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모두 늙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늙으면 추해지기만 한다고 생각해 늙는 것을 싫어합니다. 잘 물든 단품은 봄꽃보다 아름답습니다.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 중 하나가 잘 늙은 것입니다.
많은 사람은 늙으면서 자신뿐만 아니라, 남들도 힘들어지는 것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잘 늙는다면 자신은 물론 남들도 힘들어지지 않을 것입니다. 잘 늙은 노인은 젊은이보다 아름답습니다.
_법률스님
“언니는 요새 봄 같아.”
엘리자베스 아덴 ‘그린티’가 떠오르는 말이었다. 수많은 상념들을 꺼내 놓고 오늘도 나와 마주한다.
끄적임은 내가 나와 성실하기로 한 약속이다. 나의 내면과 만나기로 약속한 시간, 의식의 흐름, 그것이 흐르는 대로 내버려 두는 것. 10대엔 학교, 화실, 집 밖엔 몰랐e다. 20대엔 과제하느라 컴퓨터 배우러 다니느라 회사 끝나고 친구들과 노느라 유학 다녀오느라 바빴다. 30대엔 일하고 결혼하고 아이 낳고 키우느라 바빴다. 40대엔 여전히 아이 키우느라 ‘나는 나로서 다시 어떻게 살아야 하나’로 바쁜 시기이다. 아이가 커가며 나도 함께 성장해야 한다는 생각인데 생각처럼, 말처럼 쉽지가 않다. 그런 나에게 최근에 막내 동생이 ‘언니는 요새 봄 같아’ 하고 던져 준 말이 너무나 듣기가 좋았다. 내가 살아있다고 말해주는 것 같았다. 다시 예전의 나로 돌아간 것 같다며 활기차 보여 좋다는 말이었다. 가족이 보기에도 나는 어딘가에 갇혀 있는 것처럼 보인 모양이다. 할 수 있는 게 많은데 '왜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느냐'는 그 말이 참 가슴 아팠다.
'당신은 내가 아니잖아' 나 혼자 빠져나가 보려고 무던히도 애쓰던 시간들. 누구든 나는 아니니까. 그저 마음 추스를 시간이 조금 많이 필요했던 것뿐. 매일 같이 도서관을 다니며 아이와 함께 책을 펼쳤다. 전과는 좀 다른 인생을 살아보고 싶은데 ‘어떻게 해야 하나’를 하루에도 몇 번씩 생각하고 살았다. 마음은 밖으로 꺼내어지지 않는 거니까. 나이 어린 엄마들이 내 아이와 같은 또래의 아이를 키우는 모습을 보며 ‘에너지가 있어서 참 좋겠다’. 젊은 엄마들은 ‘아이도 키우면서 자기도 잘 가꾸는구나’.(물론 외향적인 부분이라 그다지 욕심이 나지 않는 부분이었지만)했다.
흰머리가 나기 시작한 건 스물아홉. 혼자 하는 유학생활이 그렇게 쉽지만은 않았던 것인지 생각해야 할 것들이 많았던 것인지 할아버지 유전이었던건지 지금 내 흰머리는 또래에 비해 굉장한 편이다. 신랑은 내 흰머리를 좋아한다. 마치 벽오금학도에 나오는 흰머리 소년이라도 생각하는 건지...
이외수의 장편 소설 '벽오금학도'
차라리 그 흰머리 소년처럼 ‘자고 일어났더니 백발이 되었더라’라면 중간의 어설픈 과정을 거치지 않아도 좋을 텐데 말이다. 염색한 머리는 15일을 채 넘기지 못하고 삐죽삐죽 밉살 맞게 튀어나온다. 미용실 가는 돈이 아까워 저렴하게 구입한 염색약으로 혼자 염색을 했다. 윗부분은 눈을 자꾸 치켜뜨면서 하자니 눈도 아프고 머리도 아프고 사방팔방에 다 묻어서 안 되겠다 싶을 때 신랑에게 SOS를 청했다. 자주는 아니지만 특별한 일이 있을 때는 나이보다 많은 흰머리를 감추기 위해 신랑 미용사를 부른다. 아주 꼼꼼히 정확하게 일 처리를 잘하는 신랑 미용사 덕분에 지금 나는 한층 젊어 보인다.
자연스러운 것. 사람은 시간을 거스를 수 없다. 보톡스를 맞고 주름을 당기는 시술들은 오래가지 않는다. 결국 민낯의 나와 언젠가는 마주하게 될거다. 염색 없이 선 흰머리의 나와 마주하게 될 날 앞에 미리 내면을 강화하는데 더 힘쓰는 것이 맞는 이치가 않을까? 어디에든 가장 좋은 건 독서겠지만 나이가 들면서 독서만큼 내면을 강화하고 나를 나로 온전히 바라보게 하는 힘을 가진 무언가를 본 적이 없다. 주말을 제외하고는 티브이를 보지 않는 나의 일상에 사람들은 어떻게 사냐고들 한다. 그것 없이도 재미있는 게 너무 많은 '자발적 이방인'인 나.
햇살을 맞으며 꼭 붙어 앉아 책 읽을 때 행복함을 느끼는 아이와 나
아이는 부모를 따라 책장을 펼친다.
도서관 들러 몇 권의 책을 빌려와서 읽다 보면 하루가 금방 간다. 그렇게 아이는 책 빌리러 가는 엄마와 함께 도서관에서 마음에 드는 책들을 집어 든다. 한 보따리를 자전거에 싣고 돌아오는 길은 룰루랄라~ 엄마 옆에 앉아 조용히 책을 읽어 나가는 아이. 사랑스러운 아이를 보며 나도 책장을 넘긴다.
아이는 부모를 따라 책장을 펼치게 된다. 어릴 때 부모와 함께 만들어간 독서의 힘으로 평생을 건강하게 살아갈 자양분을 얻는다. 한때 화려하게 피어 있는 봄꽃들보다 가을의 묵직한 나무들이 더 아름답다는 사실을 아직 완전히 느끼기에 부족하다. 허나, 그 말들이 어떤 느낌인지 서서히 알아가고 있다. 마냥 젊어지려고 애쓰는 것보다 성숙해 간다는 것. 그것이 주는 근사함이 요새 그렇게 매력적이지 않을 수가 없다.
흰머리가 가득할 시기가 곧 오겠지. 잘 물든 단풍으로 내가 만족하는 모습으로 살기 위해 오늘도 나와 마주한다. 내가 쓴 글들, 내가 읽고 있는 책, 내가 듣고 있는 음악, 내가 공부하는 모든 것 속에 잘 물들어 가는 내 모습이 깃들어 있다. La joie de vire. 일상의 기쁨
아이가 엄마 글 쓰라며 직접 주워 씻어 말리는 낙엽들
무조건 일단 시작하라.
행동은 그 자체에 마법과 은총, 그리고 힘을 지니고 있다.
터닝 포인트! 웹디자이너를 그만두고 싶었던 찰나. 프로젝트 한번 하면 월 500만 원 이상은 벌 수 있는 아주 괜찮은 직업(회사를 다닐 때는 투잡으로 프로젝트를 몇 건씩 함께 했었다. 수입이 아주 좋았다.) 임에도 불구하고 당장 눈앞의 돈 보다 더 깊고 넓게 생각하며 흰머리 할머니가 되어도 열정으로 할 수 있는 일, ‘제2의 인생’을 찾고 싶었다.
‘거인의 어깨 위에 올라 보자’하며 살았던 인생이었다. 하고 싶은 건 해야 직성이 풀리는 성격이었다. 결혼하고 아이 낳고 참 많이도 변했다 싶으면서 여전히 무언가 내 안의 갈망을 놓아 버리지 못하고 살던 것이 도슨트로의 내 인생의 또 다른 시작점으로 결국, 나는 하고 싶은 건 해야 하는 여자, 사람이었다.
내 삶이 미지근한 바람처럼 흘러가기를 바라지 않는다.아이와 함께 연극을 보러 다니고 공연이 끝나면 바쁜 신랑 대신 나와 데이트 기분을 내주던 곁의 아이와 손잡고 미술관엘 다녔다. 이 곳에서 재미있게 전시설명을 해주던 근사해 보였던 도슨트를 하게 되면서 첫 도슨트 때 엄마를 너무 자랑스러워하던, 그것이 특히 자발적 봉사라는 점에서 아이는 내가 더욱 멋있게 빛났다 라고 얘기해 주었다. 2살부터 나와 함께 대학로 이곳저곳, 정동 세실극장, 예술의 전당, 천안, 강남, 다니지 않은 곳 없이 늘 내 품속이었던 그 작은 아이가 어느덧 10살. 초등학교 3학년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