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슨트 엄마와 미술관에서 놀기

함께 성장하는 우리

by 김상래

보통의 도슨트는 사실 봉사실적이 쌓인다. 서울에서 열리는 유명한 전시의 경우는 도슨트가 전시회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꽤 높은 거로 알고 있다. 도슨트 계의 원로(나보단 젊은 분) 김찬용 도슨트처럼 이 일을 직업으로 꾸준하게 해 온 사람은 드물다. 꾸준한 시간이 지금의 그를 빛나게 하고 있는 건 아닌가 싶다. 한 우물만 뚝심 있게 판 결과가 요새 기분 좋게 이곳저곳에서 보이니 전혀 친분이 없음에도 굉장히 뿌듯하다.

아이와 함께 도슨트하러

최근엔 그의 뒤를 이은 젊은 도슨트들이 다양하게 생겨났다. 전시회 몇으로 일약 아이돌처럼 스타가 된 도슨트도 있으니 그를 일컬어, 도슨트계의 유노윤호라 부른다. 정우철이 가장 대표적인 예일 테고 윤석화, 한이준도 인기가 좋다. 이런 내용은 그저 관심도가 꾸준히 그 사람들에게 있기 때문이다. ‘알폰스 무하’ 전을 기점으로 정우철 도슨트는 EBS ‘클래스 e’의 미술 극장 자리를 맡아, 젊은 여성들이 그림에 열광하게 만들었다. 팬덤도 두텁게 형성되어 그야말로 도슨트계의 아이돌, 피리 부는 사나이가 되었다. 최근 '마티스' 전을 하며 <내가 사랑한 화가들>이라는 책을 내기도 했다.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아 빛의 속도로 성장해 가는 그를 보며 그저 청춘이 조금은 부럽다 생각했다. 윤석화의 경우는 실제 매일 그림을 그리며 매달 월간지를 발행하고 있다. 도슨트는 어떤 복장을 해야 한다는 정석(작품을 위해 검은색 위주의 복장, 일명 장례식 복장)에서 벗어나 자기만의 개성 있는 패션으로 전시장을 지휘하고 있기도 하다. 작품을 하는 데도 좋은 시너지가 날 그것으로 보인다. 한이준의 경우는 내가 좋아하고 유한이가 좋아하는 ‘에르제 땡땡’ 전에서 아이들의 전용 도슨트가 되어 인기몰이에 나서더니 현재는 다양한 곳에서 강연, 기획, 기고를 하고 있다.


그밖에도 도슨트들은 정말 많다. 하지만 일약 인기 대열에 오르는 도슨트들은 어느 정도 정해져 있는 듯싶다. 20, 30대 도슨트들이 최상위에 포진해 있고 60대 이후, 아이들을 다 키워놓은 시니어 도슨트들이 인생 제2막을 열어가며 다양한 곳에서 활동하고 있다. 그렇다면 40대의 딱 중반인 도슨트들은 어떨까? 사실 내 주변엔 없다. 기혼 여성이라면 아이를 한창 키우고 있을 시기이고 미혼이라면 굳이 남은 열정을 꼭 이곳에 쏟을 필요가 없을 것이다. 어딘가에 자리 잡고 안정기를 이미 넘긴 시기일 테니. 게다가 일반적인 도슨트들은 봉사실적이 주어지는 문화자원봉사자로 되어 있는 게 현실이다. 그런데도 도슨트가 되려면 통과해야 할 수순이 있다.



어제 전시장엔 관람객이 너무 없었다. 월요일이 보통 휴관이니 다음 날이기도 했고 비가 온 다음날이어서 더 그랬을 것이다. 맞춤형 수준의 도슨트를 하며 인원이 적음에도 떨리는 나를 발견했다. 회사 다닐때 같으면 회의도 주관하고 발표 자료 만들어, 앞에 나가 말할 기회가 많았지만 그게 벌써 언제적인가. 코로나로 침체기를 맞은 건 비단 나뿐만은 아니니 너무 지금을 탓하지 말자. 덕분에 열심히 책 읽을 시간이 주어졌다고 생각하자. 좋은 생각. 긍정적인 생각.


그래. 어제는 아이가 등교 수업이 아니라 온라인 수업이 있던 날이었다. 매시간 과제가 있으니 6교시 과제까지 점심도 못 먹고 부랴부랴 마치고 나오느라 떡 몇 조각 입에 문 게 다였던 점심시간. 아이와 함께 미술관엘 갔다. 관람객이 찾기 전에 아이와 체험 부스에서 그림 그리고 책도 읽었다. 어떤 부분에서 내가 좀 더 신경을 쓰면 좋겠는지 꼼꼼하게 체크를 해 준 덕에 도슨팅 할 때 그 부분을 좀 더 생각하게 되었다. 엄마가 도슨트 하고 있을 때 엄마의 얘기를 듣기도 하고 관객의 반응을 살피기도 한 모양이다. 해설이 끝나고 역시나 피드백을 해 주더라. 관객을 기다려준 점은 좋았고 목소리가 조금 더 크면 좋겠다는. 하하


한 타임이 끝나고 아이와 대기실에서 책을 읽고 있는데 그 시간이 왜 그리 충만하게 다가오던지. 그저 엄마 옆에 앉아 의연하게, 대견하게 앉아 있는 것 자체만으로도 힘이 나던 시간이었다. 엄마가 예전과는 다른 길에서 조금씩 성장하는 모습을 아이도 옆에서 지켜보며 함께 커가고 있다. 그러고 보니 아이가 몇 주 전부터 '너프 건'을 갖고 싶다고 했다. 신랑은 하루에 3개씩 용기 있는 일을 하면 어린이날 '너프 건'을 사주기로 약속을 했다. 아이는 아빠와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발표도 제일 열심히, 과제도, 영어 공부도 열심히 하면서 조금씩 자신 안에 감춰져 있던 자신감을 찾아내고 있다. 또 다른 자기 모습이 나쁘지 않은 모양인지 요즈음 온라인 수업 분위기를 주도해 나가고 있기도 하다. 그룹 수업에서도 리더 역할을 도맡아 하니 몇 주 전까지 부끄럼 타던 아이는 과연 누구인가 싶을 정도다.아이가 책을 좋아하니 지문 읽는 속도나 이해도가 빠른 점이 학습에서 점점 더 빛을 보고 있는 듯싶다. 특히 4학년부터는 서로의 생각을 말해보는 그룹 토론 수업이 과목마다 있다. 의외로 그런 수업이 아이에게 맞았다. 서술형에선 막힘이 없는데 꼭 연산에서 실수하던 것도 마찬가지로 이해하는 속도가 빨라지고 자기만의 계산법을 찾아 나가니 어제 같은 경우는 선생님의 오답을 찾아내기도 했다. 문제 풀이 선행을 전혀 하지 않기에 수업 집중도가 높아서 가능한 일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요새 그런 아이의 모습이 이쁘기도 해서 도슨팅이 끝나고 교보문고에 데려가기로 약속을 했다. 서점에서 책 보는 일은 가능하나 직접 새 책 사주는 일은 드문 일이라 고민이 좀 됐다. 생각해보니 내 생일날 엄마에게 받았던 생일 자금 10만 원과 교보문고에서 날아온 생일 축하 10% 할인 쿠폰이 있었다.

광교 갤러리아 백화점으로 뛰어가고 있는 아이

'Be 정상' 전이 열리는 아트스페이스 광교 옆엔 건축계의 노벨상인 '프리츠커상'을 수상한 세계적인 건축가 '렘 쿨하스'가 디자인한 갤러리아 광교가 있다. 구름이 건물을 뭉실뭉실 덮고 있는 듯한 형상의 예술 작품 속에서 아이와 점심 겸 저녁을 먹고 온통 빛이 관통하는 스카이 워크를 걸었다. 짧은 데이트를 끝내고 맞은편 교보문고로 향했다. 작년에 '전천당'이라는 책을 시리즈로 한참 재미있게 읽고 있어 새 책을 사준 기억이 있었는데 '고양이 전사들'과 '테메레르'를 읽으며 '전천당'은 뒷전이라 중고로 정리했던 것이 계속 시리즈로 나와 10권이나 된 모양이다. 그러면서 4학년 반 아이들에게 최근에 인기몰이하는 모양인지 샀다가 되팔았던 '전천당' 10권을 다시 사달라는 거였다. 이리저리 머리를 굴려봐도 손해고 신랑과 이걸로 옥신각신할 게 빤해 보였지만 요새 아이가 변화하는 모습이 기특해 모든 걸 감내하고 사주기로 마음을 굳혔다. 게임을 하는 것도 아니고 책을 사달라는 건데 뭘 아까워할까. 과감하게 옜다!


교보문고에서 전천당 10권을 다시 사준 날

엄마와 함께하는 시간 동안 좋은 생각, 좋은 일들이 많이 일어났다고 느낀 하루였다면 좋겠다. 집에 도착한 우리는 민감한 촉수를 가지고 있다는 게 방금 기억이라도 난 듯. 머리가 아프고 속이 울렁거려 책을 읽는 것 외에 모든 스케줄은 생략하고 쉬고 있었다. 신랑의 저녁을 챙겨주며 아이와의 자초지종을 얘기했고 좋은 표정은 아니었지만 무난하게 넘어간 하루였다. 어제 산 책을, 아이는 읽을 시간이 부족하다며 오전 8시에 학교를 데려다 달라는 통에 일찍 등교를 시켜놓고 글 쓸 시간이 생겨서 이렇게 또 끄적끄적.


함께 가느라 달팽이 속도지만, 대신 더 멀리 갈 수 있을 거야.