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 행동의 80퍼센트 이상이 습관에서 나오므로 내 일상을 통찰해 통제하지 않는다면 앞으로도 이제까지와 똑같은 인생이 펼쳐질 것이다.
_<결국 해내는 사람들의 원칙> 중
특별히 못 산 인생은 아니었다. 다만 끝까지 해낸 것이 없는 인생이었다. '결국 해내는 사람들의 원칙'은 정신을 똑바로 차리라는 신호로 읽혔다. 새벽에 일어나 책을 읽고 내게 필요한 내용을 발췌해 노트에 적거나 의식의 흐름을 남기는 것, 정신을 평온한 상태로 만들기 위한 음악, 하루 한편씩 글을 써보는 것으로 내 생활의 어느 부분은 통제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다시 말하지만 대충 살아온 인생은 분명 아니다. '남긴 것은 무엇인가'를 놓고 보자니 하는 얘기다. 글을 적다 보니 문득, 나는 글을 쓰기 위해 많은 길을 좀 돌아서 살아왔던 건 아니었을까 싶기도 하다.
마흔다섯.
아직 갈 길이 창창하다. 새벽녘, 잔잔한 명상음악을 들으며 전시 자료를 뒤적이다 재미있는 작가분을 발견했다.
'신과 함께' 원작자 웹툰 작가 주호민 님의 아버지시기도 하다.
주재환.
넘쳐나는 폐품을 작품의 소재로 다루는 작가분이신데 작업할 때 재료비가 거의 들지 않는다고 한다. 이분의 작품을 칭해 ‘1000원짜리 예술’,‘가난한 예술’이라고 부른단다. 20세기 미술의 시작은 고전주의 미술의 전통 양식을 거부하는 전위 예술가들에 의해 시작되었는데 그것을 ‘레디메이드 ready-made’라 한다. ‘레디메이드’하면 ‘마르셀 뒤샹 Marcel Duchamp’이 떠오른다. 뒤샹이 남긴 유명한 변기 작품 외에도 <계단을 내려오는 나부>라는 작품이 있다.
마르셀 뒤샹 <계단을 내려오는 나부>
주재환 작가님은 뒤샹의 작품을 <계단을 내려오는 봄비>로 재현해 냈다. 물론 이 작품은 미술관 측 자료집엔 그 내용이 없었다. 작가에 관한 내용을 찾다가 발견했는데 작품의 해석이 마음에 들었다. 계단을 타고 내려오는 노란 오줌 줄기를 통해 뒤샹의 작품에 대한 신화적인 면모의 뒤통수를 내리치고 있다. 뒤샹이 전통 방식의 미술을 조롱했다면 주재환 작가의 <계단을 내려오는 봄비> 작품은 뒤샹의 작품을 한 번 더 후려친 셈이 되지 않은가. 이런 거 너무 좋다. 하하
물론 전시장에선 이런 어투로 그림설명을 할 수 없다. 그저 글에다 쓰고 해소할 뿐.
주재환 <계단을 내려오는 봄비>
이분은 또한 독특한 이력의 소유자이기도 하다. 홍대 미대를 중퇴. 60년대 후반, 서울대학병원 정문 옆 파출소에서 야경꾼, 외판원, 방범대원, 월간‘미술과 생활’ 기자 등 정말 여러 분야의 직업을 가지셨던 분이다. 아마도 먹고살기 위해 선택한 삶이 아니었을까 싶다. 다채로운 내 인생도 앞으로 어떻게 펼쳐져 매듭지어질지 아무도 모를 일이다. 희망을 갖자.
수원시립 아이파크 미술관에서는 지금 한창 ‘<□이 살아가는 새로운 방식>展을 하고 있다. 그곳에 주재환 작가님의 작품 몇 점이 전시되어 있다. 사람들이 쓰다가 버린 폐품들을 가져다가 작품으로 승화시킬 수 있다니. 음. 집에서 나오는 쓰레기를 모아 의미를 두면 이런 작품도 만들 수 있겠구나 싶었다. 아이들에겐 더없이 좋은 교육자료가 될게 분명하다.
이렇게 웃으면서 표현했지만, 멀리멀리 사라져 버린 오래전 위인들을 볼 것이 아니라, 작가로 전시장에 작품을 거는 사람들을 보면 위대하다는 생각이 든다. 하루 이틀 그리고 만든 게 아니다. 오랜 세월에 걸쳐 한 가지 일에 몰두했을 때 가능한 일이니 끝마무리가 아쉬운 나는 또 다짐해본다. 인생 2막은 시작함과 동시에 끝을 보리라고. 새벽부터 유쾌한 작품을 보고 나니 하루가 조금은 산뜻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