으로 변해가고 있던 날. 오랜만에 술잔을 부딪치며 하하호호 낄낄 깔깔. 수다 보따리를 풀던 날. 비 내리던 날, 마음에 비가 걷히던 날.


우리 조금은 더 자주 봐도 괜찮을 것 같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