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ADHD입니까?

실은 당신의 뇌가 '인지 과부하' 상태인 이유

by 김상래

파리라는 화려한 도시의 관계망에서 밀려난 걸 오히려 예술적 자양분으로 삼았던 고갱. 그는 문명의 소음을 피해 찾아든 브르타뉴의 자연 속에서 '혼자만의 시간'을 보냈다.

사물을 보이는 대로 그리는 대신 내면이 기억하는 색채를 재구성하던 고갱. 마음이 느낀 노란색과 붉은색을 과감히 캔버스에 담아냈다. 사물을 보이는 대로 수용하던 뇌의 관성을 끊고, '종합주의'라는 자신만의 필터를 장착한 셈이다. '메타인지'로 자신만의 색을 만든 고갱은 1888년 10월, 비로소 아를로 향한다. 자신과는 너무도 다른 세계를 가진 고흐와 마주하기 위해서 말이다.

속도의 시대, 뇌를 깨우는 거북이걸음의 미학

코로나19가 남긴 고립의 흔적을 지우려는 듯 관계에 관한 책이 쏟아진다. 동시에 한쪽에서는 AI가 등장해 혼자서도 일을 할 수 있다고 외친다. 이런 흐름 속에서 나는 어떤 길을 걷고 있나. 타인과의 관계에 매몰되기 전 먼저 스스로를 단단하게 세울 ‘혼자만의 시간’이 절실하다. 자기만의 내실을 다지지 못한 채 확장하는 관계는 공허할 뿐이다. 실제로 관계의 가치를 아는 사람들은 역설적이게도 홀로 있는 시간을 충분히 견뎌내며 스스로를 벼려온 사람들이다.

숏폼의 시대, 왜 우리는 인내하지 못하는가

0.5초의 스와이프로 모든 감각을 충족하려는 시대. 듄과 같은 방대한 세계관을 탐험하던 아이가 숏폼과 짤의 세계에 빠져들었다. 자극적인 영상은 뇌의 도파민을 즉각 분출시키지만, 이성적 사고와 충동 조절을 담당하는 전두엽의 기능을 약화시킨다.

인내하고 숙고하며 정보를 처리하는 전두엽이 퇴화하면 주의력 결핍과 과잉행동을 보이는 '팝콘 브레인' 현상을 겪게 된다. 즉각적인 자극에만 반응하도록 길들여진 뇌는 천천히 생각할 때 마주하는 설렘이나 불안의 과정을 견뎌야 할 고통으로 인식하며 생략해버린다. 현대인들이 인내하지 못하고 감정을 그대로 쏟아내는 이유이다.

그래서 찾아봤다. 가짜 ADHD와 인지 부하 이론에 대해

만약 스스로 ADHD라고 느낀다면 곰곰이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한 번에 너무 많은 일을 처리하려는 ‘인지적 과부하(Cognitive Overload)’상태일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니까.

심리학의 인지 부하 이론에 따르면 인간의 뇌는 멀티태스킹이 불가능하단다. 여러 일을 동시에 한다고 믿지만 사실 뇌는 아주 짧은 간격으로 작업 전환(Task Switching)을 반복하며 막대한 에너지를 소모할 뿐이다. 이 과정에서 발생하는 전환 비용은 주의력을 분산시키고 뇌를 ‘안갯속’처럼 뿌옇게 만든다고. 결국, 너무 많은 것을 잘해내려는 현대인의 욕심이 뇌의 정렬을 방해해 후천적인 주의력 결핍 증상을 만들어내는 셈이란다.

그런 의미에서 작년 1년 동안 했던 느슨하지만 결과적으로 울트라 러닝이 되었던 느슨한 미술책 읽기 모임: 신경가소성을 깨우는 고강도의 몰입

1,400페이지가 넘는 벽돌 책을 1년 동안 파고든 시간. 책 제목처럼 서양미술사를 ‘새로고침’했을 뿐 아니라 파편화되었던 뇌의 회로를 정렬하여 지식의 신경 고속도로를 구축하는 새로고침의 시간이었다. 학습 전문가 스콧 영이 제안한 울트라 러닝의 핵심인 ‘몰입(Focus)’ 전략과 맞닿아 있다.

뇌과학적으로 볼 때, 이러한 고강도 몰입은 신경가소성을 폭발적으로 자극한다. 정보 수용의 단계를 넘어 뇌세포 사이의 시냅스 연결망을 재구성하여 사고의 임계점을 돌파하게 만든다. 약 1,400페이지의 벽돌 책을 독파하며 겪은 인내는 우리 뇌에 깊이 읽기를 할 수 있는 강력한 신경 고속도로를 깔아준 것과 같은 셈이다. 내면의 힘을 기르는 치열한 수행과도 같았을 것. 디지털 기기에 의존하며 기억력이 감퇴하는 ‘디지털치매’를 막는 가장 능동적인 저항이기도 하다.(느슨하게 읽자고 했지만, 열심히 참여한 분에게는 분명 효과가 있었을 것!)

1,400페이지의 벽돌 책을 무너뜨린 세 가지 전략

첫째, '시간의 덩어리'를 확보하는 몰입(Focus) 전략

울트라 러닝에서 말하는 몰입은 책상 앞에 오래 앉아 있는 인내력이 아니다. 학습을 방해하는 모든 요소를 단절하고, 오직 텍스트와 나만이 마주할 수 있는 ‘고밀도의 집중 시간’을 확보하는 것을 의미한다. 방대한 미술사적 맥락 속에서 주의력을 잃지 않기 위해 세상의 소음을 차단하고 오롯이 한 분야에만 깊게 파고드는 몰입의 시간 말이다.

둘째, 수동적 태도를 버리는 직접하기(Directness)

남이 요약해 준 강의를 듣거나 영상으로 훑어보는 것은 편하지만, 뇌에는 깊이 새기지 못한다. 그래서 강의 대신 텍스트를 직접 읽고 자기 언어로 소화하는 능동적인 학습을 선택했다. 책의 문장들과 직접 부딪히는 과정이야말로 지식을 내 것으로 만드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다.

셋째, 뇌의 회로를 재구성하는 심화 연습(Drill)

이해가 되지 않는 어려운 대목이 나올 때면 멈춰서 반복해 읽었다. 막힌 구간을 회피하지 않고 집요하게 파고드는 ‘드릴(Drill)’ 훈련은 파편화되어 있던 미술사적 지식들을 하나의 견고한 체계로 엮어주었다. 지루할 수도 있는 반복의 시간은 결국 뇌의 회로를 새롭게 재구성하는 ‘신경가소성’의 밑거름이 되었다.(물론, 나는 지루하지 않고 너무 재미있었다. 그래서 비즈니스 모임이 아니길 바랐다.)

청소년기 인문학의 공백과 성인의 갈증

요즘 아이들을 보면 안타깝다(꼰대처럼 보일 수도 있겠지만) 인문학을 공부하고 사색의 근육을 키워야 할 청소년기에 스마트폰의 짧은 자극에 뇌가 노출되고 있다. 성인이 되어 뒤늦게 인문학에 열광하는 이유가 무엇일까. 그 시절 건너뛰었던 ‘나를 찾는 질문’들이 결핍으로 남아 뒤늦게 갈증을 부추기기 때문이다.

인문학은 지식을 쌓는 것이 아니라 휘황찬란한 광고와 거짓 정보의 파도 속에서 메타인지를 발휘해 나를 지키는 힘이다. 내가 무엇을 모르는지, 내 감정의 실체가 무엇인지 모른 채 광고에 뇌를 빼앗겨 지갑을 열고 있는 것은 아닌지 끊임없이 의심해야 한다.

거북이의 걸음으로 뇌를 지키는 법

빠른 세상에서 거북이가 되고 불곰이 된다는 것은 퇴보일까. 외부의 소음을 차단하고 오롯이 내면의 소리에 집중할 수 있는 ‘혼자만의 시간’을 회복한다. 천천히 생각하고 충분히 숙고할 때 마주하는 설렘, 두려움, 그리고 불안의 과정은 인간을 AI와 구분 짓게 만드는 고유한 가치라고 생각한다. 정신을 바짝 차리고 내 걸음으로 내딛는 것, 그것이 가장 빠른 속도로 뇌의 본질을 찾아가는 길이 아닐까. 우리의 뇌가 어떤 속도로 걷고 있는지 주기적으로 살펴볼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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