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아픔과 아이의 행복

상투 과자

by 김상래

친정이 가까워 종종 그곳엘 간다.


"유한이가 좋아하는 거 할머니가 사 왔지."

"할머니 뭐 사 오셨어요?"


그렇게 친정 엄마는 '상투과자'를 꺼냈다. 잠실에서 가장 유명한 빵집에서 파는 '상투과자'라며 아이 앞에 놓고는 요구르트에 빨대를 꽂아 주신다.


"우와~이거 진짜 맛있는데, 할머니가 사 오시는 상투 과자가 제일 맛있어요."


빵집엘 가면 그 좋아하는 상투 과자를 아이는 선뜻 고르지 않는다.


"유한이 좋아하는 상투 과자 있는데 이것도 같이 사갈까?"

"상투 과자는 할머니가 사다 주시는 게 제일 맛있어. 할머니가 사다 주실 때까지 기다릴 거야."


할머니가 1년에 몇 번씩 잠실에서 사 오시는 상투 과자를 아이는 특별한 맛이라고 했다. 수원 사시는 할머니가 왜 잠실까지 가서 그 과자를 사 오시는지 처음에 아이는 알지 못했다.

친정엄마와 아빠는 내가 고등학생이던 때부터 정년퇴직하시기 전까지 줄곧 주말부부셨다. 싫은 소리 못 참고 본인 목소리는 꼭 내야 하는 아빠가 수원에서 구미로 발령이 나면서 시작됐다. 처음에는 아빠의 스카프를 동반한 장미 꽃다발 세례와 함께 두 분 사이는 전보다 더 좋아지는 듯 보였다. 시간이 길어지면서 주말에 한 번 오시는 아빠는 주말 낮 바쁘다는 핑계로 집에 있을 시간이 별로 없었던 자매 셋과 엄마에게 서운함을 표시하셨다.


엄마가 아프던 때가 그 무렵인 듯하다. 잘생김과 유머러스한 매력에 빠져, 아빠와 결혼했을 엄마는 위로만 누나가 셋인 2대 독자에 보통이 아닌 시어머니와 막내 시누이의 시집살이로, 딸 셋을 키우며 일하느라 죽지 못해 사셨을 그 세월을 지내고 나니 병이 찾아왔다.

우리 어린 시절, 새벽 4시에 일어나 딸 셋의 도시락을 몇 개씩 정성 들여 싸고 출근을 하셨으니, 잠이 부족한 탓에 잦은 빈혈이 있었다. 철없던 시절 우리는 알지 못했다. 엄마가 몸으로 마음으로 얼마나 힘들었을지 말이다. 내가 대학생이던 때였을까? 서울 아산병원에 막내 시누이, 그러니까 나에겐 막내 고모의 아들인 사촌 오빠가 의사로 있었다. 오빠가 신경 써준 덕에 엄마의 진료받는 속도는 빨랐고 다행스럽게도 간이 굳어가던 ‘간경화’ 초기에 발견해 치료를 시작하게 되었다. 엄마의 간은 3분의 1쯤 딱딱하게 굳어버려 자주 어지럽고 얼굴이 누렇게 떴으며 머리카락은 더없이 빠져나갔다. 그때 난, 배에 알부민 주사를 놓는 엄마를 문틈으로 보고도 별다르게 행동하지 못했다. 영화 나부랭이를 전공하는 대학생이라고 작업실에서 친구들과 인생이 어쩌고 영화가 어쩌고 하느라 엄마를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그렇게 주사를 맞은 날은 이불을 덮고 밤새 끙끙 앓는 소리를 내셨는데도 세 딸 중 누구 하나 엄마를 들여다볼 생각을 하지 못했다. 그저, 우리 엄마는 아픈데도 참 대단하다. 혼자서 스스로 잘 이겨내고 있는 엄마가 그저 인생 최고의 선배 같은 마음뿐이었다.


그 시절, 엄마는 수원에서 잠실까지 버스를 여럿 갈아타고 몇 시간에 걸쳐 병원에 도착해 진료를 받고 돌아오셨다. 성격이 급하고 불같은 아빠의 차를 타고 병원 가는 것을 싫어했기 때문이다. 불편을 감수하고 늘 혼자 그렇게 지치도록 긴 시간을 다녀와야만 했다. 고집스러울 정도로 흔들림 없이 꼿꼿한 엄마는 조선 시대에 태어났다면 양갓집 바르게 자란 규수였을 거라고 나는 줄곧 생각해 왔다. 남에게 싫은 소리 못하고, 부탁 한번 못하는 성격이라 본인에게 주어진 모든 것들을(며느리, 아내, 엄마) 책임감으로 부여잡고 살았으니 어찌 병이 나지 않고 살아낼 수 있었을까 싶다. 엄마가 괜찮아지는 시기에 나는 대학을 졸업하고 취업을 했고 유학을 다녀왔다. 문지방이 닳도록 드나들던 아산병원은 내가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으면서 1년에 2번만 가도 되게 엄마는 좋아지셨다.

아이가 11살이 된 지금은, 1년에 딱 한 번 정기검진을 받으러 잠실에 가신다. 그런 엄마가 잠실 다녀올 때마다 유명한 빵집에서 파는 거라며 아이에게 건네는 ‘상투과자’를 나는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상투 과자 = 엄마의 아픔' 이란 공식이 박혀버려서인지 손이 가질 않았다. 수원 사시는 할머니가 왜 잠실까지 가서 그 과자를 사 오시는지 처음에 아이는 알지 못했다. 할머니가 자신을 위해 사 온 거라며 유별나게 맛있고 특별한 ‘할머니 표 '상투과자' 를 아이도 지금은 맛있게는 먹지만 자주 먹는 건 좋은 일이 아니라는 걸 이제는 알고 있다. '상투과자'를 먹는 일보다 할머니가 아프지 않은 것이 좋다는 것쯤은 진작부터 알았던 것 같기도 하다.


그렇게 상투 과자엔 친정엄마의 아픔과 아이의 행복이 공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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