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바랜 노란 세로 줄무늬 벽지 앞, 소녀의 옆모습이 보인다. 짙은 청색 세라복 상의를 입고 같은 색 리본을 위아래로 묶은 머리는 여성스럽다. 아이는 눈을 감고 연주하고 있다. 자신의 피아노 연주를 믿고 있는 듯하다. 창가에는 등받이가 높은 의자 두 개가 나란히 놓여 있고, 그 너머로 초록빛 잎사귀들이 햇살을 받아 일렁인다. 창을 타고 넘어온 햇살은 거실 가득 온기를 데워주고 있다.
소녀의 의자 바로 옆, 등을 돌리고 앉은 하얀 강아지 한 마리가 보인다. 제법 나이가 들어 보인다. 아이의 연주를 집중해서 듣고 있는 듯하다. 세르게이 비노그라도프의 <피아노 앞에서>는 평범한 일상의 한순간을 그렸을 뿐이다. 하지만 그 일상 속에는 오랜 시간 축적된 정적의 무게와 그 정적을 묵묵히 견뎌온 시간이 담겨 있다.
나 역시 그림 속 아이처럼 아주 오래전부터 예술이라는 창 근처에 자리를 잡고 앉아 있었다. 나의 미술은 우연한 호의에서 시작되었다. 어린 시절, 미술학원에 다니던 막냇동생을 데리러 갔던 날. 원장님은 동생을 기다리는 동안 지루하지 않게 그림이라도 그리며 시간을 보내라며 내게 도화지를 내주셨다. 내 그린 그림을 보신 원장님은 별도의 원비 없이 그냥 와서 그림을 그리라고 말씀하셨다. 그것이 내가 미술이라는 세계에 발을 들인 첫 번째였다.
본격적으로 미술을 배우기 시작한 건 초등학교 5학년 때. 당시 학교에서 그림으로 늘 1, 2등을 하던 친구와 단둘이 어느 개인 교습소에 다니게 되었다. 마당 넓은 이층집 한편에서 예쁜 선생님이 운영하시던 공간이었다. 초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우리는 그곳에서 선의의 경쟁을 펼치며 하얀 종이를 채워 나갔다. 중학교에 올라가며 친구는 그림을 그만두었고 나는 사람이 드문 조용한 화실에 남아 주로 수채화를 했다. 당시 나는 세잔이 그린 사과처럼 꽤 특이한 방식으로 사과를 채색하고 있던 모양이다. 내가 칠한 사과를 유심히 보시던 원장님은 내 그림 스타일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따로 있을 거라고 했다. 아마도 일반적이지는 않았던 모양이다. 어린 나는 그렇게 나만의 색깔이 있다는 게 좋았다. 누군가를 따라 하는 게 끔찍이도 싫었다.
예고 진학을 간절히 바라던 시기도 있었다. 당시 다니던 중학교는 미션스쿨로, 담임 선생님은 예고를 소위 ‘날라리’들이 가는 곳이라며 반대하셨다. 결국 나는 일반 고등학교로 진학하게 되었다. 부모님은 내가 미술 선생님이 되어 얌전하게 학교 다니다 시집가기를 바라셨을 거다. 고등학교 2학년 때 수채화에서 디자인으로 진로를 변경했다. 졸업하고 취업해야 1인의 역할을 하게 되니까. 돌이켜보면 나의 성장은 늘 미술과 뗄 수 없는 환경 속에 있었다. 누군가에게는 입시를 위한 치열한 도구였을지 모르나, 나에게 미술은 삶 그 자체였다.
학교와 학원을 오가는 생활이 아주 어린 시절부터라 어디 엉뚱한 곳으로 벗어날 생각도 해본 적이 없다. 미술의 세상 속에서 자라왔음에도 불구하고 내가 과연 이 거대한 세계의 일원으로서 당당히 제 몫을 하고 있는지에 대한 의구심이 있었다. 내 것에 대한 갈증. 실기가 아닌 학문으로서의 미술, ‘미술사’의 영역은 높은 성벽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대문자 T 성향의 남편은 언제나 나를 응원한다. 다정하고 친절하게 나의 길잡이가 되는 것은 아니지만 정확하게 내 상태를 짚어주고 객관적인 이야기를 건네준다. 결국 중요한 건 전문 분야에서 글을 쓰는 것.
이성과 논리로 건넨 말들은 전형적인 'F'인 나에겐 차가운 조언처럼 들리곤 한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고 난 뒤엔 정확히 그의 말이 맞더라. 나는 겪어내고 나서야 비로소 깨닫는다.
《첫 번째 미술관 북마크》가 그간 썼던 책과 남다른 이유. 오래 쓴 책이라서이기도 하지만 서점의 분류 기준에 드디어 ‘미술론/미술사’ 카테고리에 진입했다는 것. 누군가에게는 그저 데이터상의 분류일 뿐이겠지만 미술의 주변부에서 서성이던 나는 이제야 내가 있던 곳에 다시 발을 붙인 기분이다.
그림 속 소녀가 수천 번의 연습 끝에 마침내 완벽한 곡을 완성해 내듯, 나 역시 수년간 도슨트로 활동하며 관람객과 미술 사이의 거리를 좁혀온 시간들이 헛되지 않았음을 증명받은 기분이다. 이제야 비로소 내가 자라온 세계에 진입했다는 안도감. 앞으로 내가 써 내려갈 글들의 이정표가 되어주겠지. 미술사적 관점의 글쓰기. 앞으로 내가 집필할 책들의 우선순위가 조금 더 명확해졌다. 나는 더 깊게 파고들 것이며 더 본질적인 질문을 던질 것이다.
언제나 한 발씩, 차근차근, 내가 어디로 가고 있는지 정확히 알고 걷는 것. 조급함에 등 떠밀려 뛰어가기보다는 피아노 앞의 소녀처럼 묵묵히 같은 자리에 앉아 건반을 정확히 짚어가며 나만의 리듬을 탈 것.
기록되지 않은 날들은 기억의 저편으로 사라지고 만다. 그렇기에 나는 계속해서 쓰는 사람으로 살아가기로 나와 약속한다. 남겨진 문장들이 나의 삶을 증명할 것이며, 내가 사랑하는 미술의 세계를 더욱 견고하게 만들어 줄 것이라 믿는다. 비노그라도프의 햇살이 여전히 캔버스 위에서 빛나고 있듯이 나의 이 여정도 누군가의 마음속에 따뜻한 북마크로 남기를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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