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eat. 알람브라 궁전)
2010년 5월 8일. 나는 어버이날 결혼했다. 평소 말 안 듣는 딸이었기에 결혼만은 효도하자는 의미에서 어버이날로 잡았다. 신혼여행지로 우리는 태양의 나라 스페인의 최남단 말라가를 선택했다. 평소 한여름을 좋아하는 내 취향이 고스란히 반영된 선택이었다. 우리의 계획은 말라가에서 세비야, 네르하, 그라나다를 가는 일정이었다.
인천공항에서 출발해 샤롤 드골 국제공항에 도착해 작은 비행기로 갈아타고 말라가에 도착했다. 경비행기를 탄 덕에 착륙하면서 엉덩이가 쿵~하는 느낌도 추억으로 남았다.
말라가는 ‘피카소’와 ‘호안 미로’의 고향이기도 하다. 5월의 말라가는 한국보다 따뜻하다. 프랑스에서 3년을 지내는 동안 문틈으로 들어오는 추위를 그대로 안고 살아서인지 유럽은 무조건 따뜻할 때 가야 한다는 선입견이 내겐 좀 있는 편이다. 으슬으슬 뼛속을 파고드는 추위를 좋아하지 않는다. 그래서 스페인에서도 최남단에 있는 말라가를 선택했다. 5월 초·중순의 스페인은 그야말로 천국 날씨가 될 게 분명했기 때문에.
우리는 첫날만 숙소를 예약해 둔 상태였다. 상황을 봐가며 더 좋은 곳이 생기면 그 근처에 숙소를 정하자는 취지였다. 스페인에서도 프랑스어는 통했고 내 프랑스어는 그때까지만 해도 나쁘지 않은 소통의 수단이었다. 숙소는 시내 골목길에 자리 잡은 부티끄 호텔로 가성비가 꽤 괜찮아 첫날 1박을 했다.
알람브라 궁전이 있는 그라나다로 간 건 5월 14일이었다.
말라가에서 네르하로 이동하고도 며칠이 지나서였다. 원래 일정이었다면 진작에 도착하고도 남았을 텐데 유럽의 발코니가 있는 네르하의 쏟아지는 태양은 우리를 그곳에 더 머무르게 했다. 중간 일정들을 생략해버렸다. 어차피 정확한 계획은 없었다. 들러보고 마음에 드는 곳이 있으면 그냥 그곳에 더 있자 생각했다. 네르하에서 좌석버스로 2시간가량을 북쪽으로 올라가면 그라나다가 나온다. 5월 중순의 그라나다 날씨는 생각보다 쌀쌀했다. 아니 추웠다. 준비해 간 옷들은 모두 따뜻한 봄날에 맞춘 것들인데 바람이 많이 불고 날이 흐렸다. 내 옷만 가지고는 너무 추워 신랑의 큰 옷들을 헐렁하게 덧입고 다녔다. 취향들이 각양각색인 곳에선 내가 무엇을 어떻게 입고 다니든 누구 하나 신경 쓰지 않았다. 그 점이 마음을 편하게 했다.
‘알람브라 궁전’은 80년에 걸쳐 만들어진 궁전 겸 요새다. 프랑스 유학 당시 18구 몽마르트르 아래 작은 스튜디오에 6개월간 살았다. 그곳은 아랍인과 흑인들이 많이 거주하던 곳으로 한인들이 꺼리는 곳이었다. 그 당시 내가 가진 돈으로는 그곳도 감지덕지했고 무엇보다 몽마르트르 언덕을 걸어서 10분이면 갈 수 있다는 것만으로 나는 감사했다. 6개월은 몽마르트르로 산책하러 다녔다. 살다 보니 아랍인들의 문화가 굉장히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보헤미안의 피가 흐르는 나에겐 그때의 독특했던 그들의 문화를 스페인에서도 느껴보고 싶었다. 스페인의 문화와 함께 존재하는 이슬람식 궁전이 궁금했다.
‘알람브라’는 아랍어로 ‘붉은 성’이란 뜻이다. 붉은 철이 함유된 흙으로 벽을 지었기 때문에 성벽이 붉은색을 띤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이슬람 무어인들의 예술과 르네상스 양식 등 다양한 건축 기술이 섞여 있는 곳이다. 아픈 역사가 있지만, 그것으로 인해 세계적인 명성을 얻는 곳.
‘알람브라 궁전‘은 시간당 입장객 제한이 있다. 그라나다에 도착한 첫날은 티켓 예매를 깜빡하고 무작정 미니버스를 타고 그곳으로 갔었다. 역시나 매진으로 들어갈 수 없었다. 우리는 행선지를 산니콜라스 성당 쪽으로 바꿨다. 걷는 데는 늘 자신 있었기 때문에 30분을 걷는 것은 문제가 되지 않았다. 길을 걸으며 본 그라나라 풍경 속엔 세그웨이가 있었고 가로수길마다 커다란 콩 나무들이 즐비하다는 사실도 색다르게 다가왔었다.
독특한 문화를 기억에 저장하고 있었지만 추운 건 어디 안 가고 내 옆에 꼭 붙어 있었다.
산 니콜라스 언덕 담벼락에 앉아 입장도 못 한 알람브라 궁전을 그저 정면으로 바라만 보았다. 그 와중에 다이어리에 그때의 감정을 담고 있었다는 건 뒤늦게 사진을 들추면서 알게 된 사실이다. 너무 추워 커피 한잔하러 들어간 곳에서 진한 에스프레소를 마시면서도 춥기는 매한가지였다. 평소 커피를 즐겨 마시던 편은 아니었지만, 그날만은 에스프레소를 진하게 마셔둬야 추위를 이길 수 있을 것 같았다.
문제는 그때부터였을까? 시내 한 레스토랑에 저녁을 먹으러 도착했을 땐 입술은 파랗고 손발은 차디찬 상태라 음식을 시켜 놓고도 먹을 수가 없었다. 나는 그저 편안한 숙소로 돌아가고 싶은 심정이었다. 내 접시가 그대로 있자 상태를 알았던 건지 단지 음식이 맛이 없어 손을 못 댔다고 생각했던 건지 레스토랑 주인은 신랑의 비워진 접시에 대한 값만을 요구했다. 신랑은 고맙기도 미안하기도 하다며 신랑 몫과 함께 약간의 팁을 접시에 담아두고 함께 나왔다. 그리고 숙소로 돌아와 침대에 몸을 뉘었다.
생각해보면 그땐 체한 것 같아서 한국에서 준비해 간 소화제를 먹고 힘들게 나머지 시간을 버텼던 것 같다. 글을 쓰며 다시 꺼내 본 내 기억은 그때 분명 그 에스프레소가 날 힘들게 했던 게 분명하다. 지금은 하루 한 잔 정도의 커피를 마시지만 한 샷 이 상일 때는 늘 속이 편하지 않다. 각성효과로 심장이 두근거리거나 속이 아려 온다.
알람브라 궁전은 다음날, 조금은 따뜻해진 날씨 속에 제대로 둘러봤다.
알람브라 궁전의 추억이라 글을 쓰기 시작하곤 정작 알람브라 궁전을 둘러봤을 때의 기억이 떠오른 게 아니라 그곳에 들어가지 못한 날의 하루를 쓰고 있다. 평소 스타일대로 여유 있게 다녔다고 생각했는데 아프면서까지 하루 일정을 끝까지 붙들고 있었다는 사실을 새삼 알게 되었다. 기억하고 싶은 날과 기억나는 날은 분명 다르다. 알람브라 궁전의 추억이라 적고 미련했던 날의 기억이라 불러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