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들 잘 지내고 있니?

우리들의 1988

by 김상래
삶은 내 곁을 맴도는 대상들과
오해와 인연을 맺거나 풀어가는 과정이다.
_<글의 품격> 이기주


1980년대 초등시절은 모든 것이 넘치도록 행복했다. 사는 것이 여유로워 행복했던 것은 아니다. 모두가 살기 어려웠던 시절임에도 충분히 나날이 따뜻했다. 그 시절 나는 미술, 글짓기, 공부 어느 것 하나 빠지는 것 없이 잘했다. 중학교 중간부터 공부라는 걸 안했으니 지금 잘난 척은 눈 감아 주자. (안 한 거다. 못한 게 아니라. 하하) 그중 가장 좋았던 점은 친구가 정말 많았다. 키도 컸고 학교에서 머리가 길었던 몇 중 하나이기도 했다. 성격이 털털한 면도 친구 사귀기에 좋았던 점 같다. 남자, 여자 할 것 없이 그냥 다 모여서 노는 걸 좋아했다. 친구들이 우리 집에 놀러 오는 날은 동생들과도 함께 놀기도 했다. 모두가 친구처럼 뛰어놀았다. 비가 오는 날은 앞집 친구를 불러내 골목골목 다니며 아는 친구들을 모으고 집에서 가장 가까운 교회 앞마당에 가서 비를 흠뻑 맞고 뛰어놀았다. 미친 듯이 골목을 마구 뛰어다니기도 했다.


HS: 내 친구 중 특히 대장 하기를 좋아했던 친구. 친구들 힘든 걸 못 봐 궂은일을 늘 도맡아 했다. 그래서 반장도 이 친구가 했다. 친구 아빠는 직업군인이셨다. 하지만 한 번도 친구의 아빠를 본 적은 없다. 친구가 초등학교 가기 전에 돌아가셔 엄마와 여동생만 함께 살고 있었다. 이 친구 역시 공부도 잘하고 과학 만들기 대회에 나가 입상도 하는 등 학교에서 부각이 됐었다. HS는 대학을 가지 않고 몇몇 회사에서 일을 하다가 회사를 차렸다. 우리나라 패션계에서는 이름이 있는 G 사에 단추를 납품하는 회사에 대표로 있었다.


DJ: 함께 어울려 놀긴 했지만, 두꺼운 안경을 무겁게 걸치고 어딘가 모르게 어수룩한 모양새에 천재들의 괴짜 포스를 풍기던 친구였는데 아니나 다를까 과학고를 거쳐 카이스트에 들어갔다는 소식을 후에 전해 들었다. 우리 앞 집에 살던 친구다.


SH: 이 친구는 아빠던가 엄마가 교장 선생님이셨고 터울이 한참이나 나던 공부 잘하는 형이 있었다. 그 당시 나는 셜록 홈스에게 빠져있었는데 생일 초대받아 놀러 갔던 친구네 집에 그 책들이 전부 있는 걸 보고는 매일 조금씩 빌려봤던 기억이 있다.

집도 잘 살고 잘생긴 외모에 축구도 곧잘 해 축구 선수가 될 줄만 알았다. 우리 초등학교는 축구부와 체조부가 유명했다. 안면은 없지만, 박지성도 내 초등학교 후배다. 하하

한 인물 하던 친구는 나이트에서 경호를 보고 있고 우리가 범접할 수 없는 세계에 있다고 나중에야 전해 들었다.


HD: 말하기 좋아하고 따지기 좋아하던 이 친구는 졸업식 때 대표로 우등상을 받은 친구였다. 때마다 우리 집 창문 안으로 이것저것 많이 던져 놓고 갔었다. 내 동생들이 그 친구의 초콜릿과 사탕, 곰인형을 엄청 좋아했다. 하하(찬란했던 시절은 초등까지니까 조금만 더 이해하자.) 역시나 똘똘한 친구는 H대 법대를 가서 변호사가 될 줄 알았더니 좋지 않은 술 문화에 빠져 여자관계가 복잡하다는 얘기를 전해 들었다. 초등학교 때도 그렇게 꽁무니를 쫒아다니더니...


DK: 친구 중 유일하게 아파트에 살던 이 친구도 초등시절 참 똘똘했다. 형들이 있어서인지 남자들끼리 쑥덕거릴만한 얘기들을 들고 와선 자기네들끼리 시시덕거리곤 했었다. 원해서 가게 됐는지는 모르겠지만 사회복지학과를 나와 봉사활동을 정말 열심히 했다. 친구들과 만날 때면 아픈 사람들을 보는 게 너무 힘들다며 엄청난 술을 마시고 푸념을 늘어놓더니 결국 간암으로 일찍 세상을 떠나버렸다.


JY: 나와 함께 미술로는 최우수와 우수를 주거니 받거니 했던, 학교에서 유일한 라이벌이었던 이 친구는 미술을 전공하지 않고 중국어를 선택했다. 대학 선배와 너무 일찍 결혼하는 바람에 우울증이 와서 이혼하고 혼자 살면서 디자인을 배워 회사에 취직했다. 남자아이 둘을 두고 나올 만큼 우울증은 심각했던 것 같다. 한 번은 친구 언니에게 다급하게 전화를 받은 적도 있었다. 친구가 연락도 없이 잠적했는데 혹시 연락을 받은 적이 있는지 그렇다면 꼭 좀 친정으로 연락을 달라는 부탁이었다. 내가 기억하던 친구 언니는 호랑이처럼 무서웠다. 친구들이 뭉쳐 놀 땐 시끄럽다고 다른 데 가서 놀라고 호랑이처럼 ‘어흥 어흥‘ 무서운 발톱을 세우기 일쑤였다. 그날 들은 언니의 목소리엔 눈물과 떨림이 뒤범벅되어 있었다. 내게도 연락이 없어 걱정이 이만저만한 큰 사건이 아니었다.


시간이 한참 지나고 나서야 스스로 돈을 벌며 행복하다던 목소리를 수화기 너머로 전해 들었었다. 이제는 아이들을 데리고 올 수 있다고도 했다. 하지만 시간이 너무 흘러 아이들이 자신을 용서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도 했다. 그 후로 친구의 전화번호가 바뀌었고 우리의 연락도 그날이 마지막이었다.


HJ: 유난히 눈빛이 반짝거리던 친구. 역시 공부도 잘하고 똘똘해 인기가 많았다. JY와 함께 가장 친한 여자 친구였다. 언니, 오빠들과 나이 터울이 많았고 부모님도 연세가 있었다. ' 라붐'이라는 프랑스 영화는 이 친구네 모여서 여자 친구 셋이 마음 설레며 봤던 기억이 난다. 6학년 때 HJ의 엄마가 돌아가셨다. 친구네에서 늦은 귀가가 허락되지 않던 우리 집에서도 그날만은 함께 지내고 오라고 허락을 했다. 친구 엄마는 '난파 소년·소녀 어머니 합창단' 이셨는데 노래하러 가시는 도중 교통사고로 돌아가셨다. 오랜 시간 친구가 아주 힘들어했다. 가장 친한 친구였는데 내가 유학을 가 있는 동안 몇 번의 연애를 하더니 가장 안정적인 사람을 만나 결혼을 했다. 이 친구 결혼식 때는 나도 갔었다. (그러고 보니 나는 친구들 결혼하는 동안 결혼의 고리에서 벗어나기 위해 다른 세계로 도망을 가 있었던 것 같다) S대 백신 연구소에서 지금의 남편을 만나 아들 둘을 낳고 유능한 신랑을 따라 미국으로 가 버렸다. 신랑의 대학 은사님이 미국에 있는 대학교 연구직을 제안하셨던 것으로 기억한다. 미국으로 가기 전 우리 아이 돌잔치를 기점으로 역시나 연락이 끊겼다.


따지고 보니 연락이 끊긴 건 모두 내 불찰인듯싶다. 털털해서 좋은 성격은 반대로 말하면 세심하지 못한 사람이라는 뜻이다. 나는 항상 친구보다 내가 우선이었다. 친구들을 챙기지 못하고 늘 오는 연락만 받고 살았던 건 아닐까? 제일 친하게 지냈던 7명의 친구를 모두 떠올렸다. 그 밖에도 친구들이 많았지만 가장 자주, 가장 오랫동안 연락했던 친구들을 생각했다. 선우정아의 '그러려니'를 듣고 있자니 그때의 친구들이 그리워졌다.


첫 번째에 소개한 내 친구 HS는 이 세상 사람이 아니다. 2006년, 잘 나가는 회사 대표였던 친구 사업이 부도가 났다. 내게도 몇 차례 돈을 빌리러 왔었다. 유학 후 돌아온 나에게도 돈은 정말 필요했다. 디자인 일을 하며 꼬박꼬박 모은 돈으로 보험도 들고 공부한다고 벌여 놓은 일에 조금씩 들어갈 일이 있던 터라 빌려줬던 돈은 늦더라도 꼬박꼬박 받아야 했었다. 힘든 일이 있어도 생전 티를 안 내던 친구라 사업이 어느 정도까지 힘든지 알지 못했다. 사채업자들에게 쫓기는 신세였다는 걸 안건 HS의 장례식장에서였다. 나에게 특별히 서운하다며 울고불고하던 친구 부인에게 전해 듣고서야 알게 됐다. 없으면 죽는 것도 아니면서 30만 원을 꼭 받아 냈어야 했느냐던 친구 부인의 말을 들으며 하염없이 울었다. 그렇게 허망하게 갈 줄 알았다면 내가 어찌 그 돈을 돌려받았을까. 두고두고 오래도록 마음이 아팠다.


그 친구가 하늘나라로 간 지도 햇수로 15년이다. 살아 있었다면 오가며 부부끼리 술도 한잔 기울이고 서로 사는 얘기 하며 옛 추억을 떠올리곤 했을 텐데, 하고 싶은 것도 마음껏 못해보고 집안 가장으로 살며 얼마나 힘들었을까? 인생이 정해져 있다면 너무 허망한 것이 아닐까? 어제부터 일곱 친구 중 미국으로 떠난 친구 HJ와 저세상 사람이 된 HS가 참 그립다. 그 일곱 무리 중에서도 셋이 가장 오랫동안 술잔을 기울였었는데….


다들 잘 지내고 있니?

<그녀려니>_선우정아

만나는 사람은 줄어들고
그리운 사람은 늘어간다
끊어진 연에 미련은 없더라도
그리운 마음은 막지 못해
잘 지내니
문득 떠오른 너에게
안부를 묻는다
잘 지내겠지
대답을 들을 수 없으니
쓸쓸히 음 음
그러려니
만나는 사람은 줄어들고
그리운 사람은 늘어간다
끊어진 연에 미련은 없더라도
그리운 마음은 막지 못해
만나는 사람은 줄어들고
그리운 사람은 늘어간다
끊어진 연에 미련은 없더라도
그리운 마음은
그리운 마음은
그러려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