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꼼꼼치 못한 엄마 덕에 행복한 아이

제주도를 비즈니스로

by 김상래

몇 해 전 봄이었다. 아파트 임시 '입대의'를 하며 친하게 된(손발이 척척 맞던 친구) 옆 동 사는 HY와 유한이를 데리고 제주도행 계획을 짰다. HY는 초등학교 선생님으로 유한이를 너무 좋아했다. 제주도는 눈 감고도 갈 수 있다고 했다. 그녀는 황금 같은 휴가를 우리의 제주도 가이드 역할로 알뜰하게 사용하고 싶다고 했다. 신랑은 중국 출장을 앞두고 있었다. HY와는 제주 공항에서 만나기로 약속을 하고 신랑이 출장을 간 다음날 공항 리무진을 타고 인천공항으로 갔다. 발권을 하려고 보니 출발 날짜의 시간과 도착 날짜의 시간이 바뀌어 있었다. 아차! 차곡차곡 쌓인 마일리지를 써보자 했던 일이 꼬여버렸다.


“같은 시간대에 좌석이 아예 없는 건가요?”

“네, 오전 시간대는 자리가 없는데, 잠시만요. 제가 전화를 좀 해볼게요.”

...

“같은 시각에 비즈니스 자리가 남아있다고 하는데 괜찮으세요?”

“비즈니스요?”

“네. 좌석이 꽉 차서 같은 시간대에 다른 좌석은 없다고 하네요. 급하게 알아보니 비즈니스석은 타실 수 있으실 것 같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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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 한 시간이 조금 넘는 비행거리를 비즈니스석을 타고 가는 일.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단 한 번도. 차량, 숙소 모두 예약해 두었고 비용은 반반씩 내기로 했는데 출발을 늦추기가 싫었다. 무엇보다 얼른 따뜻한 곳으로 날아가 아이와 여행을 하고 싶었다.


“항공권 발권해 주세요.”

“네 그럼 비즈니스석으로 같은 시각 두 분 해드릴게요”


아들과 대한항공 비즈니스 석에 탑승했다. 그때 생각에 아직도 웃음이 난다. 비행기가 이륙하기 전 넓은 좌석에 앉아 다리를 쭉쭉 펴던 유한이가 비행기가 웅~하고 커다란 소리를 내자 이내 내 팔을 잡고 눈을 꼭 감았다. 안전하게 하늘로 오른 비행기 안. 예쁘고 단정한 승무원 누나가 유한이에게 아이스크림을 줄까 하고 물었다. 거절할 이유가 없는 아이는 연신 고개를 신나게 끄덕였다. 승무원 누나가 가져다준 초콜릿 아이스크림을 입에 묻혀 가며 달달함을 즐기고 있던 아이의 얼굴에 초콜릿 향이 피어올랐다. 아무리 주변을 둘러봐도 조용하고 널찍한 비즈니스 칸엔 우리밖에 없었다. 참새 한 마리와 꼼꼼치 못한 엄마. 혀로 싹싹 핥아먹던 아이스크림이 끝나니 당분이 보충된 참새가 입을 열었다.


“엄마, HY 이모는 어디에 있어? 아이스크림이 너무 맛있어. 다음에도 우리 이거 타고 가자.”

“응. 이모는 제주공항에서 기다리고 있을 거야. 엄마 마일리지 또 쌓이면 다음엔 더 먼 곳으로 비즈니스 타고 가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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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마디 주고받지 않았던 것 같은데 제주공항에 벌써 도착을 한단다. 또 웃음이 났다. 차곡차곡 쌓아둔 마일리지를 제주도행 비즈니스에 쓰게 될 줄 누가 알았을까.


꼼꼼치 못한 엄마 덕에, 그날 그 시간, 아이는 행복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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